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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희 도쿄스토리]일본에서 ‘빈 뮤지컬’ 붐 일으킨 ‘엘리자베스’

최진숙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0.11.11 10:07

수정 2010.11.11 10:07



일본에서 빈 뮤지컬 붐을 일으킨 ‘엘리자베스’

일본에서 시키와 함께 쌍벽을 이루는 뮤지컬 제작사는 토호(東?)다. 도쿄에 제국극장(1917석)과 시어터 클리에(611석) 등 뮤지컬 전용극장 2곳을 운영하는 토호는 연간 15편 정도를 제작한다. 그런데, 올해 토호 라인업의 특징을 꼽자면 ‘레베카’ ‘엘리자베스’ ‘모차르트’ 등 빈(Wien) 뮤지컬 3편을 잇따라 배치한 것이다.

‘빈 뮤지컬’은 뉴욕 브로드웨이 뮤지컬이나 런던 웨스트엔드 뮤지컬처럼 도시 이름을 붙여 만든 이름으로 오스트리아 뮤지컬을 가리킨다. 그리고 이들 3편의 빈 뮤지컬 가운데 ‘엘리자베스’는 올해 토호 제작 10주년을 맞아 주목을 모았다. 공연기간만 보더라도 8월9일부터 10월30일까지 거의 3개월이나 된다.

다른 작품들이 대개 3∼4주 단위로 공연되는 것과 비교할 때 이 작품이 일본에서 얼마나 인기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뮤지컬 애호가라면 한번쯤 이름은 들어봤을 ‘엘리자베스’는 바로 빈 뮤지컬의 출발점이 된 작품이기도 하다. 1992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미하엘 쿤체(Michael Kunze) 대본과 실베스타 리바이(Sylvester Levay) 작곡으로 초연된 이 작품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황후 엘리자베스(1837∼1898)의 일대기를 그리고 있다.

‘시시’라는 애칭으로 더 알려진 엘리자베스는 프란츠 요셉 1세의 황후로 뛰어난 미모의 소유자로 유명했다. 게다가 그녀는 당시 전통적 관습과 제도에 얽매여 있던 다른 왕족들과 달리 자유를 갈망하며 유럽 각지를 떠돌았다. 그리고 결국엔 무정부주의자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 이런 파란만장한 삶 때문에 그녀는 영화와 드라마, 소설 등 오랫동안 예술작품의 소재가 돼왔다. 뮤지컬 ‘엘리자베스’ 역시 그녀의 남다른 삶을 낭만적으로 그리고 있다.

막이 열리면 엘리자베스를 죽인 루이지 루케니가 등장한다. 그는 암살사건으로부터 11년후 감방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 하지만 죽었어도 그의 영혼은 해방되지 못한 채 사자(死者)의 세계에서 재판을 받는다. “왜 그녀를 죽였느냐”는 질문에 그는 “그녀가 죽음을 원했기 때문이다”며 엘리자베스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시시는 막시밀리안 공작과 바이에른의 마리아 루도비카 공주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자유주의자로 인생을 즐기는 아버지의 성격을 닮아 활달했다. 소녀시절의 어느날 그녀는 나무에서 떨어져 생사를 오가는데, 이때 죽음의 신 ‘토드’가 그녀 앞에 나타난다. 원래 그녀의 목숨을 가져갈 생각이었지만 토드는 그녀를 사랑하게 된 나머지 살려둔다.

얼마 뒤 그녀는 언니와 엄마를 따라 합스부르크 왕가의 별장에 간다. 자매 사이인 루도비카 공작부인과 황태후 조피는 황제 프란츠 요셉과 그녀의 언니를 약혼시킬 예정이었다. 하지만 황제가 시시를 보고 한눈에 반하는 바람에 시시가 황후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그런데, 결혼식 당일 토드가 시시 앞에 나타나 “마지막에 네가 택하는 것은 나다”라며 말한다. 하지만 시시는 토드의 존재를 악몽이라고만 여긴다.

궁정에 들어간 시시는 깐깐한 황태후 때문에 점점 지쳐간다. 자신의 편이라고 믿었던 남편마저도 도와주지 않기 때문에 점점 고독을 느낀다. 아이들을 낳아도 황태후가 데려가는 바람에 엄마 역할을 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녀는 겨우 황제를 설득해 딸을 돌려받지만 얼마뒤 방문한 헝가리에서 딸이 병으로 죽고 만다.

이후 그녀는 남편에게 자신과 어머니 가운데 하나를 택할 것을 요구해 마침내 아들 루돌프를 돌려받는다. 이때 그녀 앞에 토드가 모습을 드러내는데, 그녀는 자신의 힘으로 살 수 있다며 토드를 거부한다. 그리고 얼마뒤 오스트리아와 그녀가 사랑했던 헝가리의 2중제국이 탄생된다.

한편 바빠진 그녀는 루돌프를 방치하고, 엄마 품이 그리운 루돌프 앞에 토드가 나타나 친구가 된다. 이때 며느리를 증오하는 소피와 그 측근들이 황제를 그녀에게 떼어놓기 위해 새로운 여자를 안겨준다. 그런데, 이 여자가 매춘굴 출신인 탓에 황제는 매독에 걸리고, 이것을 시시에게 옮긴다. 배신감에 충격을 받은 그녀는 남편을 떠나 방랑길에 오른다.

어느새 어른이 된 루돌프는 제국의 미래를 놓고 아버지인 황제와 늘 의견이 엇갈린다. 빈에는 파시즘이 대두하고 루돌프는 헝가리의 독립을 도왔다가 난처한 입장에 처한다. 루돌프는 엘리자베스에게 황제와의 관계 회복을 부탁하지만 속박되고 싶지 않았던 그녀는 이를 거부한다. 결국 절망한 루돌프는 토드의 입맞춤을 받으며 자살한다.

엘리자베스는 루돌프의 죽음으로 큰 충격을 받는다. 하지만 궁정으로 돌아오라는 황제의 부탁을 거절한채 방랑을 계속한다. 그리고 마침내 루케니의 칼에 찔려 쓰러진다. 모든 속박에서 해방된 그녀는 “내 자신에 충실했다”고 노래하며 토드의 입맞춤을 받아들인다.

뮤지컬 ‘엘리자베스’는 초연 당시 영미 뮤지컬에 밀려 불모지나 다름없던 독일어권(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엘리자베스’의 성공 덕분에 ‘모차르트’ ‘레베카’ ‘뱀파이어의 댄스’ ‘마리 앙또와네트’ 등 새로운 뮤지컬이 계속 등장하게 됐다. ‘엘리자베스‘를 제외한 나머지 네 작품 가운데 ‘모차르트’와 ‘마리 앙또와네트’는 미하일 쿤체와 실베스터 레비의 공동 작품이고 다른 두 작품은 쿤체와 레비가 각각 다른 파트너와 작업한 것이다.

그런데, ‘엘리자베스’를 독일어 뮤지컬 사상 최대 히트작이 되게끔 기여한 것은 일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은 ‘엘리자베스’가 해외에서 공연된 첫 번째 국가일 뿐만 아니라 작품의 수정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엘리자베스’가 일본에서 처음 공연된 것은 1996년이다. 앞에서 올해 10주년을 맞았다고 했는데, 이것은 토호가 제작한 버전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보다 앞서 일본 다카라즈카가 1992년 고이케 슈이치로 윤색 및 연출로 선보였다. 다카라즈카 소속 연출가인 고이케는 해외 뮤지컬계에 정통해 다양한 해외 작품을 다카라즈카로 만들었다. 최근엔 배용준이 출연한 드라마 ‘태왕사신기’와 프랑스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 프랭크 와일드혼의 ‘스칼렛 핌퍼넬’을 다카라즈카로 만들었다.

그는 1992년 영국에서 우연히 뮤지컬 ‘엘리자베스’의 음반을 듣자마자 이 작품을 다카라즈카로 만들기로 결심했다. 원작자로부터 라이선스를 획득한 그는 이 작품의 윤색에 들어갔다. 여자들만 출연하는 다카라즈카는 기본적으로 남자 역이 주인공이어야 한다는 전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원작에는 역할이 그리 크지 않았던 토드의 비중을 키워 토드와 엘리자베스의 사랑을 전면에 내세웠다. 토드의 경우 의상이나 분장도 빈 버전에 비해 다카라즈카 버전은 훨씬 화려해졌다. 또한 다카라즈카에선 ‘사랑과 죽음의 윤무’ 같은 새로운 곡이 추가됐고, 이후 해외 공연에서도 이 노래가 일부 사용되게 됐다.

1996년 초연 당시 이 작품은 다카라즈카 유키구미(雪組)의 남자역 톱스타인 이치로 마키의 퇴단 공연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이치로 마키가 토드 역을 맡은 것은 당연하다. 티켓을 구할 수 없을 만큼 인기를 얻었지만 일부 뮤지컬 팬으로부터 “원작인 빈 버전을 너무 왜곡시킨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에 따라 다카라즈카와 자매 회사인 토호가 원작에 충실한 뮤지컬을 2000년 새롭게 선보이게 된 것이다. 이 작품 역시 다카라즈카 버전을 연출했던 고이케 슈이치로가 연출을 맡았고, 다카라즈카 버전에서 토드 역을 맡았던 이치로 마키가 엘리자베스 역을 맡아 화제를 모았다. 그런데, 고이케 슈이치로가 연출을 맡아서인지 토호 버전 역시 빈 버전에 비해서는 토드의 이미지가 강렬하게 느껴진다.

현재 ‘엘리자베스’는 다카라즈카 버전 및 토호 버전으로 1∼2년에 한번 꼴로 공연된다. 두 버전 모두 인기가 있어 2000년대 초반 일본에는 합스부르크 제국 붐이 일어났고 오스트리아 여행 상품이 불티나게 팔리기도 했다. 그리고 토호는 ‘엘리자베스’의 대본과 작곡을 맡은 미하일 쿤체와 실베스터 레비에게 아예 신작 ‘마리 앙또와네트’를 의뢰해 2006년 11월 초 도쿄 제국극장에서 공연했다. 일본 신국립극장의 예술감독이었던 쿠리야마 타미야가 연출을 맡은 작품은 이듬해 5월까지 도쿄와 오사카에서 공연됐으며, 2009년에는 독일 브레멘에서도 5개월간 장기공연됐다.

올해 토호의 ‘엘리자베스’ 출연진을 보면 기존의 캐스트에 새로운 배우들을 추가한 것이 눈에 띈다. 우선 엘리자베스 역은 2008년부터 출연해온 아사우미 히카루 외에 세나 쥰이 가세했다. 두 배우 모두 다카라즈카에서 남자 역 톱스타로 인기를 끌었으며 퇴단 이후 일반 뮤지컬에서 여자 역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다음으로 토드 역에는 초연부터 계속 공연해온 야마구치 유이치로 외에 극단 시키에서 오랫동안 톱스타로 군림해왔던 이시마루 간지, 일본 드라마에도 자주 출연해 한국에도 얼굴이 잘 알려진 혼혈배우 시로타 유가 트리플캐스팅 됐다. 그리고 2004∼2006년 공연에 한국 출신 박동하가 맡았던 루돌프 역은 이번에 우라이 켄지, 타시로 마리오, 이레이 카나타 등 젊은 뮤지컬 배우들이 맡았다.



한편 배우들의 열연에도 불구하고 일본 뮤지컬 특유의 창법은 공연 내내 귀를 거슬렸다. 한국 뮤지컬 배우들이 내지르는 듯한 ‘샤우팅’ 창법을 선호하는데 비해 일본 뮤지컬 배우들은 꺾임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특히 토드 역의 야마구치 유이치로는 카리스마와 박력 넘치는 토드 역을 하기엔 너무 노쇠하고 힘들어 보였다. lovelytea@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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