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곽인찬칼럼] 올해의 사자성어 ‘무상급식’/곽인찬 논설실장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0.12.28 17:55

수정 2010.12.28 17:55

세밑에 골치 아픈 글은 독자에 대한 예의가 아닐 터, 한 해를 돌아보는 가벼운 글로 연말연시 인사를 대신하고자 한다.

올해 내가 뽑은 사자성어는 '무상급식'이다. '통큰치킨'을 놓고 고심을 거듭했으나 중량감이 앞서는 무상급식을 택했다. 시나브로 무상급식은 복지의 상징이 됐다. 지난 6·2 지방선거에 이어 2012년 총선·대선에서도 아이들 밥을 둘러싼 어른들의 싸움은 끊이지 않을 듯하다. 대권을 염두에 둔 걸까, 오세훈 서울시장은 전면 무상급식 저지의 선봉에 섰다.
야당은 무상보육·무상의료까지 들고 나올 태세다.

올해는 유달리 싸움이 빈발했다. '통큰치킨'을 놓고는 소비자 후생과 영세상인 보호가 충돌했다. 대통령과 청와대 정무수석도 의견이 갈렸다. 현대건설을 차지하기 위한 현대가(家)의 대립도 볼 만했다. '피보다 더 진한…'이란 부제가 붙은 흥행작 '현대 VS 현대'는 내년까지 연장 상영이 확실시된다. '신한 목장의 결투'는 모두가 패자로 막을 내릴 참이다. 라응찬·이백순·신상훈 3인에게 묻고 싶다. "왜, 뭘 위해 그렇게 싸우셨습니까?"

여의도 그 분들은 연년세세 우리를 실망시키는 법이 없다. 그들의 예산안 난투극은 월스트리트저널(WSJ)지가 뽑은 올해의 사진에 당당히 뽑힘으로써 국격 향상에 일조했다. 서민들은 대당 100만원을 호가하는 맷값 이야기에 '환호'했다. 야구방망이가 알루미늄 재질이라는 게 조금 맘에 걸리긴 하지만 열 대만 참으면 1000만원이고 그 다음부터는 대당 300만원으로 뛴다. 재벌 2세들의 서민 사랑은 참 독특하기도 해라.

서해에서도 충돌이 있었다. 북한은 대한민국 해군에 이어 귀신잡는 해병까지 건드렸다. 남한은 본때를 보이겠다고 으르렁거렸다. 서해에 위용을 드러낸 미국 항공모함에 중국은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환율을 놓고도 미·중 간에 한판 싸움이 붙었다. 냉전시대엔 미·소 데탕트, 지금은 미·중 데탕트가 필요한 세상이다.

떠오르는 대로 상(賞)을 주자면 애석상은 137초 만에 공중 폭발한 나로호, 파편상은 공정사회 불똥에 덴 유명환 전 외교 장관, 어부지리상은 김태호 후보의 낙마 덕을 본 김황식 총리, 복마전상은 '위스키 애호가'인 이대엽 전 성남 시장, 패션상은 '올 블랙'으로 화려하게 데뷔한 호텔신라 이부진 사장, 감투상은 69일 만에 햇빛을 본 칠레 광부 33인, 인기상은 90%에 육박하는 경이로운 지지율 속에 사흘 뒤 퇴임하는 브라질 룰라 대통령, 옹졸상은 노벨평화상 수상자 류사오보의 출국을 거부한 중국에 돌아가면 좋겠다. 구설상은 당연히 보온병·자연산 연타석 홈런을 터뜨린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에게 드려야 하는데 막판 천정배 의원이 "이명박 정권 죽여버려야 하지 않겠느냐"며 도전장을 던졌다. 존재감 1위는 말 한 마디로 세종시 원안을 관철한 박근혜 전 대표의 몫이다. 막강 '미래 권력' 앞에서 정운찬 전 총리는 좌절했다.

평생 딱 한 번 받을 수 있다는 신인상은 피둥피둥 김정은에게 주자. 스물일곱 살의 이 젊은이는 '청년대장'으로 초고속 승진한 뒤 할아버지 김일성의 '환생' 마케팅으로 인민들의 마음을 잡으려 애쓰고 있다. 비밀 외교문서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줄리언 어산지, 슈퍼스타K2 돌풍의 주역 허각도 후보 감이지만 유일무이한 공산당 세습 왕조의 황태자에게 댈쏘냐.

올해 유명을 달리 한 분 중에선 무소유의 삶을 살다간 법정 스님(78)이 마음에 남는다. 다큐멘터리 영화 '울지마 톤즈'로 널리 알려진 이태석 신부(48)도 잊지 못할 분이다.
두 분이 있어 어리석은 중생과 길 잃은 양들은 그나마 위안을 얻는다.

장자의 말씀으로 한 해를 마무리하자. '사람들은 흐르는 물을 거울로 삼지 않고 멈춰 있는 물을 거울로 삼는다(人莫鑑於流水 而鑑於止水).' '장자(莊子)'의 '덕충부(德充符)'에 나오는 말이다.
스스로 드러내지 않아도 덕이 충만한 이에겐 저절로 사람들이 모여든다는 뜻이다. 신묘년 새해엔 그런 사람을 볼 수 있을까.

/paulk@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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