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동행취재] 범죄 막는 지하철 보안관, 따라가보니..

남형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1.09.28 18:34

수정 2011.09.28 18:07

28일 오전 10시 30분 지하철 1호선 제기동역. 한 취객이 노약자석에 앉아 목소리를 높여 떠들고 있었다. 주변에 앉은 승객들의 시선이 그에게 모이더니 이내 불쾌한 듯 찌뿌려졌다. 정복을 입고 주위를 살피며 걷던 두 사람이 취객 앞에 멈춰섰다. 지하철 보안관이었다. 취객은 보안관을 몇 번 올려다보더니 곧 고성방가를 멈췄다.

▲ 1호선 지하철 내부를 순찰하는 김환수(좌), 안경희(우) 보안관. 지하철 보안관들은 2인 1조로 관리 구역을 나눠 활동한다.

지난 6월 지하철에서 80대 노인에게 폭언을 퍼붓던 이른바 ‘지하철 막말남’의 모습은 전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다. 이어 지난 7월에는 한 50대 남성이 만취한 채 잠든 옆자리 20대 여성을 애인인 척 성추행해 경악케 했다.

지하철 범죄의 심각성이 도를 넘어서자 서울시는 단속 및 예방을 위해 지하철 보안관을 투입, 지난 22일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활동 5일째인 28일, 지하철 보안관의 활동을 동행해 취재했다.

28일 오전 지하철 1호선 동대문역 역무실. 환한 웃음을 지으며 반갑게 맞는 김환수, 안경희 보안관을 만났다. 짧은 머리에 검은색 유니폼을 입고 악수를 건네는 김환수 보안관의 단단한 손에서 보안관의 인상이 물씬 느껴졌다. 잠시 쉬었을까. 홍일점 보안관 2명 중 1명인 안경희 보안관의 “형님, 다시 가볼까요?”라는 말과 함께 취재가 시작됐다.

역무실을 나서는 순간부터 역 안과 승강장을 살피는 보안관들의 고개가 쉴새 없이 움직였다. 김 보안관은 “지하철 안은 물론이고 역 안, 승강장을 돌아 다니며 범죄, 잡상인, 취객 단속 등 승객들이 불편을 겪지 않도록 돕는 모든 일이 지하철 보안관의 역할”이라고 소개했다.

▲ 지하철 승객을 살피는 보안관(좌)과 승강장을 순찰하는 보안관(우).

지하철에 탑승하자 보안관들은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으로 이동하며 승객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김 보안관은 “그냥 지나치는 것처럼 보여도 손의 위치가 수상하진 않은지, 불편을 겪는 승객은 없는지 꼼꼼히 살피면서 걷는다”고 설명했다. 객차 중간을 지날 무렵, 보안관의 시선이 고개를 숙인 채 웅크리고 앉아 있는 한 남성에게 머물렀다. 보안관은 불편한 곳이 없는지 몇 번이고 말을 걸고 살펴본 후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열차를 4~5번 왕복하며 살핀 보안관들이 청량리역에 내렸다. 두 보안관은 지하철 1호선 동대문역부터 청량리역까지 5개역을 담당한다고 설명했다. 김 보안관은 “너무 많은 역을 맡으면 순찰하기 어렵기 때문에 2인 1조로 구역을 나눴다”고 말했다.

▲ 지하철 잡상인을 단속하는 김환수 보안관.

반대 방향으로 가는 지하철을 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잡상인이 눈에 띄었다. 김 보안관의 발걸음은 빨라지고, 안 보안관은 주머니에서 디지털 카메라를 꺼내 잡상인이 파는 모습을 찍었다. 단속 증거물을 남기기 위해서였다. 김 보안관이 주의를 주자 잡상인은 몇 번 항의하더니 다음역에서 내렸다. 김 보안관은 “저 정도로 내리면 비교적 양호한 편”이라며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하는 사람도 더러 있다”고 경험담을 들려줬다.

힘든 점이 더 있을 것 같아 질문을 던지자 김 보안관은 “말이 통하지 않는 취객의 경우 주의를 주는 것으로 단속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게다가 힘도 세다”고 혀를 내둘렀다. 지하철 보안관에게는 각종 범죄행위 발생시 법적으로 단속할 수 있는 사법권이 아직 없는 상황. 서울 메트로 관계자는 “보안관들의 효과적인 활동을 위해 관련 법령 개정을 법무부에 건의해 놓은 상태”라고 밝혔다.

사람이 혼잡한 출ㆍ퇴근 시간의 근무는 어떻게 할지 궁금했다. 김 보안관은 “출ㆍ퇴근 시간에는 이동이 쉽지 않지만 최대한 공간을 확보해 성범죄가 일어나지 않는지 살펴본다”면서 “보안관 제도가 도입된 지 얼마되지 않아 아직 적발된 건은 없다”고 말했다. 이어 논란이 됐던 ‘지하철 막말남’ 이야기를 꺼내자 그는 “그 자리에 있었으면 당장..”하고 눈에 힘을 주며 웃어 보였다.

신설동역에 내려 계단 앞에서 무거운 짐을 들고 쩔쩔매던 한 할머니를 도와준 후 역무실에 앉은 두 보안관은 일지를 꼼꼼하게 기록하기 시작했다.
기자의 동행 취재도 한 줄 들어갔다. 한숨 돌린 김 보안관은 “쉴 틈 없이 바쁘지만 승객들의 응원을 들으면 힘이 난다”고 말했다.


김 보안관은 이어 “한 여성 승객이 ‘예전에 성추행 당했을 때 주위 승객에게 도움을 요청해도 다들 모른척 해 두려웠는데 보안관이 있어서 든든하다’고 말했을 때 뿌듯했다”면서 “앞으로 더 열심히 활동해 시민들이 지하철을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포부를 드러냈다.

/humaned@fnnews.com 남형도기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