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기 수습일기]“아가씨는 왜 고향에 안 가?”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1.02.06 13:02

수정 2011.02.06 13:02

고향. 이 두 글자는 가슴을 흔든다. 가끔 글자 속에서 아련한 고향의 향기가 폴폴 풍겨 나오기도 한다. 어릴 때 할아버지 집 근처에서 맡았던 골목길 냄새라던가 교복을 입고 뛰놀던 학창 시절, 코끝을 간질이던 이름 모를 꽃향기까지. 고향은 바쁜 일상에 치여 기억 저 편으로 밀려난 추억을 한꺼번에 소환한다.

사회부 소속 둘째 날. ‘고향 가는 길’을 스케치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연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하루 전 날인 2월 1일 화요일 아침, 나는 곧장 서울역으로 향했다.


이번 설 연휴는 총 5일, 징검다리 휴일까지 휴가로 사용하면 장장 9일 간 꿀맛 같은 휴일을 누릴 수 있다.

북적북적. 서울역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 앞부터 고향으로 떠나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부모님께, 혹은 친지 어른들에게 건넬 선물 꾸러미도 하나씩 챙겨들고 있다. 슬쩍 옆으로 다가가 말을 걸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혹시 고향 내려가세요?”

위아래로 빠르게 나를 훑어보는 눈. 경계나 의심의 눈빛을 보일 땐 얼른 신분을 밝히는 게 우선이다. 여러 번의 현장스케치를 하며 알게 된 점이다. 인사를 하고 인터뷰 목적을 밝힌다. 곧 경계의 눈빛은 사라지지만 여기서 인터뷰의 호불호가 나뉜다. 고개를 돌리거나 손을 저어 거부 의사를 표시하는 분들도 있지만, 의외로 인터뷰에 흔쾌히 응해주는 분들도 많다. 1분에서 2분 정도 짧은 대화를 나누다 보면 이상하게 웃음도 나고 기운도 솟는다. 나는 현장형 체질인가...?

“역시 현찰이 최고죠.” “저희 집은 현찰로 합니다.”
명절 선물로 무엇을 준비했냐는 질문에 젊은 사람들은 입을 모아 현금이라 말했다. 역시 대세는 ‘돈’이었다. 주기도 받기도 편하고, 원하는 걸 살 수도 있으니 사실 가장 좋은 선물이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다들 긴 휴일을 앞두고 고향을 내려가는 터라 표정이 밝았다.

인터뷰에 가장 정겹게 대답해주시는 분들은 우리네 부모님이다. 아마 이것저것 물어보고 있는 내가 자식처럼 느껴져서 그렇지 않을까. 고향으로 내려간다는 한 60대 부부는 기분이 어떠신지 묻자 “젊은 사람들이야 들뜨지 우리는 무덤덤해”라고 대답하고는 되레 나에게 묻는다. 아가씨는 고향이 어디냐, 왜 집에 가지 않냐. 순간 나도 집에 가긴 가야하는데 정작 표는 구하지도 않은 현실이 떠올랐다. 정신없이 취재를 하다 보니, 나도 명절을 앞둔 근로자라는 사실은 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누구를 인터뷰하면 좋을까 둘러보는데 분홍색 보자기로 곱게 싼 꾸러미를 한 손에 들고 있는 어머님이 보인다. 대구에서 올라왔다는 어머님은 마중 나올 아들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서울은 워낙 물가가 비싸니까 고기 좀 많이 먹으라고 사왔어”라며 꾸러미를 내려다본다. 문득 엄마의 얼굴이 겹쳐진다. 가끔씩 우리 엄마도 서울서 공부하고 일한다고 고생한다며 먹을 것을 싸들고 올라오신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고 인터뷰를 마무리 짓고 돌아서려는데 질문을 하신다.

“근데 아가씨는 왜 고향에 안 내려가?”
“아. 저는 지금 일하고 있는 중이라 서요. 곧 표구하면 내려갈 거예요.”

뒤돌아서 다음 인터뷰 대상자를 찾으려 걸음을 옮기는데 갑자기 눈물이 났다. 정겨운 고향 말투에 나도 모르게 감상에 젖었나 보다. 약 2시간 반 동안 서울역 관계자, 많은 시민들, 역 내 상인들, 구제역 확산 방지를 위해 나온 자원봉사자들까지 두루두루 인터뷰를 마친 후 이번엔 고속터미널로 향했다.

가는 길에 집에다 전화를 했다.

“엄마. 그냥 전화했어요. 뭐하세요?”
“응. 우리 딸 수고한다.

언제 내려와?”

나도 고향 가는 길에 얼른 합류해야 할 텐데 말이다.



/polarispark@fnnews.com 박소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