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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와 차한잔] 뮤지컬 '햄릿' 주연 박은태 "연기,이제야 눈뜨고 있어요"

최진숙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1.10.12 16:55

수정 2011.10.12 16:55


“관객들이 ‘아, 티켓 값이 아깝다.’ 이런 생각 안 들게 하는 게 제 목표입니다. 그런데 그게 어려워요.”

배우 박은태(30)는 머뭇거리지 않는다. 곱상한 이미지의 무대 위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꿈꾸는 낭만주의자라기보다 계산 잘하는 현실주의자다. 물론 개런티 협상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2006년 스물다섯 늦깎이 데뷔. 그가 할 수 있었던 최선은 뭐였겠나.

“닥치는 대로 했어요. 역할에 필요하다 싶은 건 밤을 새워서라도 연구하고 익히고 했습니다. 제 색깔요? 그런 게 어딨어요. 1년차 연기자가 ‘제 생각에는요…’ 이런 식의 질문은 무의미하다 싶었어요. 제작진의 의도, 연출가의 생각, 솔직히 전 그게 더 중요했습니다. 연습 때마다 물었죠. ‘이럴 때 표현을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이런 상황엔 어떻게 움직이나요.’ 결국 그래서 더 많이 배웠습니다.”

아이돌 출신의 꽃미남들이 속속 상륙 중인 뮤지컬계에 묵묵히 주인공 자리를 꿰차고 있는 배우 박은태의 생존 비법은 이런 것이었다.

“부모님이 시장에서 대파 팔아 200원 남겨 번 돈으로 자식 셋 대학 보내셨습니다. 노래, 하고 싶어도 그걸로 먹고 살 생각은 못했어요.”

한양대 경영학과 2학년. 강변가요제에 나가 동상을 받았을 때도 ‘이쪽은 별나라 사람들의 동네’로만 생각했다. 그래도 노래가 좋은 걸 어찌하겠나. 샐러리맨이냐, 가수냐. 졸업 직전까지 끌어안고 있었던 이 햄릿형 질문에 그는 운명처럼 ‘가수’를 골랐다.

예상대로 시작은 험난했다. “끼가 없더라고요. 멍석을 깔아주면 튀질 못하는 거예요.” 그때까지 생애 단 한편의 뮤지컬도 본 적이 없었다는 그가 뮤지컬 무대로 빠지게 된 건 이런 이유도 크다. “뮤지컬에도 끼가 필요합니다.그래도 잘 짜여진 극 속에 연습과 노력으로 끼를 보충할 수 있는 게 다르더라고요.”

2006년 뮤지컬 ‘라이온 킹’으로 데뷔했지만 초반엔 눈에 확 들어오지 않았다. 행운은 벼락처럼 찾아왔다. 지난해 2월 조성모의 대타로 투입된 ‘모차르트!’에서 매끈한 창법으로 객석을 놀라게 했다. ‘은차르트’로 불리며 단번에 주인공 대열에 올라섰고 창작뮤지컬 ‘피맛골 연가’, 이자나 연출의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까지 잇달아 주역을 꿰찼다. 올 들어선 ‘모차르트!’ ‘피맛골 연가’ 재공연으로 다시 무대에 섰다.

박은태가 이번에 새롭게 도전하는 작품은 뮤지컬 ‘햄릿(20일~12월 17일 유니버설아트센터)’이다. 1999년 초연돼 꾸준히 인기몰이 중인 체코의 흥행 뮤지컬. 국내에선 2007년 초연 후 2008, 2009년에 이어 올해가 시즌 네번째다. 뮤지컬 ‘몬테크리스토 백작’을 연출했던 로버트 요한슨이 이번 작품 연출로 합류했다. 록, 재즈, 라틴음악 등 다양한 선율을 섞어 록 오페라 뮤지컬을 표방하고 있다. 김수용, 서범석, 윤영석, 김성기, 김장섭, 강태을 등 연기파 배우들이 두루 포진해있다.

7일 경기도 고양아람누리 새라새극장 연습실. 회전무대를 중앙에 두고 리허설이 한창이었다. “사랑해요, 사랑해. 내 마음 깊은 곳까지….” “약속해줘요, 떠나지 않을 거라고.” 햄릿 박은태와 오필리어 윤공주의 달콤한 연기가 무르익고 있었다. 무대가 한 바퀴 돌자 침실이다. 유령의 음성에 놀라 깨어난 햄릿이 침실 밖으로 뛰쳐나가자 무대는 다시 돈다. 성벽으로 이어진 계단을 타고 오르며 햄릿은 절규한다.

박은태는 햄릿 역을 위해 4㎏이나 체중을 뺐다. “고뇌하는 햄릿이 통통한 얼굴일 순 없잖아요. 대본을 잡은 후로는 매사가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배역을 받으면 그 역에서 쉽게 빠져나오질 못해요. 작품이 끝나고 나서도 시간이 걸려요. 그래서 한꺼번에 여러 작품을 못합니다. 아직 초보 배우라 그럴거예요.”

뮤지컬 ‘햄릿’은 셰익스피어의 원작을 각색한 ‘거트루트의 사랑’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다. 어머니 거트루트와 삼촌 클라우디우스의 사랑에 햄릿은 갈팡질팡한다. “아직 이 역의 답을 못 찾았습니다. 하나도 쉬운 장면이 없어요. 마지막 죽는 것도 속시원하질 않아요. 모차르트는 할 만큼 다하고 슬픔에 복받쳐 죽음을 맞습니다. 그건 오히려 쉬웠어요. 햄릿은 죽을 때 그제서야 편안해집니다. ‘사는 게 뭐지.’ 이런 생각 하면서요. 이 편안한 죽음의 표현이 지금 제게 숙제입니다.”

‘레슨 종결자’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그는 과외수업을 많이 받는 배우로 유명하다. 데뷔 후 노래 레슨은 쉰 적이 없다.
“안 배우면 잠을 못잔다”는데 어쩔텐가. 최근엔 춤과 연기 수업에도 악착같다. 그는 이제야 연기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며 ‘연기 잘하는 배우’가 최종 목적지라고 말한다.
“지금은 시키는 대로 하는 중이에요. 워낙 연기 밑천이 없으니까요. 그런데 슬슬 이 세계가 보여요. 그러니 무조건 달려볼 생각입니다.하하.”

/jins@fnnews.com 최진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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