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인터뷰한 현대중공업 해양플랜트 담당 임원의 자부심 어린 고백이다.
해양 불모지의 어려움을 딛고 지난 2000년대 중반부터 화려하게 수주몰이에 나선 한국의 해양플랜트사업. 이미 일본, 유럽 등 외부 추격세력들은 하나 둘 떨어져나가면서 이제 한국 조선해양업체들의 남은 경쟁자는 오로지 자기자신뿐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세계적인 석유재벌들은 한국 조선해양업체들을 대상으로 새로운 모험을 시도하고 있다. 로열더치셸은 삼성중공업에 액화천연가스(LNG) 부유식 생산저장하역설비(FPSO)를 발주했다. 이는 아직 한번도 시도하지 않은 신기술로 새로운 지평에 대한 도전이다. 이미 해상플랜트 시장에서도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한 현대중공업에 오일메이저들은 해상이 아닌 심해저 기자재 시장 진출을 권한다. 대우조선해양은 신성장사업으로 육상의 이산화탄소 포집사업과 연계한 초대형 해저사업으로 10년 뒤 시장 선점에 나선다는 구상이다.
중국 등 추격세력과의 격차를 멀찍이 떨어뜨려 놓은 지금, 각사 경영진의 역량과 추진력, 팀워크 등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변수로 떠올랐다.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STX 각사 해양플랜트분야 사령탑들의 면모를 조명해본다.
■30년 이상 근속, 혹한기를 버틴 현장 달인들
"인도국영석유가스(ONGC)가 발주한 재킷이라 부르는 총 4기의 해양 하부구조물을 성공리에 제작해 바지선에 실어 출항시켰다. 1983년 2월 22일의 일이다. 멀리 울산 앞바다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배를 보며 만감이 교차해 눈물을 억제할 수 없었다.…(중략)… 그런데 며칠 뒤 인도 현지에서 다급한 연락이 왔다. 인도 해상에서 설치 중인 재킷이 바다에 빠졌다는 것이다. 곧바로 인도 뭄바이 현장으로 날아갔다. 처음 해본 인도 해상에서의 재작업 과정은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건져올린 재킷이 다시 바다에 빠지길 수차례. 각고의 노력끝에 처음 목표했던 대로 1983년 4월 30일 풀턴키 공사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해양프로젝트로 기념비적인 것이라 생각된다. 현대에 맡기면 모든 것이 틀림없다는 확신을 ONGC에 심어줬다."(해양사업본부 당시 최충영 이사의 글, '현대중공업 20년사'에서 발췌)
지금으로부터 약 28년 전인 1983년 당시의 고백은 한국 해양플랜트 역사를 가늠케한다. 1970년대 현대중공업이 가장 먼저 창립된 후 해양사업에 진출했고 뒤이어 1980년대 초반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도 창립과 함께 해양시장에 들어갔다. 현재 각사를 이끌고 있는 해양사업 사령탑 들도 대개 1970년대 말, 1980년대 초 조선사에 입사해 국내 해양사업 태동기를 함께한 인물들이다. 대부분 30년 이상 해양사업에서만 한길 인생을 걸어왔다. 이들은 한마디로 혹한기를 버텨온 현장의 달인들이다. 지나온 시간은 녹록지 않았다. 교본을 통해 배운 기술이 아닌 그야말로 현장에서 모든 걸 처음부터 익혀야 했다. 발주처에서 파견 나온 직원로부터 설움을 당하며 어깨너머로 배운 기술이 실패하기를 여러 번.그때마다 꼼꼼히 문제해결 과정을 적은 노트의 두께는 두꺼워졌다. 영업 환경도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지금은 큰 프로젝트가 있을 때 석유개발업체로부터 가장 먼저 연락이 오지만 당시엔 만나기조차 어려웠다.
더 어려운 건 유가변동이었다. 1980년대 초 조선 3사는 변동하는 유가와 시장변화에 맞춰 수시로 해양사업부를 조정했다.1980년대 말엔 해양분야 수주가 완전히 끊기다시피 했다. 1990년대 후반에도 이 같은 현상은 반복적으로 일어났다. 해양사업 담당 직원들이 일감이 없어 조선분야로 차출되는 게 다반사였다. 심지어 100여명이었던 설계 담당 직원들이 20여명으로 줄어들기도 했고 조직이 통합되기도 하는 등 기복이 심한 해양 석유개발 시황에 따라 해양분야 직원들도 호된 시간을 버텨야 했다. 그 시간은 2000년대 초중반까지 이어졌다. 다른 반쪽인 선박건조(조선)사업이 어려운 시기에 든든한 지지대가 돼줬다. 2000년대 중반 조선산업 호황과 함께 조선사들은 조 단위 초대형 일괄턴키 방식의 해양플랜트들을 본격 수주하기 시작했다.
■현대중공업
현대중공업 해양사업 총괄 임원인 강창준 본부장(전무·57)은 선 굵은 카리스마형 리더로 평가된다. 강 본부장은 한양대 원자력공학과를 졸업한 뒤 1978년 현대중공업에 입사해 1981년부터는 줄곧 해양사업본부에서 해양설비설계,공사관리, 해외현장 설치 경험 등을 두루 쌓은 해양플랜트 분야 최고 전문가다. 수영과 사이클로 다져진 체력은 철인 3종 경기에 출전할 정도다. 지난해 말엔 해양사업본부 1200여명 직원의 금연을 성공적으로 이끌 정도로 추진력이 뛰어나다는 평이다. 올해 강 본부장의 과제는 향후 10년을 내다보는 현대중공업의 신성장동력 확보다. 그가 주시하고 있는 분야는 기존 해양석유가스개발 플랜트 역량 강화와 LNG FPSO진출, 해상풍력설비 등이다.
현대중공업에서 해양플랜트영업을 담당하고 있는 김종도 전무(55)는 부산대 기계과를 졸업하고 1981년 현대중공업에 입사해 해양공사관리(PM) 업무로 해양사업과 첫 인연을 맺었다. 1990년대 초 해양영업 파트로 이동한 후 기술영업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현대중공업의 미주, 북해, 동남아, 서아프리카 시장 공략에 기여했다. 김 전무는 1990년 최초의 북해공사인 블레이즈재킷 공사를 수주한 이후 현재까지 20여년간 총 200억달러 규모의 해양수주를 일궈냈다.
해양사업부 공사관리 총괄 임원인 김대영 전무(57)는 1977년 2월 영남대 기계과를 졸업하고 현대건설에 입사한 후 1984년 현대중공업으로 이동했다. 25년간 해양공사관리(PM) 분야에서 근무한 그는 이 분야 자타공인 최고 베테랑이다. 엑손모빌 등 대형 발주처의 숱한 공사를 맡았지만 김 전무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공사는 2001년 한국석유공사가 발주해 현대중공업이 구축한 동해-1 가스생산 프로젝트다. 그는 "동해 가스전 프로젝트로 한국이 산유국 대열에 오르는 데 기여했다는 데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한다.
■대우조선해양
대우조선해양은 사업총괄을 담당하고 있는 고재호 부사장 아래 류완수 부사장(54)이 해양사업부문장을 맡고 있다. 서울대 기계설계학과를 졸업하고 카이스트에서 생산공학 석사학위를 취득한 류 부사장의 주종은 해양플랜트 '영업'이다. 21년간 대우조선해양에서 해양영업을 담당해 온 류 부사장은 1990년대 말∼2000년대 초 불어닥친 수주 가뭄을 견뎌내고 2000년대 중반부터 대우에 초대형 수주를 안겨준 인물. 상황판단력과 순발력이 뛰어나 영업맨의 교본이라 불릴 정도로 발주처를 비롯, 조직 내에서 높은 신망을 얻고 있다.
류 부사장과 함께 뛰고 있는 이재하 상무(54)도 해양영업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고려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한 이 상무는 포용력과 함께 추진력을 겸비한 것으로 평가된다. 미국 휴스턴 사무소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이 상무는 현재 대우조선해양의 주요 발주처인 앙골라에 1990년대부터 진출, 초대형 프로젝트 수주를 위한 초석을 다졌다. 이 상무가 수주한 아그바미 FPSO는 대우조선이 최초로 수주한 설계·구매·시공·설치(EPCI)로 기록된다. 옥포조선소의 해양사업관리팀장 조홍철 상무(54)는 서울대학교 자원공학과를 졸업하고 1981년 대우조선해양에 입사했다. 1990년대 초반 선박영업에 잠시 몸담기도 했지만 줄곧 해양영업, 해양사업관리로 해양사업에서 탄탄한 이력을 쌓았다. 조 상무는 국내 중소 협력업체들의 대형 사업참여를 위해 선주사측과 적극적으로 커뮤니케이션에 나서는 등 문제해결 능력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된다.
■삼성중공업
삼성중공업 해양설계담당 원윤상 전무(53)는 해양설계 분야의 최고 전문가로 불린다. 서울대 조선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버지니아공대 박사학위를 취득한 원 전무는 1993년 삼성중공업에 합류한 후 해양기본설계 역량과 기술력 강화에 주력하고 있다. 원 전무는 삼성중공업의 대표적인 해양제품인 드릴십의 표준 모델 개발로 수주 경쟁력을 높이는 데 일조한 것으로 평가된다. 아울러 설계역량을 기반으로 LNG FPSO 시장 선점에도 상당한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삼성중공업 손상락 해양생산담당 전무(56)는 쿠웨이트, 인도네시아 등 현지에서 해양사업 경험을 두루 거친 현장 전문가다. 풍부한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손 전무는 해양플랜트 건조 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점을 해결하고 새로운 건조 공법과 시스템을 제시하는 리더다. 이 같은 문제해결 능력으로 손 전무는 삼성중공업의 대표 해양제품인 드릴십의 경쟁력 확보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부산대 조선공학과를 졸업한 유길환 해양생산팀 상무(56)는 해양 공사관리(PM)2팀장으로 재직하면서 드릴십 프로젝트 관리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는 평이다.
■STX
해양사업 후발주자지만 업계 다크호스로 떠오르고 있는 STX에선 조선해양 분야에서 30여년간 경험을 쌓은 조용진 전무(54), 한영일 전무(56), 황승찬 부상무(48) 등이 포진해 있다.
조용진 전무는 현재 STX다롄 조선소 해양(생산부문) 총경리를 맡고 있다. 부산대 조선공학과를 졸업하고 32년째 조선업계에 종사해온 조 전무는 다소 특이한 경력을 소유한 해양플랜트 전문가다. 그는 1979년 대한조선공사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한 이후 조선기자재 무역업체를 직접 경영하기도 했으며 해양 프로젝트 전문기업인 옌타이라플즈의 최고경영자(CEO)를 맡기도 했다. 조 전무는 STX다롄의 해양플랜트 생산능력에 대해 "준비과정은 물론 검증까지 마친 상황"이라며 자신하고 있다. 그는"STX다롄의 가격경쟁력과 프로젝트 시행 시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문제에 대해 체계적인 대비가 돼 있다"고 설명한다.
STX다롄 해양설계본부장 한영일 전무는 30여년간 조선해양설계 분야에서 근무해왔다. 한 전무는 STX다롄의 짧은 역사를 뛰어넘을 기술특허 확보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STX조선해양 해양영업1실장을 맡고 있는 황승찬 부상무(48)는 기술영업, 조선해양 분야 연구개발(R&D) 해양영업 등 해양플랜트 관련 분야에서 25년간을 일한 업계 베테랑이다. 그는 드릴십, 파이프부설선 등을 수주해 해양실적이 전무했던 STX조선해양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ehcho@fnnews.com조은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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