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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으로 다가온 팍스차이나 시대] (2) 도광양회에서 글로벌 패자로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1.08.11 17:55

수정 2014.11.05 15:15


【베이징=차상근특파원】 도광양회(韜光養晦)와 대국굴기(大國堀起). '어둠 속에서 힘을 길러 대국으로 우뚝 서겠다'라는 이 두 문구에는 세계를 향한 중국의 외침이 담겨 있다. 중국은 세계 주요 2개국(G2)의 상대편인 미국을 압박하며 대굴국기를 향해 힘을 뻗어가고 있다. 미 국채는 수출을 통해 벌어들인 부를 축적할 투자대상일 뿐 아니라 미국을 압박하는 좋은 무기가 되고 있다.

■美국채 앞세워 수세에서 공세로

중국의 개혁 개방 원년인 1978년 중국의 외환보유고는 1억6700만달러(약 1800억원)에 불과했다. 이후 1996년에야 1000억달러(약 108조원)를 넘겼지만 10년 만인 2006년 1조달러(약 1080조원)로 불어나면서 주체하기 힘든 지경이 됐다.

올해 6월에는 3조2000억달러(약 3457조원)까지 급증했다. 수출확대에 따른 무역수지 흑자와 외국인직접투자(FDI)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중국은 외환보유고 1조달러를 넘기면서 과다한 무역수지 흑자 때문에 미국과 본격적인 무역마찰을 빚었다. 이 과정에서 달러 및 미국 국채 일변도의 보유 외화자산 다원화를 본격 추진했다.

중국은 세계 최대의 외환보유국이자 미국의 최대 채권국이면서도 미국에 대해서는 그동안 수세적 입장이었다. 그러나 올 들어 미국의 재정적자와 과다부채에 대한 우려가 심화되자 보유 외화자산의 가치하락을 막고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공세적 입장으로 선회했다. 중국은 현재 1조1600억달러(약 1253조원)에 이르는 미 국채와 패니메이와 프레디맥 등 미국 국책 모기지기관 채권 3000억달러(약 324조1000억원)어치를 포함해 외환보유고의 71%를 달러 자산으로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포트폴리오 구성이 여전히 미국 편향적이다.

중국은 현재 채무위기에 선 미국을 '부채중독증환자'로 지칭하는 등 전례없이 미국을 몰아붙이고 있다. 원자바오 중국 총리는 "투자자를 위해 재정적자를 줄이고 채무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책임있는 재정·통화정책을 단행해야 한다"며 미국을 오히려 압박했다.

■금융위기의 뼈아픈 교훈

중국이 미국을 향해 발톱을 세운 이유는 여러가지다. 우선 지난 2008년 미국 금융위기 때의 뼈 아픈 경험 때문이다. 국제 금융가에 알려진 바에 따르면 당시 중국은 막 출범한 국부펀드, 중국투자공사(CIC)에서만 투자자산의 25% 이상을 손실처리해야 했다. 하지만 채무자인 미국으로부터는 채권자의 당연한 요구조차 철저하게 묵살당했다.

중국은 이번 2차 미국발 신용위기로 인해 막대한 손실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 매일경제신문은 익명의 외국계 투자은행 애널리스트들의 말을 인용해 미 정부 채권의 가격이 이번 위기로 20% 이상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이렇게 되면 중국은 미 국채로만 2300억달러(약 248조8600억원)에 달하는 평가손실을 입을 수 있다.

또 미국의 집요한 위안 평가절상 요구와는 달리 달러 대비 위안의 가치는 지난 2005년 7월 변동환율제 도입 이후 20% 평가절상됐다. 이는 당시 1만달러를 환전하면 8만1100위안이었으나 지금은 6만4300위안에 불과해 1만6800위안(약 283만원)의 손실이 난다는 뜻이다. 위안 평가절상으로만 보면 중국이 보유한 달러자산은 20% 이상 줄어든 것이다. 미국에서 3차 양적완화(QE3)정책이 시행되면 '약달러, 강위안' 추세는 심화될 전망이다. 중국으로서는 외화자산 보호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셈이다.

■대굴국기 시험대

현재 중국은 불쾌하지만 어쩔 수 없었던 '을'의 입장을 벗어나 채권자로서의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겠다는 의지를 품고 있다. 나아가 적어도 이번 사태를 계기로 G2로서의 지위를 확고히 하는 것은 물론 위기 이후의 상황까지 모색하겠다는 전략적 포석도 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중국이 그동안 걸어온 도광양회(韜光養晦·어둠 속에서 힘을 기른다)의 길을 접고 이제는 적어도 경제분야에서만큼은 대국굴기(大國堀起·대국으로 우뚝 일어섬)하겠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과다채무와 막대한 재정적자, 신용위기까지 겹치면서 무기력증에 빠진 미국을 상대로 글로벌 패권을 넘겨받기 위한 대국굴기 행보가 첫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중 국무원 발전연구센터 금융연구소 소장 겸 중앙은행 통화정책위원회 위원 샤빈은 "이번 미국 사태를 계기로 중국은 가능한 한 빨리 해외투자위원회를 만들어야 한다"며 "장기적으로 2020년, 2030년의 중국 상황을 가정해 각종 물자자원을 모으고 금융기구와 기업, 나아가 개인의 역량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csky@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