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5세기 첫 등장
기축통화의 역사는 지금으로부터 약 2500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최초의 기축통화는 기원전 5세기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였던 아테네가 발행한 은화 드라크마로 추정된다.
4∼10세기에는 비잔틴제국의 콘스탄티누스 1세가 만든 금화 솔리두스가 기축통화의 위상을 누렸다. 13∼15세기에는 당시 국제 무역의 중심지인 이탈리아 제네바의 금화 제노인과 피렌체의 금화 플로린이 기축통화로 쓰였다. 17∼18세기는 새롭게 국제 무역의 중심국으로 부상한 네덜란드의 휠던이 기축통화의 지위를 누렸다.
현대적인 의미에서 최초의 기축통화는 영국의 파운드다. 파운드는 1819년 금본위제도를 도입한 이후 전 세계에서 유일한 기축통화로서의 지위를 누렸다. 당시 영국 중앙은행은 1파운드의 가치를 약 7g의 금으로 교환해줬다. 파운드는 19세기 말 국제 무역 결제통화의 60%를 차지했고 20세기 초에는 세계 외환보유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8%에 육박했다.
그러나 파운드는 1∼2차 세계대전을 거치는 과정에서 금 보유량이 급감한 영국이 1914년 금본위제를 포기한 데 이어 1931년 ‘더 이상 파운드를 바꿔줄 금이 없다’고 금태환을 공식 중단하면서 기축통화의 위치에서 물러나게 된다.
■달러패권 시대의 개막
파운드를 이어 새롭게 기축통화 자리를 차지한 것은 바로 미국의 달러다.
2차 세계대전 승전국인 연합국 44개국은 1944년 미국 뉴햄프셔주 브레턴우즈에 모여 국제통화시스템을 안정시키기 위해 머리를 맞댄다.
이 자리에서 미국은 달러를 금으로 바꿔주는 금환본위제 도입을 제안한다. 각국은 전 세계 금 보유량의 3분의 2를 독차지한 미국의 금 지급 능력을 의심하지 않고 제안을 받아 들인다. 금 3.75g은 35달러로 고정됐고 달러 이외의 통화는 모두 달러에 고정됐다. 이른바 달러를 기축통화로 한 ‘브레턴우즈체제’가 출범한 것이다.
하지만 1960년대 들어 미국의 금 보유고가 전 세계의 50% 이하로 떨어지자 달러의 금 태환 능력에 대한 의심이 싹트기 시작했다. 특히 베트남 전쟁의 전비를 감당하기 위해 미국이 막대한 달러를 찍어내자 각국은 잇따라 미국에 금 태환을 요구했고 브레턴우즈체제는 급격히 흔들리게 된다. 마침내 1971년 8월 미국의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달러와 금을 교환하는 금태환 정지를 선언하면서 브레턴우즈체제는 27년 만에 막을 내리게 된다.
금태환 정지로 종이쪽지로 변할 수도 있었던 달러는 그 위상을 이어간다. 각국이 천문학적인 규모의 달러를 보유한 상황에서 ‘달러의 몰락’은 ‘세계경제의 몰락’과 같은 의미였기 때문이다. 특히 1975년 사우디아라비아를 시작으로 석유수출국기구(OPEC) 소속 중동 국가들이 달러를 유일한 석유 결제 통화로 사용한다고 발표하면서 달러는 다시금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통화로 인식됐다.
그러나 달러는 2000년대 들어 크게 늘어난 미국의 경상적자 및 재정적자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등으로 다시 기축통화 지위가 도전받고 있다.
/yhryu@fnnews.com유영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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