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패션계에 혁신을 일으키며 패션 제국 ‘샤넬’을 만든 가브리엘 샤넬. ‘코코’라는 애칭으로 알려져 있는 그녀의 삶은 그녀의 패션만큼 화려하면서도 드라마틱하다. 그래서 지난해 개봉한 ‘코코 샤넬’을 비롯해 그동안 그녀를 다룬 영화가 심심치 않게 나왔다.
하지만 뮤지컬로는 1969년 초연된 ‘코코’가 유일하다. 전설적인 여배우 캐서린 헵번이 평생 유일하게 출연한 뮤지컬이기도 하다. 약 40년간 잊혀졌던 이 작품은 지난해 7월 해외 뮤지컬계 사정에 밝은 일본에서 발빠르게 리바이벌됐고, 지난해 12월 3일부터 올 1월 12일까지 도쿄, 오사카, 니노미야 등 일본에서 다시 앙코르 공연되면서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국내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뮤지컬 제작사 ‘쿠오라스(Quaras)’가 무대에 올린 ‘코코’는 다카라즈카 출신의 배우 오오토리 란(64)을 주인공으로 공연되고 있다. ‘코코’는 ‘마이 페어 레이디’로 유명한 알란 제이 러너가 대본을, 지휘자로 더 유명한 앙드레 프레빈이 작곡을, ‘코러스 라인’의 마이클 베넷이 안무를 맡는 등 당대 최고의 크리에리티브 팀이 작품에 참가했다.
이 작품은 원래 1950∼60년대 브로드웨이의 명 프로듀서 프레데릭 브리슨이 아내인 로잘린드 러셀을 위해 기획한 것이었으나 러셀이 당시 관절염으로 고생중이었기 때문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만든 할리우드의 거물 제작자 데이비드 셀즈닉의 부인 이레느 셀즈닉이 브리슨에게 친구인 캐서린 헵번을 추천했다. 평생 자기 의견을 거침없이 말하고 인습을 깨뜨리는 행동으로 세상을 놀라게 했던 헵번과 샤넬이 비슷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뮤지컬 ‘코코’의 배경은 1953년 파리. 70살의 코코 샤넬은 15년째 패션계에서 자의반 타의반 은퇴한 상태다. 2차대전 당시 13살 연하인 독일 장교 한스 귄터 폰 딩클라게에게 빠져 나치를 도왔기 때문이다. 종전 이후 구금됐던 그는 윈스턴 처칠 영국 수상의 영향력 덕분에 풀려났지만 디자이너로 되돌아가지는 못했다.
파란만장했던 자신의 과거를 회상한 그는 마침내 재기를 결심한다. 하지만 그의 오랜 대리인과 조수는 실용성이 두드러지는 샤넬의 디자인에 대해 “이제 구식이 됐다”며 반대한다. 당시는 여성성을 강조하는 크리스찬 디오르의 뉴룩이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있을 때였다. 하지만 샤넬은 뜻을 꺾지 않고, 그의 대리인은 신진 디자이너를 고용하는 조건으로 허락한다.
샤넬의 새로운 컬렉션이 프랑스에서는 실패로 끝났지만 미국 등 해외에서는 열광적인 호응을 얻는다. 샤넬은 다시 부와 명성을 얻게 되고, 딸처럼 생각되는 노엘에게 계속 함께 일하자고 제안한다. 그러나 노엘은 조르주를 잊지 못해 결국 그와의 결혼을 택한다. 혼자가 된 샤넬은 혼자서 자신의 삶을 살겠노라고 다시 한번 다짐한다.
사실 ‘코코’는 작품 완성도 면에서 평범한 편이다. 무엇보다 샤넬의 복귀를 통해 그의 독립적인 삶을 그린 줄거리가 단선적이다. 당시 토니상 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돼 의상상과 남우조연상을 받는데 그쳤지만 이 작품은 헵번 때문에 큰 인기를 끌었다. 비록 헵번이 완벽하게 노래를 하지는 못했지만 샤넬과 중첩되는 이미지나 완숙한 연기력 덕분에 객석은 늘 만원이었다. 게다가 이 작품이 공연되는 동안 샤넬이 세상을 떠 더욱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러나 이 작품은 헵번의 카리스마가 워낙 컸던 탓에 이후 새로운 캐스팅으로 무대에 올리는 것이 쉽지 않았다. 지난해 일본에서 리바이벌될 때도 가장 주목을 모은 것은 역시 샤넬 역을 어떤 배우가 맡느냐는 것이었다.
샤넬 역에 캐스팅된 오오토리 란은 이국적 외모의 소유자인로 외국 국적(대만)으로는 처음 다카라즈카 남자역 톱에 오른 것으로 유명하다. 오오토리 란은 헵번처럼 6년이란 짧은 결혼생활을 한 뒤 지금까지 혼자 살고 있으며 사업에도 수완을 발위해 프랜차이즈 기업 ‘북경북경 만라쿠’를 소유하고 있다. ‘코코’로 일본 공연계의 각종 상을 휩쓸었데서 알 수 있듯 샤넬 역은 화려하면서도 독립적인 그에게 제격이었다./lovelytea@paran.com박진희 도쿄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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