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만 해운산업은 주기적으로 호황과 불황이 반복되는 해운시황 사이클이 존재한다는 특성이 있다. 이는 해운수요(해상 물동량)가 국내외 경기변동에 민감한 반면 공급(선복량)은 선박건조에 상당한 기간이 소요되면서 수요변화에 비탄력적인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2008년 말 글로벌 금융위기로 발생했던 해운위기를 지난 2년간 정부와 업계가 슬기롭게 극복해 왔다.
■해운시장 공급과잉 조짐
수요 면에서는 철광석 등 원자재값 급등과 호주의 폭우를 비롯해 기상이변에 따른 철광석, 석탄 등의 운송수요 감소 및 철광석 및 석탄 등의 최대 수입국인 중국의 긴축정책, 인도의 철광석 수출량 감축 등이 주요인이다. 공급 면에서는 지난해부터 신조선 인도가 본격화되면서 벌크선 공급과잉 현상이 지속되고 있어 벌크 해운시황 악화를 부채질하고 있다.
춘제(春節) 이후 중국의 긴축정책이 완화되고 3월 초 호주의 홍수 피해가 복구될 경우 시황은 다소 회복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신조선 인도 등 공급압력으로 벌크 해운시황이 단기간에 완전히 회복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공급과잉으로 운임이 용선료(선박 임대료)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으로 급락하면서 국내 4위의 대형 선사인 대한해운이 지난달 25일 법원에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했다. 대한해운 사태로 국내 해운업계와 조선업계의 직접적인 피해는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한해운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벌크선사인 만큼 대외신용도 하락으로 앞으로 우리나라 선사가 해외에서 배를 빌리거나 금융선을 확보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대한해운 사태와 관련해 신속하고 신뢰할 만한 후속조치 여부에 국내외 금융권과 해외 선주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대한해운은 가급적 이른 시일 내에 자구노력에 대한 강한 의지를 대외적으로 표명하고 기업회생절차를 조속히 진행해야 한다.
■선박금융 경색 가능성 고조
벌크 해운시황이 악화되고 있는 와중에 이번 대한해운 사태까지 겹치면서 민간 금융기관의 선박금융이 경색될 가능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주기적으로 호·불황이 반복되는 해운시황 사이클을 이해하고 최근 벌크 해운시황 악화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해 건실한 중견 선사 등에 대해서도 신규 금융을 전면 중단하거나 기존 금융에 대해 상환압력을 가하는 일은 가급적 자제해 주길 바란다.
정부에서도 올해 5000억원 규모의 구조조정기금 선박펀드를 조성해 자금조달에 애로를 겪는 중견 선사를 집중 지원하고 정책금융공사 등 안전망 역할을 수행하는 정책금융도 적극 지원해 나갈 것이다. 아울러 민간금융 위축을 방지하기 위해 무역보험공사를 통해 5000억원 규모의 선박보증을 실시하고 대선의무 완화 등 민간 선박펀드를 활성화하기 위한 규제 완화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 중장기적으로는 해운시황 사이클을 이해하고 해운분야에 특화된 금융지원을 할 수 있는 선박금융 전문기관을 설립하는 방안도 관계기관과 긴밀히 협의해 추진해 나갈 것이다.
■해운업계 자구노력 절실
해운업계에서도 최근의 시황 악화가 기상이변 등의 영향보다는 선박 과잉공급이라는 구조적 요인이 큰 만큼 과도한 신조 발주를 지양하고 다단계 용대선 관행을 근절하는 등 뼈를 깎는 자구노력을 해야 한다. 수천년을 이어온 해운 역사에서 기존 시장의 위기는 종종 새로운 기회이자 주도세력이 교체되는 계기로 작용해 왔다. 동로마의 멸망과 함께 기존 교역이 막혔을 때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선구자들은 인도양과 대서양 항로를 개척했다. 14세기에 유럽 해운시장에서 위세를 떨치던 베네치아와 한자 상인들도 영국과 네덜란드가 지금처럼 해운강국이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나라 해운산업이 세계시장을 선도하는 전략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해운업계 그리고 금융권이 머리를 맞대고 위기를 기회로 만들려는 노력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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