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과학 건강

사후응급피임약 일반약 전환 논쟁 격화

허현아 기자
파이낸셜뉴스

의사 처방이 꼭 필요한 전문의약품과 의사 처방 없이 살 수 있는 일반의약품을 재분류하려는 움직임이 가시화되면서 사후응급피임약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의사의 처방을 받아야만 복용할 수 있는 사후응급피임약을 일반약으로 전환해 낙태를 예방하자는 주장과 오남용을 부추길 것이라는 우려가 팽팽히 맞서면서 연일 상반된 주장이 쏟아져 나와 그 결과가 주목된다.

20일 보건의약계에 따르면 최근 의약품 재분류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응급피임약 논쟁이 고조될 조짐이다. 지난 19일 중앙약사심의위원회에서 사후응급피임약이 재분류 대상에 오른 가운데, 보건의료 이해관계자들의 이견이 팽팽히 맞서 논란을 예고했다.

■응급피임약 약국판매 이견 '팽팽'

우선 시민단체와 여성단체들은 부작용에 대한 안전장치를 전제로 낙태 예방을 위한 사후응급피임약의 일반약 전환에 힘을 싣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낙태를 범죄로 규정하고 이를 규제한 정책이 낙태를 감소시키지 못했다"며 "사후응급피임약을 일반약으로 전환해 원치 않는 임신으로 인한 중절수술이나 미혼모 출산 등을 방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 미국, 영국, 프랑스, 캐나다, 벨기에, 핀란드, 스페인, 스웨덴, 호주, 중국, 뉴질랜드 등 외국의 경우 사후응급피임약을 약국에서 판매해 낙태를 예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는 게 경실련 측의 주장이다.

한국여성민우회와 한국성폭력상담소는 "각종 이해관계와 경제적 논리에 치우쳐 사후응급피임약의 접근성이나 여성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 등을 간과하는 것은 매우 유감스럽다"며 "보건복지부는 여성들 스스로가 원치 않는 임신을 포함한 응급 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높이되 복용 방법, 부작용 등을 충분히 고지하는 보호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대한약사회도 사후응급피임약을 일반약으로 전환해 약국 판매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후응급피임약은 가능한 12시간, 늦어도 72시간 안에 먹어야 효과가 있는데 의사 처방을 반드시 받도록 할 경우 복용 시기를 놓칠 수 있다는 논리다.

하지만 의료계는 이 같은 요구가 터무니 없다는 반응이다.

산부인과의사회는 "응급피임약에는 일반 경구피임약의 약 10∼30배에 달하는 고용량 호르몬이 들어 있어 복용 후 메스꺼움이나 구토, 두통, 유방통증 등 부작용 위험이 높다"며 "오남용할 경우 인공임신중절, 성병, 골반염 등의 발생률도 높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낙태 논쟁 불씨 되나

이런 가운데 응급피임약의 약국 판매 허용이 실제로 낙태 예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해외사례도 제시돼 주목된다.

지난 2001년 응급피임약의 일반약 판매를 허용한 스웨덴 정부통계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07년까지 스웨덴의 낙태율은 17% 늘어났으며 응급피임약 매출액도 3배나 늘었다.

영국의 애나 글래시어 박사는 응급피임약의 접근성을 확대하더라도 임신율과 낙태율에 미치는 영향은 없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영국 의학저널지에 발표하기도 했다.

이번 논란이 보건의료 관련 이해집단의 갈등을 넘어 사회적 낙태 논쟁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자 제약사들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응급피임약의 약국 판매가 허용되더라도 장기적으로 매출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사후응급피임약의 접근성 확대가 사후피임을 늘려 여성의 건강에 부정적인 인식을 줄 것이라는 우려도 있으므로 사전 피임의 중요성을 알리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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