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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운용 ‘세계100대 코스’ 탐방기] 스코틀랜드 세인트 앤드루스 올드코스

‘스코틀랜드 세인트 앤드루스 올드코스.’

그 이름만으로도 가슴을 설레게 하는 골프 성지(聖地)다. 1860년에 시작돼 2010년 대회를 비롯해 브리티시 오픈이 무려 28차례나 개최된 이곳은 대서양에서 불어오는 거센 바람과 도처에 널려있는 항아리 벙커, 그리고 자기 자신을 이긴 자에게 우승 트로피인 클라렛 저그를 안겨주는 코스다. 10여년 전 제주도 나인브릿지 대표로 부임하면서 지금까지 골프와 인연을 맺고 있는 내가 처음 세인트 앤드루스를 방문했을 때 느꼈던 감동은 아직도 생생한 기억으로 자리잡고 있다.

스코틀랜드 수도 에든버러 공항에 내려 북동쪽으로 차를 타고 1시간30여분을 달리는 길은 흡사 동화 속 풍경 그 자체였다. 세인트 앤드루스는 골프의 발상지로 통한다. 그 옛날 이 지역 목동 하나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막대기로 쳤던 돌멩이가 우연히 토끼굴에 들어간 것을 보고 목동들의 놀이 문화로 정착되었다가 오늘날의 골프로 발전했다고 한다.

심한 바람을 피할 곳을 마련하면서 점차 골프 코스 모양을 갖추기 시작했다. 벽돌을 쌓아 올린 듯한 형태의 리버티드(Revertted) 벙커가 현대적 개념의 코스를 상징하는 첫 번째 요소가 되었다. 당시 골퍼들은 다음 홀로 이동할 때 모래를 한 웅큼씩 들고갔다고 한다. 모래로 티를 만들어 그 위에 볼을 올려 놓고 치기 위해서다. 이런저런 골프의 고전들을 떠올리는 사이 마침내 세인트 앤드루스에 도착했다.

방문 이틀째에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올드코스(파72·6721야드)의 1번홀(파4·376야드) 티잉 그라운드에 올라섰다. 이 홀은 18번홀과 페어웨이를 공유한다. 실개천이 가로지르는 중간에는 그 유명한 스윌컨(Swilken) 브리지가 있다. 보비 존스, 아널드 파머, 타이거 우즈(이상 미국) 등 이 다리를 건넜을 숱한 ‘골프 레전드’들의 숨결을 느끼며 스윌컨 브리지를 건넜다.

세인트 앤드루스 올드 코스는 1번, 9번, 17번, 18번홀은 단독 그린이지만 나머지 홀은 그린을 공유한다. 자연 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해서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긴 풀이 있는 곳은 러프, 비교적 짧은 풀이 있는 곳은 페어웨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여기에 112개의 깊은 벙커는 또 다른 공포의 대상이다.

악명 높은 17번홀(파4·495야드)의 실체도 직접 경험했다. 이 홀은 티잉 그라운드 오른쪽에 삐져 나와 있는 호텔 지붕위로 티샷을 날려야 한다. 그린 왼쪽은 항아리 벙커가 입을 쩍 벌리고 있고 그린 너머는 길과 담이다. 따라서 어프로치샷이 길면 길과 담이 골퍼의 꿈을 앗아 간다고해 ‘로드(Road)홀’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1995년 챔피언 존 댈리(미국)가 더블보기를 범한 것을 비롯해 역대 우승자 중 상당수가 이 홀에서 혼쭐이 났다. 2000년 우승자 우즈도 예외가 아니어서 나흘간 기록한 3개의 보기 가운데 2개를 이 홀에서 범했다.

이곳에는 골프의 정신을 계승해가는 영국왕립골프협회(R&A) 본부가 있다. 150년 역사의 브리티시오픈을 개최하고 골프규칙을 주관하는 R&A는 협회라기보다는 프라이빗 클럽 성격이 더 짙다. 1754년에 세인트 앤드루스에서 클럽 결성을 한 이 협회가 현재의 명칭을 얻게 된 것은 1834년이다. 당시 영국 국왕이 가장 오래되고 정통성이 있는 단체라며 이 이름을 하사했다고 한다.

세인트 앤드루스는 인구 1만6000여명에 불과한 소도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는 연간 10만명에 달하는 골프 관광객이 몰려 들어 시 예산의 절반 수준인 600억원의 관광 수입을 올린다고 한다. 특히 브리티시오픈이 열리는 기간에는 호텔은 물론 민박까지도 예약이 조기에 매진될 정도단다. 수 백년 전 비바람이 잦은 황량한 들판에다 골프장을 만들었던 목동들은 과연 이러한 결과를 상상이나 했을까.

세인트 앤드루스의 오늘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조상들이 남긴 귀중한 골프 유산을 상품화로 성공시킨 후손들의 마케팅 정신, 세계 100대 명문골프장을 갖고 있다는 시민들의 자긍심, 골프산업 육성을 위한 정부의 지원 등이 어우러져 이루어낸 합작품이다. 골프가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부터 정식 종목에 채택되었지만 한국 골프는 100년사를 통틀어 최대 위기 상황이다.
스코틀랜드 목동들의 후예들처럼 한국 골프산업을 위기에서 건져낼 지혜는 정녕 없는 것일까.

/여주 해슬리 나인브릿지 대표

■김운용대표 프로필
김운용 대표(63)는 배구선수 출신으로 삼성 라이온스 관리부장과 제일제당 영업이사를 거쳐 2000년에 골프계에 투신한 뒤 짧은 기간에 클럽 나인브릿지 제주를 세계 100대 코스 반열에 올렸다. 현재는 경기도 여주 해슬리 나인브릿지 대표로 재직 중이며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골프 매거진 세계100대 코스 선정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사진설명=스코틀랜드 세인트 앤드루스 올드코스 18번홀 페어웨이를 가로지르는 스윌컨 브리지. 보비 존스, 아널드 파머, 타이거 우즈(이상 미국) 등 숱한 '골프 레전드'들이 클라레 저그를 꿈꾸며 이 다리를 건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