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5월 24일 와인 판매상인 영국인 스티븐 수퍼리어가 프랑스 출신 와인전문가 9명을 초청해 프랑스 파리에서 와인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개최했다. 결과는 의외였다. 캘리포니아 와인이 높은 점수 차로 프랑스 와인을 눌렀다. 이 사건은 미국 타임지의 파리 주재원인 조지 테이버가 '파리의 심판(The Judgment of Paris)'이라는 제목으로 기사화하면서 전세계에 알려졌다.
프랑스인들이 자랑하는 5대 샤토 중 하나인 '샤토 무통 로칠드'를 누르고 1위에 오른 와인은 바로 캘리포니아 와인 '스텍스 립 와인 셀라 SLV 카베르네 소비뇽(1973)'이었다.
사실 이전까지 역사가 짧은 캘리포니아 와인은 수백 년 동안 와인의 지존으로 독점적 우위를 지켜 온 프랑스 와인에 가려져 프랑스는 물론 미국 내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었다. 파리의 심판은 다윗이 골리앗을 누른 성경 속 이야기에 비견될 만한 일대의 사건이었던 셈이다.
스텍스 립 와인 셀라 SLV 카베르네 소비뇽은 국내에서 28만원선에 판매되며 스테이크, 치즈와 잘 어울리는 와인이다. 바닐라, 나무, 장미향이 조화를 이루는 이 와인은 파리의 심판 이후 캘리포니아 대표 와인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이후 30년이 지난 2006년 수퍼리어가 나파밸리에서 재대결 자리를 만들었으나 이 자리에서도 캘리포니아산은 1∼5위를 휩쓸었다. 보르도의 자랑 '샤토 무통 로쉴드'는 6위에 머물렀다. 한 프랑스 심사위원은 30년 만에 같은 평가에 참가해서 캘리포니아산을 보르도산으로 헛짚었다. 그는 "귀국하면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수퍼리어는 "보르도는 캘리포니아를 이길 수 없다"며 '완벽한 승리'를 선언했다.
/yhh1209@fnnews.com유현희기자·도움말=나라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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