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과 저항은 동전의 양면이다. 개혁이 클수록 저항도 크다. 한나라당이 저 난리를 치는 걸 보니 이번엔 낡은 보수(保守)를 제대로 보수(補修)할 모양이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등장하기 전 로마 공화정 때의 일이다. 기원전 2세기 중엽 강국 카르타고를 무찌른 로마는 거칠 것이 없었다.
외적이 사라진 로마는 안으로 곪기 시작했다. 갑자기 세상의 주인이 된 데서 오는 고속성장통이었다. 공화정의 주축인 원로원은 기득권층이 됐고 승전의 과실을 독차지했다. 전쟁터에서 목숨 걸고 싸운 평민이 구시렁거린 것은 당연했다.
"부자들은 더욱더 부자가 되어 갔고 가난한 사람들은 더욱더 가난해졌다. 이 빈부의 양극화는 결국 로마의 정치를 뒤흔들게 된다."(시오노 나나미 '또 하나의 로마인 이야기')
그라쿠스 형제는 양극화에 손을 대려고 했다. 서른살에 호민관에 선출된 형 티베리우스는 실업자 구제를 위한 토지 재분배에 착수한다. 그러나 농지개혁은 땅부자 원로원 의원들의 반발을 불렀다. 두 세력은 로마 중심부에서 충돌했고 결국 티베리우스와 지지자 300명이 참살당한다. 형과 마찬가지로 서른에 호민관이 된 동생 가이우스는 더 급진적인 정책을 편다. 공공사업으로 일자리를 만들고 실업자에게 싼 값에 밀을 배급한 것 등이 좋은 예다.
이를 그냥 두고 볼 원로원이 아니다. 갖은 방법으로 가이우스를 호민관에서 낙선시킨 원로원은 일종의 비상사태인 '원로원 최종 권고'를 발동한다. 여기에 걸리면 재판 없이 즉각 처형이다. 가이우스는 도망치지만 결국 테베레 강가 숲속에서 자살로 짧은 생을 마감한다. 이에 만족하지 못한 원로원은 가이우스 편으로 간주된 이들을 모두 죽이는데 그 수가 3000명에 이르렀다고 전해진다. 기득권 세력의 저항은 이렇게 무섭다.
그라쿠스 형제의 죽음으로 개혁은 물거품이 됐다. 그러나 원로원이 아무리 뻗대도 시대의 흐름을 무한정 거역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로부터 70여년 뒤 루비콘 강을 건넌 카이사르는 공화정을 무너뜨리고 제정의 기틀을 놓는다. 카이사르가 편 정책은 시차만 있을 뿐 그라쿠스 형제의 정책과 닮은꼴이었다.
카이사르와 그라쿠스 형제의 차이는 뭘까. 카이사르 역시 '원로원 최종권고'를 받아 목숨이 위태로웠다. 그러나 그는 도주하는 대신 루비콘 강을 건너 원로원을 누르고 로마제국의 전성기를 열었다. 그 차이는 힘에 있다. 카이사르에겐 그를 따르는 군대가 있었다. 그는 그 힘을 바탕으로 낡은 공화정을 폐지하고 스스로 종신 독재관에 취임한다. 훗날 마키아벨리는 "무기를 갖지 않은 예언자는 실패를 피할 수 없다"고 말했는데 그라쿠스 형제가 그런 예언자였다. 현대식으로 공화정은 선, 독재관·황제는 악이라고 보면 오산이다. 당시엔 450년가량 이어져온 공화정이 앙시앵 레짐 즉 구질서였고 제정이 신질서였다.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재임 1997~2007)는 '새로운 노동당(New Labour)'을 내걸고 보수당 장기집권을 무너뜨렸다. 블레어는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가 쓴 '제3의 길(The Third Way)'을 중도좌파 정책의 지침으로 삼았다. 진성 노동당원이 볼 때 제3의 길은 우파와 타협한 비겁한 노선이었으나 블레어는 이를 관철시켰고 대중의 지지를 얻었다.
중도좌파 정책은 남미 브라질에서도 꽃을 피웠다. 노조위원장 출신인 룰라 전 대통령(재임 2003~2010)은 서민을 위한 좌파 정책과 기업을 살리고 국력을 키우는 우파 정책을 능수능란하게 주물렀다.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중도우파 정책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중도좌파 정책을 편 블레어·룰라의 대척점에 있다. 박근혜식 제3의 길인 셈이다. 박 위원장은 케케묵은 보수 기득권층의 저항을 누를 힘이 있을까. 그의 운명은 그라쿠스일까 카이사르일까. 돈봉투 파문 속에 '박의 실험'이 어떤 결말을 낳을지 자못 궁금하다. paulk@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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