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1년 구찌오 구찌가 이탈리아 피렌체에 가죽피혁 전문매장을 오픈하면서 구찌의 역사는 시작됐다.
17세의 나이에 이탈리아에서 영국 런던으로 떠난 구찌오 구찌는 사보이 호텔에서 벨보이로 취직했다. 그는 이때 귀족들의 가방을 나르며 가죽 제품에 관심을 가졌다. 이탈리아로 돌아와 가죽 수공예 업체에서 가죽 다루는 법을 배워 직접 제작한 가방이 이탈리아 귀족들에게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
구찌오 구찌는 1938년 피렌체에 이어 로마로 매장을 확장·오픈해 핸드백, 장갑, 신발 등 다양한 제품을 선보였다.
특히 상류층 스포츠인 승마를 보던 중 말 안장의 발판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시킨 '홀스빗' 장식은 구찌 브랜드의 상징적인 마크가 됐다. 또 2차대전 당시 부족한 물자를 대체하기 위해 대나무로 가방 손잡이를 만들며 구찌의 스테디셀러 '뱀부백'을 탄생시켰다. 뱀부백은 그레이스 켈리, 엘리자베스 테일러 등 유명인들이 애용하면서 유명세를 탔다.
구찌오 구찌가 사망한 1953년 둘째아들 알도가 미국 뉴욕에 구찌 매장을 열었다. 미국에 진출한 최초의 이탈리아 브랜드가 된 것.
1960년대에는 베버리힐스, 런던, 파리 등 대도시에 이어 홍콩, 일본 등 아시아까지 시장을 넓히며 세계적인 브랜드로 자리잡았다. 또 미국의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부인 재키 케네디가 즐겨 들어 이름 붙여진 '재키백'이 세계적인 인기를 얻으며 승승장구했다.
이렇게 잘 나가던 구찌는 가족 불화로 인해 추락의 길에 접어들었다. 1980년대 알도는 철창신세를 졌고 재정난이 심해졌다. 경영을 맡게 된 로돌포의 아들 마우리찌오는 투자회사 인베스트코에 가족들의 지분 50%를 팔아 넘긴데 이어 1993년에는 자신이 보유한 모든 지분을 매각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던 중 마우리찌오는 전 부인의 청부살인으로 사망했다.
끝없는 추락의 길을 걷던 구찌는 1994년 톰 포드가 수석디자이너로, 미국 지사장을 지냈던 도메니코 드 솔레가 구찌의 회장이자 최고경영자(CEO)로 임명되며 회생의 길을 찾았다.
이후 완전한 주식회사가 된 구찌는 뛰어난 사업가와 천재적인 디자이너의 협력으로 다시 명성을 되찾아 1998년에는 유럽언론협회가 선정한 '올해의 유럽기업'으로 꼽혔다.
1999년에는 PPR그룹과 전략적 제휴를 맺어 브랜드가 아닌 대기업 구찌그룹으로 성장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2004년에는 마크 리가 CEO, 2006년에는 프리다 지아니니가 브랜드 총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리를 차지했다. 프리다 지아니니는 톰 포드의 빈 자리를 확실히 채우며 2006∼2008년 3년간 46%의 매출신장을 이뤄냈다. 구찌는 또 2006년에는 비즈니스 위크지에서 세계 톱 브랜드 46위를 차지했고 2007년에는 닐슨 리서치 조사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세계의 럭셔리 브랜드로 꼽혔다.
2009년부터는 파트리지오 디 마르코가 CEO직을 맡고 있다.
현재 구찌는 도쿄, 뉴욕, 런던 등 전 세계 주요 도시에 365개의 매장을 운영하며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로 명성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longss@fnnews.com성초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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