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사설] 돈 벌어 투자 않고 곳간만 채울건가

파이낸셜뉴스

기업이 자본 거래나 영업 활동을 통해 벌어들인 돈을 얼마나 사내에 쌓아 두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를 유보율이라고 한다. 유보율이 높을수록 재무구조가 건실해 위기에 대한 적응력이 높고 투자 여력이 많다는 의미다. 반면 돈이 투자 등 생산적인 부문에 쓰지 않고 곳간에 쌓아 두고만 있어 잠재 성장동력이 약화할 수 있다는 부정적 해석이 가능하다.

지난해 상장사들이 양호한 영업 실적에 힘입어 유보율이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고 한다. 한국거래소와 한국상장사협의회는 5일 자산총액 기준 10대 그룹 상장계열사 76곳의 지난해 말 현재 평균 유보율이 1219%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금액으로 치면 이익 잉여금이 242조여원에 달하고 자본금의 12배가 넘는다. 돈을 곳간에 넘칠 정도로 쌓아두고 탄탄한 재무구조를 자랑하고 있는 셈이다.

높은 유보율은 외환위기 때 곤욕을 치른 기업들이 꾸준히 재무구조를 개선한 결과다. 실제 대기업 유보율은 2004년 600%을 넘어선데 이어 2007년 700%, 2009년에는 1000%대로 올라섰다. 유보율이 100%도 안돼 외환위기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든다. 우리 경제가 금융위기를 무난히 넘긴 원동력도 건실한 유보율 덕분이다.

그러나 기업의 안정성 확보를 이유로 대규모 유보금을 마냥 곳간에 쌓아 두는 것은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유보율이 1만%에 이르고 심지어는 3만%가 넘는다는 것은 지나친 보수적 경영의 산물이다. 투자는 하지 않고 기존 사업에 안주하겠다는 뜻이다. 글로벌 경쟁력을 가진 초일류 기업으로 도약하려는 기업가 정신이 살아 있는지 의문이 간다.

비록 우리 경제가 회복 국면에 들어섰다고 해도 안정 성장과 잠재 성장동력 확충을 위해서는 더욱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곳간에 쌓인 돈을 설비와 연구개발에 투자해야 생산 증대 및 원가 절감, 이익 증가, 유보율 확대의 선순환이 일어난다. 이는 우리 경제 현안인 일자리 창출, 소득과 소비 확대, 생산 증대를 통한 지속 성장을 이룰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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