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강희전 대한전선 사장 “10년 뒤 내다보며 비전 구축 매달렸죠”

조은효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1.03.06 22:11

수정 2014.11.07 01:31

한때 탄탄한 사업구조와 풍부한 현금으로 인수합병(M&A) 시장에서 큰손이었던 기업이 있다. 대한전선이다.

2000년대 초 전선업에서 더 이상의 성장성을 얻기 힘들다고 판단한 대한전선은 건설, 레저사업 등에 손을 댔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결국 대한전선은 지난 2009년 재무구조개선약정에 들어간 이후 모든 전략을 수정했다. 재무약정 졸업을 위한 ‘수치’ 달성을 위해 무주리조트 등 전선과 상관없는 사업은 거의 모두 정리했다.


동시에 숫자로 말할 수 없는 변화도 일어났다. 보수적이기로 손꼽혔던 조직문화는 사장과 직원이 카카오톡(스마트폰용 메신저)으로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눌 만큼 달라졌다. 사내 동기모임에 초청할 테니 밥값을 내 달라는 당돌한 직원의 메시지에 사장은 모든 약속을 취소하고 한걸음에 달려갔다.

변화의 중심에는 강희전 사장이 있었다. 대한전선의 ‘덕장형’ 최고경영자(CEO)이자 33년 전선맨으로 통하는 강 사장을 만나 도약의 기로에 선 대한전선에 대해 얘길 나눴다. 추위가 가시지 않은 지난 4일 서울 회현동1가 대한전선 본사. 강 사장은 지난 7개월간 준비해 온 비전작업을 마무리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200쪽이 넘는 대장정의 기록이었다. 그 안엔 대한전선의 향후 사업에 대한 모든 구상이 담겼다.

이달로 취임 1주년을 맞는 강 사장은 그간 변화와 관련된 책이라면 닥치는 대로 읽고 또 읽었다고 한다.

■33년 국내 최고 전선맨, 전선을 다시 공부했다

“(회사가 어려운데) 구조조정에 집중하지 무슨 비전작업이냐는 볼멘소리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시장이 신뢰하고 은행과 모든 금융기관이 믿어주는 탄탄한 예전(2000년대 초) 대한전선으로 돌아가기 위해선 방향을 설정하고 직원들과 목표를 공유하는 비전구축 작업이 첫걸음이라고 여겼습니다.”

발등의 불을 끄기도 바쁜데 무슨 비전 정립이냐는 따가운 시선에도 손관호 회장, 고 설원량 회장의 장남인 설윤석 부회장은 재무개선과 함께 대한전선의 밑그림을 그리는 작업에 매진했다. 현재의 위기를 초래한 사업다각화란 뼈아팠던 경영전략을 수정하고 10년 후를 내다보기 위한 초석이었다.

산을 타길 좋아하던 그는 잠시 등산도 접었다. “토요일에도 회사에 나가지만 특히 한 주간의 모든 구조조정에 대한 보고와 회의가 이뤄지는 일요일은 더 바쁩니다. 오전엔 매각 등 구조조정 등의 현안을 점검하고, 오후 5시부터는 비전 정립에 대한 회의가 이어집니다. 그만큼 추진력 있게 구조조정을 하겠다는 얘기죠.”

그의 말을 빌리자면 설 부회장 등 경영진과 직원들은 지난 2년간 소위 ‘월화수목금금금’의 생활을 지속했다.

“앞으로 1년 뒤, 5년 뒤, 10년 뒤를 목표로 3단계 중장기 비전(가칭) ‘201512(2020년, 2015년, 2012년의 뒤 두자리만 따서 만들었음)’를 세웠습니다. 우리가 어떤 회사냐는 고민을 시작으로 앞으로 뭘 먹고 살아야 할지 연구하고, 전문가를 불러 공부도 하고…. ”

전선회사에서 33년간 외길 인생을 살아온 국내 광통신분야 최고 권위자인 그가 “전문가를 불러 전선을 처음부터 다시 공부했을 정도”라고 말했다. 그만큼 혹독한 시간이었다.

강 사장은 최근 카카오톡으로 직원들과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최근 대한전선의 변화를 감지하고 있다. “어느 날인가 ‘사장님 오늘 동기들 모임인데, 참석해 주실 수 있으세요?’라는 카카오톡 문자를 받았죠. 다른 약속을 취소하고 바로 갔습니다. 거기 모인 친구들이랑 밥먹고 얘기하고, 밥값은 제가 내야죠(웃음). 그러려고 불렀을 테니…. 그날 밥값 좀 나갔습니다.”

직원들이 스스럼없이 다가오는 모습이 반가운 듯했다. “직원들 기 살리기도 제 중요한 역할 중 하나입니다. 2년 전 재무약정 상태로 들아가면서 직원들의 사기가 침체된 게 아닌가 걱정했습니다.”

지난해 5월 SK그룹에서 구조조정 등으로 잔뼈가 굵은 손관호 회장이 취임하면서 변화가 급물살을 탔다고 말한다.

“전 직원을 상대로 자기가 얘기하고 싶은 것, 불만사항을 다 써서 내라고 했습니다. 연수원 하나를 빌려 손 회장, 설 부회장 등 모두가 참석한 가운데 직원들이 회사에 대한 불만을 실감나게 상황극으로 꾸며 뭐가 문제인지 이해하려고 했습니다. 솔직히 말해 예전엔 그렇게 소통이 많지 않았습니다.”

위기가 만들어낸 변화일까. 이후 대한전선에선 소통의 기회가 점차 늘어갔다. 해병대 훈련을 비롯해 사내 독서포럼, 지식포럼, 광케이블 연구활동 포럼 등 말단 사원부터 최고경영진이 머리를 맞댈 자리가 다양하게 만들어졌다.

“직원들 고생이 많았죠. 안양공장을 당진공장으로 이전하면 그 고생의 열매들을 따게 될 겁니다.” 당진공장 진행 상황을 담은 현장사진을 넘기며 강 사장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고진감래의 상징이 될 당진공장은 세계 전선업계에서 최고 설비로 손꼽힌다. 안양공장에서 당진공장으로의 이전작업은 올 11월 완료를 목표로 현재 진행 중이다. 총 3개동 가운데 초고압전선공장은 완성단계에 이르렀다.

“올해가 무척 중요합니다. 이달부터 초고압전선 공장은 생산에 들어갑니다. 전 세계에서 이만한 전선공장은 없을 겁니다. 모든 공정에 전자태그(RFID)를 부착해 공정단계, 생산 진행상황들이 속속들이 자동으로 파악되죠. 또 공장 내엔 탄소를 배출하는 지게차가 들어오지 않도록 항만에서 볼 수 있는 크레인을 설치해 친환경적으로 설계했습니다.”

그는 지난 2009년 스마트그리드 제주실증단지 사업에서 한국전력과 손잡아 위기 속에서도 활로를 모색했다. “한전에도 여러 차례 갔습니다. 대한전선의 알짜 회사들을 엮어 한전 컨소시엄에 들어간 게 좋은 평가를 받은 것 같습니다.”

현재는 신재생에너지 설비에서 만들어진 전기를 송전할 직류케이블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그는 앞으로 신재생에너지사업 및 전기차 등과 연계해 전선사업의 새로운 가능성을 확신했다.

■재무약정 졸업은

“지난 2년간의 노력이 있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시장의 시각은 냉정한 것 같다”는 지적에 그는 재무약정에 관한 생각을 내비쳤다.

“일단 이자보상비율, 부채비율 등을 통과해 재무약정을 졸업해야 외부에서도 정상적이라고 판단할 겁니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사업목표를 높게 잡았고 남부터미널 등 부동산 매각이 끝나면 큰 고민은 덜게 됩니다. 그러면 내년엔 예전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 겁니다.” 그는 현재 계획하고 있는 회사채 2500억원 발행 외에 올해는 유상증자, 채권발행 등 증권시장을 통한 자금조달은 더 이상 없다고 밝혔다.

줄곧 본업인 전선사업 중심으로 사업구조를 조정하겠다는 그에게 현재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 중인 남광토건에 대한 향후 구상에 대해 물었다. 즉답보다는 우량회사로 만드는 게 급선무라는 답이 돌아왔다. 또 우량회사로 주목받고 있는 대경기계 매각에 대해선 “대경기계는 좋은 회사이기 때문에 내부적으로 더 좋은 기업으로 만들어 나갈 계획이며 매각은 그 이후의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달갑지 않은 비교도 했다. 국내 전선업계 양대축을 이루고 있는 LS전선과의 비교에 대해선 “LS가 잘하는 부분도 있고 우리가 잘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당진공장은 RFID 등 전선업계에선 처음으로 시도하는 부분도 있고, 모든 설비를 효율화했습니다.
” 강 사장은 당진공장에 대한 기대감으로 답을 대신했다.

/ehcho@fnnews.com조은효기자

■강희전 대한전선 사장 약력 △57세(제주출생) △대한전선 대표이사(2010년 3월∼현재) △대한전선 부사장 및 전선사업본부장 (2007년 1월∼2010년 2월)△대한전선 연구소 입사(1978년 9월) △한양대 전기공학과 졸업(1979년 2월)

■사진설명=강희전 대한전선 사장이 지난 4일 서울 회현동 1가 대한전선 본사에서 '십억불 수출의 탑'을 보여주고 있다.
대한전선은 지난 2007년 제44회 무역의 날에서 '십억불 수출의 탑'을 수상한 바 있다. /사진=서동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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