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주먹으로 알려진 세계적 복싱영웅 로베르토 듀란, 1989년 마약범죄 혐의로 미국에 붙잡혀 간 독재자 노리에가의 나라, 파나마는 우리나라에서 비행기로 갈 경우 미국을 경유해 꼬박 하루 이상이 걸리는 아메리카 대륙 중앙에 위치한 인구 340만명의 작은 나라다.
그렇지만 파나마국제공항에서 파나마시티로 들어가다 보면 우뚝 솟은 높은 건물 숲이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다. 마치 미국의 어느 도시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1999년 12월 31일 파나마가 미국으로부터 파나마운하를 넘겨받을 때만 해도 일부에서는 파나마운하가 죽음의 호수가 될 수도 있다며 파나마의 미래를 매우 비관적으로 보았다. 그러나 12년이 지난 2011년 6월 유엔 산하 중남미경제위원회(ECLAC)는 파나마의 경제성장률이 8.9%로 중남미에서 가장 높다고 발표했다.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파나마의 경제발전요인은 과연 무엇인가. 간단히 말하면 파나마운하라는 보물을 활용해 아메리카 최대 허브 위치를 공고히 하고 여기서 나오는 이점을 최대한 살리고 있다는 것이다.
파나마는 대서양과 태평양 간 폭이 불과 80㎞로 역사적으로 운하 건설 이전부터 양 대양을 연결짓는 주요 루트로 발전해 왔다. 1492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발견한 이후 1513년 발보아라는 스페인 탐험가가 파나마를 통해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1532년 잉카제국 정복 이후 파나마는 스페인과 페루 잉카지역 간의 통로가 되었다. 즉 잉카제국에서 거둬들인 보물을 스페인으로 수송하고 노역에 사용할 노예와 식료품을 페루로 운송하는 교통 요충지가 된 것이다. 이때부터 파나마는 줄곧 미주 지역의 최대 무역도시로 전 세계 무역인이 북적거리는 중심지가 되었던 것이다.
19세기 중반 영국과 미국은 중미지역을 거점으로 한 교통 요충지를 확보하기 위해 치열한 각축전을 벌였다. 결국 미국은 서부개척시대에 들어서면서 동부 산업지역과 서부 개척지역을 연결하는 주요 교통수단으로 1855년 파나마에 대서양과 태평양을 연결하는 철로를 건설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1903년 파나마가 콜롬비아로부터 독립한 이후 미국은 파나마정부와 합의하에 파나마 운하를 건설, 1914년 완공하게 된다. 당시 남미대륙을 빙 돌아가는 데 1개월 이상 걸리던 선박들이 불과 8시간 만에 파나마운하를 통해 지날 수 있게 된 것이다. 파나마운하 개통 이후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전 세계가 엄청난 교역 확대를 통해 막대한 혜택을 보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이 역사적으로 교통 요충지였던 파나마는 현재 세계 다국적 기업들의 금융, 수송, 항공, 통신, 물류창고업의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세계화와 함께 수출지향적인 아시아와 소비지향적인 북미, 중남미 경제가 공생관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파나마는 그 한가운데 위치해 있다. 파나마를 통해 원자재가 아시아로 이동되고 완제품은 다시 파나마를 통해 북미, 중남미 소비자에게 이동하고 있는데 파나마는 양 지역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면서 지속적인 경제발전의 기틀을 공고히 하고 있다.
아시아의 제조품에 대한 세계적 수요 증가와 함께 컨테이너 운송을 위한 항만시설 수요도 증가하며 파나마는 미국, 중남미, 아시아 기업들이 운영하는 많은 컨테이너 항구의 중간 기착지 역할을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미주 28개국 59개 도시에 직항노선을 둔 파나마의 COPA 항공사는 미주 대륙의 중앙에 위치한 파나마의 지리적 이점을 살려 계속 확장해 나가고 있으며 중남미 제일의 항공사로서 위치를 넘보고 있다.
최근 수년간 세계 유명 신용평가기관들이 일제히 파나마의 신용등급을 투자 적격으로 상향 조정하고 유엔 산하 중남미경제위원회 등 국제기구들은 파나마 경제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전망을 발표하고 있다. 이에 힘입어 파나마시티는 우후죽순처럼 솟아오르는 고층건물 신축공사 및 중미 카리브지역 최초의 지하철 공사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또한 파나마운하 확장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며 콜론자유무역지대를 경유한 중계무역 및 금융업을 더욱 활성화하는 등 외국인투자가 유치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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