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울릉도 현포리에 위치한 600㎾급 풍력발전기는 설치 4년 만에 가동을 멈추고 지금껏 고철로 남아 있다. 잔고장을 일으키는 기계적 결함과 들쭉날쭉한 풍력의 저품질 전기출력이 문제였다. 출력이 불완전한 풍력발전기를 보조하려고 함께 세운 디젤발전기까지 고장났고 기존 송전시스템에는 과부하가 걸렸다. 한국의 그린아일랜드 구상이 그렇게 쉽게 한계를 드러내는가 싶을 정도였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또 다른 섬, 제주에선 새로운 실험이 진행 중이다.
제주 북동쪽 구좌읍 한적한 도로를 달리다 보면 이국적인 풍광을 자아내며 돌고 있는 풍력 바람개비(블레이드)들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최근 정부 주도로 추진되는 풍력사업의 증거물들이다. 정부는 세계 풍력시장 후발업체인 국내 풍력업체들을 위한 육성책을 속속 발표하고 있다. 육상풍력 육성에 이어 내년까지 5㎿급 해상풍력기 개발을 완료하고 2013년엔 해상풍력 실증단지를 구축하겠다고 선언했다. 전에없이 속도전으로 치러지는 양상이다. 화석연료의 유한함과 대비되는 무한자원의 매력을 지닌 풍력산업. 본격 개막을 앞둔 한국 풍력산업의 현주소는 어떤가.
■백두대간 산허리에 꽂지 마라
한 풍력업체 관계자는 현재의 국내 신재생에너지 사업에 대해 "실제 현장에선 아직은 혼돈의 시기"라고 정의를 내렸다.
풍력에너지 보급확대와 산림자원 보호. 녹색성장이란 기치 아래 '동일한 패'로 여겼던 두 정책적 목표가 실제 현장에선 미묘하게 충돌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현재 세계시장 진출을 겨냥하고 있는 국내 풍력관련 기업들의 속앓이 중 하나는 트랙 레코드(사업경험)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국내 풍력에너지 보급확대와 기업들의 경험 축적을 위해서 국내 풍력발전단지 조성은 1차적인 과제다. 강원도, 전라남도 등에 풍력단지를 조성하고 있지만 대개 바람을 타는 산허리에 꽂는 풍력발전기 설치 인·허가 규제가 시장확대의 걸림돌이란 주장이다.
최근 지식경제부는 삼일회계법인의 풍력사업규제 인·허가 등에 관한 연구용역 결과를 받았다. 업계의 요구는 풍력발전 인·허가 규제를 완화해 달라는 것. 한국풍력산업협회 관계자는 "국가 정책의 우선순위에서 풍력발전 등 신재생에너지 자원의 중요도가 밀리고 있다는 느낌"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산림청 등 산림보호 관할부처나 생태계 보호를 중시하는 환경론자들은 산등성이 위에 꽂는 풍력의 비(非)환경성에 주목한다. 백두대간과 그 줄기산맥의 자연환경 및 생태계 보호를 위해 풍력발전기를 꽂을 수 없다는 것이다. 환경론자들은 지속적으로 현재의 대안을 뒤집어 보는 작업을 하고 있다. 풍력발전단지 개발 인·허가 과정은 사회적 합의라는 통과의례를 치러야 할 것으로 보인다. 비단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풍력의 바람개비를 헛돌게 하는 복병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전력계통개발·저변확대 과제로 지목
국내 풍력발전 기술 수준은 선진국의 80∼90% 수준으로 평가된다. 블레이드, 증속기 등 부가가치가 높은 핵심 부품은 수입 의존도가 높은 상태다. 1990년대 중반부터 한국에 진출한 덴마크의 베스타스가 국내 시장에서 80% 이상을 독점하고 있지만 다행스러운 점은 점차 두산중공업·현대중공업 등의 사업 참여가 가속화되면서 2009년을 기점으로 베스타스의 독식에 제동이 걸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유럽 업체들은 현재 3㎿급 발전기를 보급하는 가운데 5㎿급 개발과정에 있다. 이에 비해 국내 업체들은 2㎿급 실증단계 상황으로 기술격차를 좁히는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두산중공업·효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현대중공업 등 중공업회사들이 단시간 내에 이 같은 격차를 좁힐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가운데 풍력 저변확대를 위한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의무할당제(RPS), 조세감면 등의 정책적 지원책으로 2013년쯤에는 세계 시장 진출이 무난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두산중공업 진종욱 미래에너지 영업팀장은 "해외 업체들에 비해 후발주자로 뛰어들었지만 현재 3㎿급 발전기 개발에 성공, 2013년쯤에는 충분히 세계 시장 진출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풍력의 전제조건은 사실상 스마트 그리드 구축에 있다. 스마트 그리드의 실제 목표는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보급확대를 위한 전력망 개선이다. 10년 전 울릉도 현포리의 정전사태는 작은 사례에 불과하다.
서울대 문승일 교수는 "가정에서 편리한 전기 사용이 일반적인 스마트 그리드의 효용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화석연료 고갈에 대비한 대체에너지 보급률을 높이는 것이 스마트 그리드의 궁극적 목적"이라고 말한다. 울릉도 사태가 국토 전체 단위에서 재현되지 않기 위해선 대규모 단지에서의 전력계통에 대한 연구개발이 시급한 과제로 지목된다.
■2단계 도전, 해상풍력
풍력의 시야는 최근 바다로 확장되고 있다. 정부는 오는 2020년까지 초대형(10㎿급) 해상풍력발전과 선박을 이용한 부유식 풍력시스템을 구상하고 있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해상풍력 로드맵에 따르면 2019년까지 서남해안지역에 총 9조2000억원을 투자해 2500㎿급 해상풍력발전단지를 건설한다. 정부는 1단계로 2013년까지 100㎿급(5㎿급 20기) 실증단지를 건설, 기업들의 트랙 레코드 확보에 중점을 둔다는 구상이다. 이 기간 민관합동 투자액은 6036억원으로 추산된다.
세계 해양플랜트 '빅3'인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을 비롯해 두산중공업·효성중공업 등 중공업 기업들의 새로운 도전이 시작된 셈이다.
지난달 26일 두산중공업은 제주도 구좌읍 월정리 앞바다에 3㎿급 풍력발전기 설치에 돌입했다. 이르면 10월부터 발전기를 돌리게 된다.
5㎿급 해상풍력 발전기 개발에도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효성·현대·삼성 등이 개발에 들어갔으며 두산중공업도 개발에 들어갈 예정이다. 해상풍력은 육상풍력보다 바람의 세기가 강해 효율성이 높고 환경적 제약을 뛰어넘을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초기 설치비 부담이 큰데다 해상 생태계 교란, 시스템 안정성 문제가 해결해야 할 과제로 지목된다.
/ehcho@fnnews.com조은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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