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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와 차한잔] 크로스오버 가수 카이,‘지킬’은 고사했지만...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1.09.19 15:44

수정 2011.09.19 15:44


이 청년, 사람을 끌어당기는 자석 같은 걸 몸에 지니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전 명함이 없는데요. 아, 제 얼굴이 명함입니다.” 생글거리며 이런 멘트를 툭 내뱉는다고 그저 가벼운 신세대 가수이겠거니, 이런 짐작은 오산이다. 그의 진심은 “클래식이 소수를 위해 과시하는 음악이 아닌가 고민에 빠진 적이 있어요”로 시작되는 과거 회상에서 찾는 게 더 맞을 것 같았다. 엘리트 성악가 출신의 크로스오버 가수 카이(30). 누구도 가본 적 없는 길을 해맑게 웃으며 혼자 신나게 걸어가고 있는 아티스트다.



■카이에 대한 오해 세 가지

카이를 제대로 알기 위해 필요한 건 ‘세 가지 뒤집기’다. 서울예고 수석졸업, 서울대 성악과 학사 석사를 거쳐 지금은 박사과정 중. 이 화려한 프로필에서 예상되는 건 ‘곱게 자란 귀공자’이겠지만 카이는 서울 청담동 반지하에서 살며 레슨비를 벌기 위해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한 의지의 학생이었다.

귀에 금색 피어싱 귀고리를 한 카이는 말쑥한 외모로 아이돌 이미지를 풍긴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런 상태’였을 것이라는 생각도 뒤집어야 한다. 그는 6~7년 전엔 171㎝ 키에 100㎏이 넘는 거구였다. 조승우가 나온 뮤지컬 ‘카르멘’을 본 뒤 38㎏을 감량한 집념의 사나이다.

대중적으로 인지도를 높인 건 소프라노 조수미의 공이 크다. 그렇지만 억세게 운이 좋아 벼락 스타가 된 경우로만 보면 이 또한 오해다. 5년 전, 대학 3학년을 다니다 공익근무요원으로 군생활을 하던 카이는 밤마다 혼자 녹음작업을 했다. 반주는 교회 성가대의 아는 형이 맡았다. 직접 만든 데모 앨범을 들고 기획사를 일일이 찾아다녔다. "그때마다 문전박대 당했어요.하하.각종 오디션도 다 봤는데 퇴짜맞았죠". 반전은 복학 후 학업에 열중하고 있을 무렵 이뤄졌다. 몇년 전 데모 앨범을 건넸던 어느 기획사 대표로부터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제대로 된 앨범을 만들어보자”는 게 요지였다. 카이만의 창법으로 소화한 클래식, 팝, 대중가요가 담긴 앨범이 그때 모습을 드러냈다. 우연히 이 앨범을 들은 조수미는 2009년 전국 투어에 파트너로 카이를 전격 캐스팅했다. “오프닝 한두 곡 정도 부르는 건 줄 알았는데 총 18곡 중 8~9곡을 불렀어요. 제 인생에 최고였죠.” 외롭지만 묵묵히 씨를 뿌린 결과 얻어낸 행운이었다.

■‘지킬...’은 고사했지만

카이가 이번엔 뮤지컬 배우로 변신한다. KBS 클래식 FM 진행자, 각종 클래식 음악회와 방송 출연, 여기에다 소속사 유니버설뮤직을 통해 해외 진출까지 준비 중인 가운데 그가 선택한 뮤지컬은 소극장용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다. ‘지킬 앤 하이드’ 등 대작들의 러브콜이 쇄도했지만 카이는 그간 출연을 고사했었다. 오디뮤지컬컴퍼니 신춘수 프로듀서의 연출로 지난해 국내에서 초연된 ‘스토리…’는 미국의 한 시골에서 유년시절을 함께 보낸 베스트셀러 작가 토머스와 친구 앨빈의 잔잔한 우정을 그린 2인극이다. 친구 앨빈의 송덕문을 쓰는 토머스의 기억을 따라 관객들은 아름다우면서도 아련한 이야기 속으로 끌려 간다. 초연 멤버 이석준 이창용에 고영빈과 카이가 새로 합류한다.

“이 작품을 위해 올 연말 계획한 일본, 중국 공연을 내년 상반기로 미뤘어요. 왠지 이번엔 놓치고 싶지 않아서요. 이걸 발판으로 나중에 더 큰 대작을 하고 싶다, 그런 생각도 없어요. 그냥 스토리가 좋아 선택한 작품입니다. 원래 그렇진 않았는데 큰 세상으로 나가면서 세속에 물드는 토머스의 모습을 통해 저를 다시 돌아보게 되고요. 눈물 나게 아름다운 이야기가 무엇보다 끌립니다. ”

카이는 “완벽하게 해내겠다는 생각은 안 한다. 욕심이 많지 않다”면서도 “처음이라 이 정도 해도 봐주겠지 하는 생각도 안 한다"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한다. “함께 출연하는 형들이 너무 좋아요. 뭐든 배울 것 투성이입니다. 연기가 부담스럽지만 그래도 해볼 만해요”라며 의욕을 다지고 있다.

■“카이의 디너쇼,기대하세요”

카이는 클래식, 오페라, 뮤지컬, 팝, 대중가요 등 장르를 가리지 않는 아티스트다. 애시당초 클래식에서 방향을 튼 것도 많은 이들과 공감하는 무대에 오르고 싶었기 때문이다. “클래식 독창회의 경우 대단한 유명인이 아니면 빈 좌석을 메우기가 힘든 게 현실이에요. 공부는 되는데 하품이 나오는 연주회도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성악은 즐기는 음악인데 소수를 위해 과시하는 음악이 돼 버린 게 아닌가 그런 고민을 하게 됐어요. 멋있는 소리를 만들기 위해 음악의 본질에서 멀어진 거 같았고요.”

크로스오버 가수로 진로를 바꾸게 될 결정적 계기는 ‘조영남 쇼’였다. 한창 진로를 고민하던 시절 혼자 하얏트호텔의 ‘조영남 쇼’를 지켜봤다.
“그 공간은 적잖은 충격이었습니다. 가곡도 부르고 이탈리아 칸초네도 부르고, 그때마다 따라하는 관객들은 모두 자유롭고 따뜻해보였어요. 제 무대에 오는 사람들도 이런 얼굴이었으면 좋겠다 그 생각밖에 안들더라고요.”

카이는 언젠가 자신만의 디너쇼를 만드는 것도 꿈이다.
“제 뒤론 빅 밴드가 있고요. 전 잘 빠진 턱시도를 걸치고 살짝 춤도 곁들이면서 노래를 부를 거예요. 정통 오페라 아리아도 부르고, 이탈리아 칸초네, 가곡, 가요, 팝 뭐든지요. 그밤 모두가 즐겁게 편안히 즐길 수 있길 꿈꿉니다.”

/jins@fnnews.com 최진숙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