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전시·공연

[문화산업을 이끄는 사람들] 박세원 서울시오페라단장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1.04.06 11:31

수정 2014.11.06 22:28


1984년 봄, 서른일곱 테너 박세원이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 섰다. 푸치니 오페라 ‘토스카’ 무대였다. 그가 맡은 역은 토스카의 연인이자 남자주인공 혁명파 화가 카바라도시역. 상대역 토스카는 이태리 출신 소프라노였다. 연적인 로마 경찰 스카르피아 역시 이태리 출신. 당시 국내 오페라는 ‘토스카’ 주역을 맡을 성악가가 남녀를 통틀어 손에 꼽을 정도로 취약했던 시절이다. 작품의 완성도는 높진 않았지만, 관객의 몰입도는 최상이었다.

공연을 끝내고 왈칵 울음을 쏟아냈다. 유럽 오페라 극장을 누비던 이태리 유학생 박세원에게 이 공연은 고국서 가진 첫 무대였다.

세종문화회관 서울시오페라 단장 박세원 서울대 음대 교수(64). ‘토스카’ 주역으로 첫 고국 무대를 밟은 지 27년만에 이젠 이 공연을 총지휘하는 예술감독으로 옷을 갈아입는다.

서울시오페라단이 오는 21일부터 24일까지 ‘토스카’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올린다. 서울시오페라단이 ‘토스카’를 공연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워낙 대중적인 작품이니까요. 민간 오페라단체가 할 수 있게 양보한 거죠. 올해는 관객들에게 친숙한 작품으로 레퍼토를 짜다보니 ‘토스카’를 고르게 됐어요.”

‘토스카’는 19세기 로마의 긴박한 정치 상황 속에서 펼쳐진 비극적인 사랑을 다룬 작품이다. 19세기말 프랑스 극작가 빅토리앙 사르두의 연극 ‘라 토스카’가 원작.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한 리얼리티 만점의 이 연극은 당시 선풍적인 인기였다. 연극은 오페라 무대로 옮겨오면서 푸치니의 음악을 만나 더욱 강렬한 드라마가 됐다. 전설의 소프라나 마리아 칼라스의 대표작도 이 ‘토스카’다. “이태리 전통 스타일을 고수하면서도 모던한 느낌을 곁들일 겁니다. ‘오묘한 조화’ ‘별은 빛나건만’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이런 주옥같은 아리아가 끝도 없잖아요. 오페라의 진맛이 우러나는 선율이에요. 웅장한 에너지와 기묘한 극의 흐름이 매력적이죠. 푸치니의 천재성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

그가 강조하는 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오페라 전문 지휘자 마크 깁슨의 등장이다. 뉴욕시티오페라단,바르셀로나 리세우극장 지휘자를 거쳐 지금은 신시네티대 교수로 재직중이다.“오페라 지휘는 오케스트라 지휘와는 다른 영역입니다. 카라얀도 오페라 지휘를 여러번 했지만 그때마다 후한 평가를 받지는 못했어요. 오페라 지휘는 오케스트라 단원 뿐만아니라 무대위 배우들과 돌발상황까지 고려해야해서 난이도가 높은 영역이에요. 역량있는 수많은 지휘자들이 오페라 지휘에 욕심을 내는 것도 이런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박세원 단장은 국내 오페라사에 한획을 그은 인물로 평가받는다. 1980∼90년대 국내 최고 테너가수로 군림했고, 지금은 오페라계 ‘지도층 인사’다. 평소 중후한 음색에 부드러운 처신으로 ‘오페라계 신사’로도 불려왔다. 하지만 그의 지난 시절 얘기를 들어보면 그저 순탄한 성악도의 길만 걸어온거 같진 않다. 물론 일찍 클래식에 눈을 뜬 부모님 덕에 다섯살부터 성악을 시작했고, 초등학교 시절 국내 주요 성악콩쿠르를 석권한 뒤 서울예고-서울대 음대-이태리 유학까지 차례로 ‘코스’를 밟은 것만 보면 평범해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엔 그의 못말리는 고집이 숨겨져있다. 독립심이 강했고 예술가들이 놓치기 쉬운 현실 감각까지 충만했다. “학창시절 충무로 돌체다방에서 예술가들이 많이 모였어요. 쟁쟁한 음악가들이 다 있었죠. 그 분들이 그 자리에선 다들 너무 멋있었는데, 집에 돌아가면 전기세도 내지 못하는 그런 생활을 하시더라구요. 가난한 예술가라는 말이 싫었어요. 가난하면 악상도 안 떠올라요.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성악을 끝까지 하기 위해 기술하나를 배워야겠다 생각한 겁니다.”

대학 입학후 1년을 휴학하고 이 기간 피아노 조율하는 일을 배웠다. 이후 대학 내내 조율사 아르바이트를 하며 등록금,생활비 일체를 스스로 댔다. 국립대 한해 등록금이 1만원하던 시절, 그의 한달 아르바이트 수입이 1만원을 훌쩍 넘었다. 대학교 4학년땐 신형 자동차 한대도 굴릴 정도가 됐다. 이태리 유학 자금도 조율 아르바이트를 통해 조달했다. “이태리서 가장 큰 피아노회사에 들어갔어요. 조율사 일을 했죠. 그 일을 하면서 이태리 유명 극장의 무대 뒤를 섭렵했습니다. 무대뒤 가수들의 애환과 에피소드, 이태리 성악가들은 무엇을 가장 힘들어하는 지, 무대는 어떻게 제작되는 지 제대로 공부를 한 셈이었죠.”

테너 가수로만 무대에 서다 서울시오페라단 예술감독을 맡은 건 2006년이다. 그간 두차례 연임돼 앞으로 남은 임기는 내년 4월까지. 박단장은 지난 5년간 세가지에 주력했다고 한다. 일반 관객들이 직접 표를 사고 싶게 만드는 일, 스타 캐스팅보다 오디션을 통한 신인 발굴, 마지막은 오페라 수출이다. 지난 2008년 이태리 트리에스테에서 올렸던 ‘라 트라비아타’를 서울시오페라단의 수출 1호로 꼽는다.

박단장은 우리나라는 물론,아시아 오페라 시장에 강한 기대감을 표했다. “국내 오페라 주관객이 20∼30대 여성입니다. 유럽에선 오페라가 사양화길을 걷고 있지만 아시아는 달라요. 중국,베트남,캄보디아 이런 곳에서도 수요가 확 늘고 있어요.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닙니다. 자발적인 취향이에요. 18세기,19세기 유럽 스타일에 대한 동경같은 것이기도 하구요. 이제 큰 장이 설 겁니다. 한국 오페라가 아시아 무대를 공략할 때가 됐어요. 우리나라가 오페라 강국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그간 충분히 실력을 쌓았으니,이제 바람을 일으켜봐야하지 않을까요.”

/jins@fnnews.com최진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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