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바루’라는 자동차 브랜드는 낯설다. 시승하는 내내 절감했다. 주차장에서 만난 동네 주민들도 “별 모양 엠블럼의 이 차는 뭐냐?”고 물어왔다. 심지어 대리운전기사도 ‘스바루’는 처음 들어본다고 했다. 일본 후지중공업의 자동차 브랜드. 4륜구동과 박서엔진으로 유명한 스바루를 시승해봤다.
![]() |
| ▲ 스바루 레거시, 3.6리터 엔진으로 260마력의 힘을 낸다. 수평대향 박서엔진과 상시4륜구동 시스템으로 뛰어난 주행성능을 자랑한다. /사진=이다일기자 |
스바루의 특징은 ‘수평대향박서엔진’과 ‘기계식 4륜구동 시스템’이다. 수평대향박서엔진은 피스톤이 누워있다는 말이다. 엔진을 냉장고라고 가정하면 피스톤이 맥주병처럼 세로로 놓인 게 아니라 와인 병처럼 가로로 누웠다. 게다가 반복 운동하는 피스톤이 좌우로 리듬을 맞춰 움직인다. 피스톤이 고속 왕복해도 부드러운 것은 이 때문이다. 또 피스톤이 누워 있으니 엔진 높이가 낮아진다. 차체에 낮게 깔린 엔진은 무게중심을 낮춰 험로 주행에 도움을 준다.
스바루가 험로 주행에 탁월한 것은 엔진의 도움이 크지만 4륜구동 시스템을 빼놓을 수 없다. 승용차에 세계 최초로 4륜구동 시스템을 적용한 스바루는 눈길, 빗길을 가리지 않는다. 덕분에 랠리에 참가해 유명세를 떨쳤다.
국내에 들어온 스바루도 전 차종이 박서엔진과 4륜구동을 장착했다. 이번에 시승한 세단 ‘레거시’도 예외는 아니다.
박서엔진과 상시4륜구동의 능력
레거시에 올라타고 강원도 산길 못지않은 북악스카이웨이로 향했다. 시승차는 3.6ℓ엔진을 장착한 260마력(hp) 최대토크 34.2㎏.m 모델. 풀타임 4륜구동은 기본이다. 공인연비는 9.1㎞/ℓ로 배기량을 생각하면 적절한 수준. 다만 최근 3.6ℓ급 엔진들이 300마력을 넘기는 것과 비교하면 출력이 아쉽다.
제원상 아쉬운 출력은 고회전으로 커버했다. 박서엔진은 꾸준히 밟을수록 즐거움을 준다. 부드러운 엔진음은 이 차만의 특징.
![]() |
| ▲ 피스톤이 상하가 아닌 좌우로 움직이는 박서엔진. 덕분에 낮은 무게중심을 갖췄다. /사진=이다일기자 |
북악스카이웨이로 올라가자 차의 진가가 나온다. 고속 코너링 성능은 그야말로 최고다. 다소 무리하게 몰아붙여도 타이어가 우는 소리를 낼 뿐 차는 마치 기차 레일을 달리듯 코너를 빠져나온다. 특히 코너 중반에 가속페달을 밟아도 미끄러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단단하게 가속하며 코너를 공략한다. 엄청난 코너링 능력은 레거시의 가장 큰 장점이다. 상시4륜구동과 낮은 무게중심이 만든 역작이다. 경험상 아우디, BMW를 비롯한 4륜구동 승용차 가운데 손으로 꼽을 만 한 성능이고 미쓰비시 랜서에볼루션과 비교해도 손색없어 보인다.
시내주행 연비는 7㎞/ℓ대‥
북악스카이웨이를 내려와 시내로 접어들었다. 마침 퇴근시간과 겹쳐 혜화동 인근은 정체가 시작됐다. 시내에서 연비는 어떨까 궁금해 트립 컴퓨터를 리셋 했다. 퇴근 시간 서울 시내를 가로지르며 20여㎞를 주행한 결과 연비는 약 7.1㎞/ℓ. 3.6ℓ의 엔진으로 무난한 성적이다. 배기량으로 비슷한 급인 인피니티 G37세단 보다 다소 낮은 수준이지만 5단과 7단의 자동변속기 차이로 보면 될 듯. 좀 더 보태자면 이 차는 풀타임 4륜구동이지 않는가.
![]() |
| ▲ 약 20km거리의 시내주행에서 연비는 리터당 7.1km를 기록했다. 3600cc엔진으로 나쁘지 않은 수준. /사진=이다일기자 |
상시4륜구동에도 불구하고 연비가 후륜구동차와 비슷한 것은 차체 무게가 가볍기 때문이다. 인피니티 G37의 경우 공차중량이 1660㎏인 반면 레거시는 1605㎏으로 4륜구동 변속기를 갖추고 더 가볍다. 60㎏ 차이는 성인 1명으로 계산해도 충분한 수치로 연비가 좋은 이유는 가벼운 차체 덕도 있다.
가볍고 잘 달리고 코너를 잘 돌아가니 스바루의 달리기 실력은 세계 최고급이라 해도 손색없다.
1990년대로 돌아간 실내
뛰어난 엔진과 가벼운 차체를 가졌지만 신은 공평했던가. 약점은 있었다. 레거시 실내를 살펴보면 투박하기 이를 데 없다. 전체적인 느낌으론 마치 1990년대로 돌아간 것 같다. 쏘나타 2 시절이 생각난다. 운전석을 제외한 모든 창문은 원터치가 아니다. 역시 운전석 시트는 전동식이지만 메모리 기능은 없다. 심플한 버튼들은 꼭 필요한 기능이 꼭 필요한 곳에 있다. 쓰다보면 불만은 없겠지만 다양한 기능과 옵션으로 무장한 국산 세단을 보다보면 적응하기 힘들다.
![]() |
| ▲ 우드 핸들, 풀터치 내비게이션 등을 적용해 고급스러운 느낌을 살렸지만 세련되진 않았다. 최신 기능을 적용한 국산차가 오히려 부러워진다. /사진=이다일기자 |
내비게이션과 DMB는 국내에서 장착했다. 여기에 오디오도 포함됐다. 오디오까지 터치스크린으로 조작하기 때문에 볼륨을 제외한 기능은 모두 눈으로 보고 터치해야 한다. 고속 주행 중에 정확히 조작하기엔 묘기에 가까운 기술이 필요하다. 국내 판매량이 많지 않은 마이너 수입차의 한 종류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만 폭스바겐의 골프처럼 과감하게 내비게이션을 포기하는 것은 어떨까 생각도 든다.
오래 봐도 질리지 않는 무난함이 매력
레거시는 무난하다. 동력성능은 대단하다. 실내는 촌스럽다. 셋을 합쳐 평가하면 역시 ‘무난하다’로 정리된다. 엔진과 변속기, 상시4륜구동 시스템은 엄청나게 매력적이지만 이외의 부분에서 매력을 찾지 못했다. 다만 잘 달리고 잘 서고 안전한 차를 원한다면 스바루 레거시만큼 확실한 차는 없다. 각진 형태의 외형은 오래 봐도 질리지 않는 무난함이 있다. 내장도 이미 클래식한 느낌이니 꾸준히 타도 유행따라 변하지 않는 매력으로 느낄 수 있다.
![]() |
| ▲ 일본 6개 회사가 모여서 만든 후지중공업 스바루. 각각의 별은 6개의 회사를 상징한다. /사진=이다일기자 |
스바루 레거시를 비롯해 아웃백, 포레스터 등 차량들은 미국에서 별5개의 최고 안전등급을 받았다. 에어백은 빼곡하게 둘러 있으며 충돌테스트 점수도 좋다. 잘 달리고 안전하니 차의 기본기에 충실하다. 덕분에 북미지역에서는 인기가 높다. 눈이 많고 혹한이 이어지는 날씨에선 길을 달릴 수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하다. 그래서 춥고 미끄러운 지역에서 스바루의 인기는 높다. 우리나라도 겨울철 폭설을 빠져나갈 대안으로 스바루 레거시는 뛰어난 선택이다. 다만 무난함에 지치지 않는다면 말이다.
스바루 코리아는 적절한 가격에 차를 내놨다. 뛰어난 달리기 성능을 생각하면 다소 저렴한 것이 아닌가 생각되지만 밋밋한 실내를 보면 적절해 보이기도 한다. 수평대향 4기통 2.5ℓ 박서엔진과 CVT 변속기를 갖춰 11.2㎞/ℓ의 연비를 보이는 레거시 2.5는 3690만원, 3.6ℓ엔진에 자동5단 변속기를 갖춘 레거시 3.6은 4190만원이다.
/car@fnnews.com 이다일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