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문화일반

[문화산업을 이끄는 사람들] 정재옥 크레디아 대표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1.02.10 18:15

수정 2014.11.07 03:27

올해 클래식계 최고 기대작을 꼽아본다면 마에스트로 다니엘 바렌보임의 연주 아닐까. ‘실천하는 음악가’,‘평화의 전령사’로 세계적 명성을 자랑하는 바렌보임은 사실 ‘출연’ 자체만으로도 뉴스다. 그의 내한 무대는 27년만. 그가 이끌고 오는 오케스트라 ‘웨스트이스턴 디반’은 이번이 첫 내한이다. 이들은 올 여름(8월10일∼12일,14일) 나흘동안 베토벤 교향곡 전곡 도전에 나선다. 국내선 유례가 없는 레퍼토리다.

이들의 연주회를 성사시킨 이는 크레디아 정재옥 대표다.

이 공연기획사의 올해 공연 메뉴를 살짝 들여다볼까. 클래식 애호가라면 누구든 반한다. 바이올리니스트 여제 안네 소피 무터를 비롯, 백건우, 조수미, 장한나, 파보 예르비, 머레이 페라이어 등의 연주 일정이 빼곡하다. 작품의 질, 연주자들의 스타성, 클래식계 평판도를 따져볼 때 크레디아는 업계 첫손에 꼽힌다. 서울 중구 을지로 크레디아 사무실. 벽면이 온통 클래식 CD로 둘러싸인 미팅룸에서 정 대표(50)를 만났다. 노타이 차림에 나즈막한 목소리. 정대표는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CEO였다.

■클래식 공연계 프로듀서 1세대

70년대 중후반 중고교 시절 라디오를 끼고 살았고, 당시 한해 겨우 한두편 정도였던 대형 공연은 빠지지 않고 봤다. 동시에 그는 전형적인 ‘헐리우드 키드’였다. 국내 개봉 외화가 많아야 30편이던 그 무렵 그는 그 영화들은 죄다 봐야 직성이 풀렸다. 미성년 관람불가 영화는 경기도 인근의 외진 영화관을 찾아가 볼 정도였다. 지금도 영화를 즐겨본다. “그 감독들이 만든 건 다본다”라고 말하는 정대표의 ‘그 감독’은 홍상수, 박찬욱, 봉준호다. 대학시절 휴교령이 내려졌을 땐 서울 명동의 음악다방 ‘고리방’에서 팝송담당 디제이도 했다.

대학 졸업후 언론사에 입사해 문화사업일을 맡으면서 물 만난 고기처럼 살았다. “그때는 언론사 위주로 대형 공연이 이뤄졌어요. 회사를 다니면서 하고 싶은 걸 맘껏 한 셈이죠. 러시아 볼쇼이 발레단을 섭외하러 러시아까지 갔었는데 그런 일들이 국내서 처음있는 거였거든요.”

그러길 10년. 독립을 선언한 게 90년대중반이다. 서울 종로구 원서동 창경궁옆 골방같은 사무실을 얻어 직원 달랑 한명을 데리고 창업을 했다. ‘창의적이고(Creative) 믿을 수 있는(Credible)’을 뜻하는 크레디아 간판이 세워진 게 바로 이때다. 나이 서른 셋 정대표는 패기만만했다. “문화에 대한 수요는 늘어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여행은 더 자유로울 것이고 글로벌한 비즈니스가 이제 뜨겠구나 그런 자신이 있었죠. 영화에선 90년대 초반 프로듀서 제도가 슬슬 도입됐어요. 클래식 공연쪽에서도 이제 이 시스템이 들어오겠구나 판단을 한 겁니다.”

올해로 10년째인 호암아트홀 위탁 경영은 크레디아 조직 볼륨을 지속적으로 키웠다. 크레디아는 4년전부터 한해 매출액 100억원대로 외형이 커졌다.

■오랜 인연 연주자·12만명 회원… “든든”

정대표의 주무기는 기획력이다. 크레디아라는 닻을 올리지마자 세간의 이목을 끌었던 것도 이 덕분이다. 창립 이듬해인 1995년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 아이작 스턴, 이태리 유명 실내악단 이무지치 등의 내한 공연을 줄줄이 성사시키자 신생기획사의 예상못한 저력에 업계는 놀랬다. 1997년 요요마, 아이작스턴, 장영주, 장한나 등 쟁쟁한 ‘클래식 별’들를 한무대에 올려 갈라콘서트를 펼친 것도 두고두고 회자된다.

정대표는 스스로 “연주자 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한번 연을 맺은 아티스트는 다시 크레디아를 찾는 게 보통. “90년대말 외환위기로 어려웠던 시절 아쉬케나지는 개런티를 30%나 할인해줬어요. 공연자체가 빅뉴스였던 그때 백건우씨는 라벨 전곡 연주 레퍼토리를 가져와 전석 매진을 시켰죠. 백건우씨는 그뒤에도 베토벤 소나타 전곡 연주로 감동을 선사했어요. 조수미씨도 매번 어려운 여건에서 공연을 모두 성공적으로 마쳤구요. 장한나,장영주는 어렸을때부터 함께 해온 연주자에요.”

크레디아의 또 다른 지원군은 10만명이 넘는 회원이다. 2∼3만명 애호가로 유지되는 클래식시장에서 이같은 회원 숫자는 기록적이다. “온라인회원까지 합해 12만명이에요. 1년에 만명이상씩 늘어요. 회원 모임 명칭이 클럽발코니에요. 90년대 중반 뉴욕 카네기홀에서 공연을 볼 때였는데 3층 발코니석을 보고 놀랬죠. 발디딜 틈이 없이 빼곡했어요. 그게 가난한 애호가들, 학생들 때문이더라구요. 그 관객들을 존중하는 마음에서 클럽 이름을 발코니로 정한 거에요. 나중에 이들이 로열석으로 옮겨와 더 큰 후원자가 됐으면 하는 마음도 담았구요.”

■‘메이드 인 크레디아’ 깃발을 들다

정대표는 이제 ‘메이드 인 크레디아’ 깃발을 높이 들고 있다. 신진 아티스트를 발굴, 이들을 조련시켜 국내 무대는 물론 해외 진출까지 돕는 대형 프로젝트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것. 성공사례 1호는 올해로 출범 5년째인 앙상블 그룹 디토다. 리처드 용재오닐을 중심으로 한 디토는 이제 ‘클래식 한류’의 대명사로 불린다. 국내 20-30대 여성을 타깃으로 시작했지만 지난해엔 일본까지 진출, 공연때마다 전석 매진 기염을 토했다.


‘클래식 한류’ 선봉장 정대표의 미래 구상은 어떤 걸까. “어디로 가야한다는 강박관념은 없어요. 다만 아시아를 하나의 마켓으로 보는 건 어떨까 생각합니다. 한·중·일을 이어주는 클래식 브랜드를 만들어보는 것도 괜찮다 싶구요. 클래식 애호가들에게 공연외적인 다양한 문화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공연이 끝나고 연주자들을 향해 몰입해서 박수를 치는 관객들을 보면 가슴뭉클하다는 정대표. 어려웠던 시절 그를 버티게 한 힘도 이런 것이었다며 빙그레 웃었다.

/jins@fnnews.com최진숙기자·사진=김범석기자

■정재옥 크레디아 대표 약력 △1985년 2월 중앙대 경영학과 △1984년 10월 중앙일보사 입사 △1994년 공연기획사 크레디아 설립 △2002년 호암아트홀 위탁경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