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과학 >

바나나 멸종위험, 무엇때문일까?

▲ 19세기에 발견된 뒤로 자연스런 번식이 아닌 꺾꽂이로만 개량된 캐번디시 바나나. 전세계 모든 캐번디시는 단 1개체의 유전자만 갖고 있는 ‘복제품’이다.
▲ 야생상태 바나나의 단면. 품종개량된 캐번디시와 달리 씨앗도 굵고 맛도 거칠고 떫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사랑받는 바나나의 멸종위험이 수년째 제기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바나나 공화국’이라고도 불리는 세계 최대 바나나 수출지역인 중남미 지역에까지 점차적으로 치명적인 곰팡이질병이 상륙해 멀지 않은 미래에 바나나 부족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한다.

바나나 멸종위험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현재 우리가 즐겨먹는 바나나 품종은 ‘캐번디시’다. 하지만 할아버지 세대가 맛본 바나나는 이와 다른 ‘그로 미셸’이라는 품종이었다. 20세기 초반 파나마에서 발병한 곰팡이질병인 ‘파나마질병’이 급속하게 번지면서 그로 미셸 품종은 삽시간에 죽어 나가기 시작했고 결국 1950년대에 이르러선 국제수출용으로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생산성이 추락했다. 그 결과 새로운 품종을 찾아 개량·재배한 것이 캐번디시다.

캐번디시는 맛과 향도 좋고 생산성이 높다. 또한 무엇보다도 너무 빨리 익거나 멍들지 않아 해외수출용으로 적합한 바나나이기 때문에 현재 전세계에 판매되는 상업용 바나나의 99% 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더군다나 비타민B6, 비타민C, 섬유소 등이 풍부해 ‘완벽식품’으로 불릴 정도다.

문제는 이 바나나도 질병에 시달리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TR4라 불리는 새로운 곰팡이질병이 80년대 대만에서 발견되기 시작하면서 동남아시아 일대를 휩쓸기 시작했다. 당시 대만 바나나의 70%가량이 사멸했고 인도네시아에선 약 4856만2277㎡의 바나나 재배지를 폐기해야 했다.

현재 이 질병은 동남아시아, 인도, 호주 등에 점차 퍼져나가고 있다. 농부들은 바나나를 비닐포장지로 감싸고 해충제를 뿌리는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지만 근본적 해결책은 없는 상태다.

더 큰 문제는 이 질병이 바나나 생산의 핵심지인 중남미에 도달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세계 최대 바나나 수출국인 에콰도르, 코스타리카, 콜롬비아 등이 모두 이 지역이 속한다. 세계식량농업기구에 의하면 에콰도르는 전세계 수출용 바나나의 30%를 담당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매년 약 344만7302t의 바나나를 소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우리나라도 농림수산식품부에 의하면 2007∼2009년동안 매년 약 25만t 이상의 바나나를 수입하고 있으며 이는 약 1832억4460만원에 해당하는 규모다.

그런데 왜 바나나는 유독 멸종위험에 이리도 쉽게 처하는 걸까. 이유는 ‘인간의 욕심’에 있다. 우리는 달고 맛좋은 바나나를 얻기 위해 정상적인 바나나의 번식을 뒤틀었기 때문이다. 현재 식용 바나나는 유성생식을 하지 못한다. 아예 씨가 없거나 사실상 씨가 효력이 없는 형태로 품종개량된 바나나는 오직 꺾꽂이 방식으로만 재배된다. 결국 전세계 모든 바나나는 유전적 다양성이 없는 한 바나나의 ‘복제품’인 셈이다. 이 때문에 20년 이내 캐번디시가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 세계식량농업기구의 예측 중 하나다.

유전적으로 동일한 개체만 재배할 경우 급격한 상황에 처할 경우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사멸할 수 있다.
국립원예특작과학원 과수과 핵과류연구실 신용억 연구실장은 “아무리 강하고 유전조건이 우수한 식물이라 할지라도 복제품만 존재할 경우 새로운 질병에 적응할 ‘짝’이 없으므로 생존이 불가능하다”며 “1845년 아일랜드 감자기근도 단일 감자 품종만 재배했다가 한 질병에 모든 감자가 죽어 발생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바나나 및 향후 다른 과일에서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유전공학이 아니라 번식력이 거의 없어진 캐번디시 바나나를 다른 종과 장기간에 걸쳐 교배시켜 자연스런 잡종품종을 다량 만드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신 연구실장은 “곡물 등은 매년 한 세대가 새로 생겨나므로 이전 세대를 유전조작실험 등으로 변경할 경우 빠르게 그 결과가 나오지만 과수의 경우 길면 10년 이상 키워야 성장해 결실을 맺는다”며 “따라서 다양한 품종을 유지하고 교배시키는 자연스런 방법만이 과일을 보존하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kueigo@fnnews.com김태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