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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성원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CSUCI) 석좌교수는 "미국과 유럽도 자칫 잘못하면 일본의 전철을 밟아 '잃어버린 10년'에 돌입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
지난달 말 미국 LA 시내 포에버21 본사 건물에서 만난 손성원 캘리포니아 주립대(CSUCI) 석좌교수는 간간이 영어를 섞은 유창한 한국말로 글로벌 경제를 진단했다.
― 뉴욕 월가에서 촉발된 시위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는데.
▲중산층 몰락과 고용불안이 가장 큰 원인인 것 같다. 미국의 노동시장 참여율이 종전 65%에서 56%로 하락했다. 게다가 노년층들이 은퇴하지 않고 노동시장에 참여하면서 젊은층의 일자리가 많이 사라졌다. 여기에다 월가 금융인들의 놀랄 만한 연봉이 불을 지른 것이다. 금융가 출신인 내가 생각하기에도 월가의 탐욕은 우려스럽다. 글로벌 경제가 침체에 빠지면서 고용문제가 악화될 기미가 보이니 이런 사태가 터진 것이다.
일부에서 계급투쟁으로 보는 시각이 있지만 그건 아닌 것 같다. 시위가 조직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 정치가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어 이 문제가 쉽사리 해결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월가 시위 사태가 해결되면 이는 장기적으로 자본주의 체제에 면역약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각국의 재정정책에 힘입어 경기가 살아나는듯 하다 다시 위기가 왔는데.
▲일단 미국 경제가 이중침체(더블딥)로 갈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이미 바닥에서 기고 있으니 더 내려갈 가능성은 없다는 의미다. 하지만 빠른 회복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건설·주택분야가 미국 전체 고용창출의 13%를 차지하는데 이른 시일 내 호전되기는 힘들어 보인다. 연방정부 차원에서도 고용창출이 이뤄지지 않는다. 워싱턴(연방정부)의 재정감축 바람이 워낙 거세 캘리포니아 주립대 교수인 내 월급도 줄었다. 정부발 경기 부양이 어려워져 사태가 악화되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재정을 동원해서라도 경기를 자극하고 장기적으로 (적자를)감축해야 하는데 정치인들이 실책한 것 같다. 지난 2008년 사태와 달리 각국 정부가 쓸 카드가 없다는 점이 문제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조차도 쓸 카드가 거의 없다.
― 이런 상황이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에 먹구름이 낀 것은 맞지만 공화당도 별로 카드가 없다. 지난 7∼8월 재정적자 위기협상 때 미국민들은 공화당 의원들이 개인의 정치적 입지에만 관심 있고 국가에는 큰 관심없다는 인식을 받았다. 오바마가 잘못하고 있지만 공화당도 반사이익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리더십 부재에 대한 시민들이 불만이 오죽했으면 월가 시위로 이어졌겠는가. 오바마가 재선한다면 국정을 잘 운영해서라기보다 다른 대안이 없어서일 것이다.
― 일본과 미국이 유사점이 많다는 지적이 있다. 미국에서도 '잃어버린 10년'이 시작된 것 아닌가.
▲미국과 일본 경제의 경우 장기채권 금리가 하락하고 부동산이 침체에 빠진 점이 비슷하다. 일본은 정부 정책의 실패가 잃어버린 10년을 자초했다는 측면이 강하다. 경기가 하강할 경우 정부가 경기부양에 나서야 하는데 1990년 당시 일본 정부는 되레 세금과 이자를 올렸다. 다행히 지금까지 미국은 일본과 같은 실책을 저지르지 않았다. 버냉키 의장은 유동성을 풀어 경기침체에서 벗어나려 했다. 문제는 앞으로의 정책인데 미국 정부가 재정적자를 줄인다고 세금을 올리면 큰 문제가 될수 있다. 미국이 일본의 전철을 밟을지 여부는 세금정책이 좌우할 것이다.
― 미국 경제가 어떻게 유럽 위기와 연결돼있나.
▲미국 경제는 내부적으로는 부동산침체와 재정적자 등의 문제를 안고 있고 밖으로는 유럽·일본의 위기와 맞닿아 있다. 특히 유럽발 위기는 두가지 채널에서 미국 경제에 문제를 야기한다. 먼저 무역부문. 미국의 최대 무역파트너인 유럽의 위기는 무역에 심각한 혼란을 야기한다. 한때 유럽에서 인기를 구가하던 미국산 나파밸리 와인이 최근 수출부진에 빠진 것이 대표적 사례다. 금융도 문제다. 증권시장의 변동성이 커져 미국 금융시장을 불안케 한다. 유럽사태가 두 가지 채널을 통해 미국경제를 압박하는 상황이다. 유럽이 재빨리 사태를 수습하지 못하는 것은 유감이다. 유럽이 일본의 잘못된 길을 걷고 있지 않나 생각된다. 일본은 망할 회사를 망하게 하지 않고 계속 자금지원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은행을 통해 계속 돈줄을 제공, '좀비기업'을 살려두고 있다.
그리스 사태도 마찬가지다. 환부가 전염되지 못하도록 초기에 빨리 문제를 해결했어야 했다. 초기 대응에 실패해 계속 전염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스 사태는 먼저 구조조정을 하고, 이후 가령 70%가량의 채무는 상각하고 나머지 금액에 대해서 정상 상환되도록 해야 한다. 재정긴축만 강요하니까 상환이 더 어렵게 되는 구조다.
― 결국 독일과 프랑스 등이 상당한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는 결론인데.
▲그리스 채무 중 독일과 프랑스 은행이 가진 채권에 대해선 해당 국가의 정부가 나서 부실자산구제프로그램(TARP)을 적용해야 한다. 유럽은행에 대해 유럽 정부의 공적자금 투입이 들어가야 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각국이 정치적 이해관계 등으로 인해 그런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주저하고 있다. 시간을 끄는 사이 사태가 유럽은행에 이어 유럽정부, 유럽 중앙은행으로 점점 확산되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 국가의 신용등급이 강등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미국의 신용등급이 AA인데 왜 프랑스가 AAA인가. 과감하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사이 그리스 디폴트 문제가 유럽의 문제로 확산됐고 이게 세계적 문제로 비화되면 한국과 중국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
― 이럴 때 한국 정부와 한국 경제는 어떻게 해야 한다.
▲한국 경제의 대외의존도는 미국의 4배로 GDP의 100%를 넘는다. 세계경제가 좋을 때 혜택을 봤지만 글로벌 경제가 나쁠 때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마치 출렁이는 바다 위의 외로운 배 한 척과 같다. 먼저 배의 사이즈를 키워야 한다. 내수를 늘리는 게 중요하다는 의미다. 특히 한국 정부의 재정상태는 상대적으로 건전하니까 정부지출을 늘려 내수를 키울 필요가 있다,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정책도 중요하다. 한국에서 중소기업은 은행대출을 받기 힘들다고 들었다. 미국의 경우 연방정부나 주정부가 중소기업의 론에 대해 90%까지 보증해준다. 종전의 75%에서 크게 늘린 것이다. 보증심사도 완화했다. 고용의 75%가 중기로부터 나오니 중소기업은 경제의 젖줄이다. 한국도 중기에 대한 론 개런티를 확대해야 한다.
해외자본이 자꾸 들락거린다고 자본 유출입에 대해 정부가 규제하려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지금까지 유입이 많았으니 단기간내 유출도 당연하다고 생각해야 한다. 위기라고 문 닫으면 안된다. 다만 과도한 변동성에 대한 정책은 마련해야 한다. 규율 중심이 아니라 시장의 힘에 의해 자연스럽게 해결하는 방안이 중요하다. 단기적으로는 규제를 통해 시장안정을 가져올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해외자본 유입을 막을 수 있다. 자연스럽게 정책을 수립하고 너무 통제하려 하면 안된다.
― 한국의 외환보유액이 3000억달러인데 이 정도면 충분한가.
▲수치로 보면 충분해 보이지만 세계적 금융위기가 닥치면 3000억달러로는 부족하다. 이 금액은 하루 만에 다 유출될 수 있다. 외환보유액은 은행이나 기업이 가지고 있지 않고 이들이 달러를 조달할 때 정부가 빌려주는 방식인데, 금방 소진될 수 있다. 과도한 규제나 불확실성을 띤 정책으로 외국인투자가를 겁먹게 하지 말아야 하고 정부는 각국과의 통화스와프 체결에 적극 나서야 한다.
― 최근 들어 중국 경제를 불안하게 보는 시각이 늘고 있는데.
▲지난 8월에 중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 베이징이나 상하이에 빈 주택이 크게 늘어 부동산 버블을 직감했다.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달렸다. 은행에서 대출을 억제하니 대출수요가 대부업 등 제2금융으로 몰리고 있다. 대출조건은 불리해지고 이자가 높아 향후 문제가 될 소지가 다분해 보인다. 중국 부동산시장 붕괴 때 미치는 영향은 한국이나 미국경제에 미치는 임팩트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최악의 경우 소요사태가 예상될 정도다. 중국 정부의 대책이 중요한데, 정부가 주택을 되사거나 대출을 완화하는 등의 방법으로 해결이 가능하다고 본다. 다만 중국정책 당국자들이 위기에 대한 경험이 적은 게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중국 경제의 연착륙 여부에 전 세계의 관심이 쏠린 건 분명하다. 세계경제의 기관차는 결국 중국이다. 중국의 성장률이 현재보다 2∼3%포인트 하락해 연간 6%대로 떨어지면 세계경제 전체에 큰 파장이 올 것이다.
― 내년 세계 경제는 어느 정도 성장할 것인가.
▲선진국은 2%, 이머징국가는 6%가량 성장해 연평균 4%가량 성장할 것으로 본다.
― 기축통화로서 달러화의 위상은.
▲올해 들어 미국정부가 달러화 공급을 늘리는데 달러화가치는 더 높아졌다. 이것이 주는 의미는 향후 40∼50년 후는 몰라도 한동안 달러화가 가지는 기축통화의 지위는 변화가 없다는 점이다. 누가 위환화로 결제를 하겠나.
어려울수록 달러화가 안전자산으로 각광을 받고 달러 수요가 몰린다. 어려워도 결국 미국 경제와 미국 통화가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지난번 방중 때 중국관리가 국채 등 미국자산에 투자를 많이 했다며 미국발 부도사태를 걱정하길래 전혀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미국은 어려우면 달러를 더 찍어낸다고 했다. 사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의 미국 신용등급 강등은 잘못된 조치다. 신용등급은 가치평가가 아니라 디폴트 가능성을 예측하는 것인데, 미국은 부도가능성이 제로이기 때문이다.
/jklee@fnnews.com
■ 손성원 교수는?
손성원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석좌교수는 은행가 집안 출생으로 광주일고를 졸업한 뒤 도미, 하버드 경영대학원(MBA)을 마친 뒤 피츠버그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3년 미국 리처드닉슨 행정부에서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CEA) 수석 이코노미스트로 활동했으며 1974년 미니애폴리스 노스웨스트은행 부행장에 취임했다.
1998년부터 웰스파고은행에 수석부행장 및 최고경영자(CEO)로 합류해 경제전망, 전략기획, 채권포트폴리오, 인수합병(M&A) 등을 관장했다.2005년 미국 LA한미은행장에 오른 뒤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석좌교수로 재임 중이다.
월스트리트저널 등 미 언론은 손 교수를 경제지표 전망을 가장 잘하는 전문가로 꼽고 있다. △67세 △광주 △광주제일고, 하버드 경영대학원(MBA), 피츠버그대 경제학 박사 △미국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 수석경제관 △미 웰스파고은행 수석부행장 △LA한미은행장 △美 캘리포니아주립대 석좌교수(현)※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