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생겼다며 떠나는 그녀..끝까지 배려하는 그

출판 기획 일을 하는 결혼 5년 차 그녀는(임수정) 출장 때문에 공항까지 데려다 주는 차 안에서 마치 음료수 캔이라도 내밀듯 불쑥, 남자가 생겼다며 집을 나가겠다고 말한다.
"난, 괜찮아…"
그는 단 한번도 이유를 묻지 않고 묵묵히 짐 싸는 걸 도와준다. 또 그녀와의 마지막 식사를 위해 그녀가 좋아하던 레스토랑에 예약까지 해 놓는다. 화 한번 내지 않지만,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기엔 너무나 세심하게 그녀를 배려해 주는 그. 진짜 속마음은 과연 무엇일까?
익숙한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속 깊은 배려에 점점 화가 나는 그녀는 그런 자신의 감정이 당황스럽다. 게다가 오늘이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짐을 싸는 도중 함께 만들었던 기억과 추억을 되살리는 물건들이 튀어나오고, 그때마다 따로 있던 두 사람은 서로의 공간을 찾는다.
하루 종일 내리던 비를 피해 길 잃은 새끼 고양이가 집으로 찾아들고 숨어버린 고양이를 핑계로, 비에 잠겨 끊어진 다리를 핑계로, 두 사람은 하루를 더 함께 머물게 된다. 그와 그녀는 정말 헤어질 수 있을까?
새영화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는 늦은 오후부터 저녁 식사 전까지 그녀가 떠나기로 한 날, 두 남녀의 세 시간을 집요할 만큼 세심하게 따라간다. 함께 살던 5년간 쌓여왔던 습관과 기억은 헤어지기로 하고 짐을 싸는 세 시간 동안에 그 익숙함 속으로 다시 이들을 데려간다.
비가 들이치는 창문을 여전히 닫을 줄 모르는 여자와 그게 그렇게 어려우냐며 또다시 요령을 설명해주는 남자. 가루 세제는 잘 안 풀리니까 다음엔 꼭 액체 세제를 사야겠다고 말하는 여자. 마치 내일도 오늘 같은 시간이 또 이어질 것처럼 대화하고 행동하는 두 사람의 오후를 통해 관객은 그들의 5년을 들여다보게 된다.
배려심 많은 그는 헤어지는 오늘까지도 여전히 그녀에게 커피를 끓여주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그가 답답했던 그녀는 이별의 원인 제공자가 자신임에도, 상대가 누구냐고 묻지조차 않는 그에게 새삼 또 화가 치민다. 그리고 5년간 이어져왔던 일상의 한가운데로 불쑥 들어오는 이별이라는 현실은 미세하게 인물들의 표정과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보통의 영화라면 사건의 뒤에 가려 생략되었을 섬세한 감정과 행동, 표정까지 실시간의 느낌으로 놓치지 않고 보여준다는 것이다. 카메라는 집요할 만큼 두 배우를 따라가며 이별을 마주했으나 사랑이 아직 채 사라지지 않은 두 사람의 감정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한편, 이 영화는 '제61회 베를린 영화제' 공식 경쟁 부문에 초청됐다.
/[email protected]문영진기자
■사진설명=‘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는 이별을 마주했지만 사랑이 채 사라지지 않은 그(현빈 분)와 그녀(임수정 분)의 감정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현빈(왼쪽 사진)과 임수정의 섬세한 감정연기가 볼거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