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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보재정 위기극복,파이를 키워라] (하) 공공의료에 답이 있다

허현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2.01.17 17:30

수정 2012.01.17 17:30

[건보재정 위기극복,파이를 키워라] (하) 공공의료에 답이 있다

【 프랑크푸르트(독일)=허현아 기자】독일 연방정부는 지난 2010년 건강보험 총 재정지출의 1%에 불과하던 국고보조금의 비율을 9%까지 끌어올렸다. 보험료의 지속적인 상승이 건강보험 가입자와 기업에 과도한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법정 보험료율을 고정하는 대신 국고보조금을 인상해 사회보장의 공공성을 강화했다. 연방정부는 앞으로 건강기금에서 지원하는 법정 국고보조금을 더 인상해 수입 안정을 꾀할 계획이다.

 ■국가 재정책임 강화

 인구 고령화와 경제성장의 둔화는 독일의 건강보험 체제에 위협을 가하고 있다. 유로존 금융위기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은 독일의 건보재정은 현재 흑자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안정성을 낙관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프랑크푸르트 금융경영대학교(FSFM) 압신 간조 교수는 16일(현지시간) "1994~2010년 공보험 지출이 빠르게 증가한데다 신약을 비롯한 신의료기술의 등장이 장기적인 재정전망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며 "이런 배경에서 적극적인 재정개혁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2004년, 2007년, 2010년 단행된 대대적인 재정개혁은 보험료의 지나친 상승 압력이 가입자와 기업의 부담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대신 국가의 재정책임을 강화한 내용을 담고 있다.

 독일 연방보건부가 건강보험 재정의 국고보조금 현황을 집계한 결과 2005년 1.7% 수준이던 연방정부의 국고보조금은 2010년 8.4%로 늘었다. 전체 건강보험 재원에서 국고보조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4%로 아직 미미한 수준이지만 국고지원은 앞으로 더욱 증가할 전망이다.

 독일의 국고지원제도는 2004년 모성수당 등 일부 항목의 보험 혜택을 확대하기 위해 도입됐다. 2004년 건강현대화법이 도입되면서 10억유로(약 1조6000억원)로 출발한 국고지원을 2006년 42억유로(약 6조7200억원)로 확대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다. 2007년에는 건강보험 경쟁력 강화법에 따라 연방정부의 장기적인 재정의무를 법제화했다. 2011~2015년은 총 720억유로(약 115조2000억원)의 재정지원을 계획하고 있다.

 국고지원 확대로 인한 연방정부의 재정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장치도 마련했다.

 경기불황을 이유로 0.6%포인트 인하했던 보험료율을 15.5%로 원상회복하고 공보험자 역할을 담당한 각 질병금고가 추가로 징수할 수 있는 보험료율 상한선을 인상한 것이다.

 ■연대책임 기반한 공공성 관건

 건강보험료의 상승이 임금상승 등을 비롯한 기업의 부담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보험료 비중을 점차 줄이고 다른 재원의 역할을 강화하는 것이 최근 유럽 국가들의 일관된 정책이다.

 하지만 이런 개혁은 건강보험에 대한 사회적 연대책임 의식으로 공공의료의 안정적 토대를 마련한 다음에야 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독일 의료시스템은 공공병원이 32.4%, 국가가 의료의 질을 철저히 관리하는 민간비영리병원이 37.9%를 점유하고 있다. 이런 공적 의료보장 시스템에는 전체 건강보험 재정의 94%를 부담하고 있는 가입자들의 책임의식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압신 간조 교수는 "독일 국민도 보험료 인상에 민감하지만 고소득층이 저소득층을 보조하는 사회적 연대책임을 우선시한다"며 "건강보험의 공공성을 유지·발전시키려는 정부의 정책을 믿고 지지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FSFM 지벨 교수는 "민간시스템은 일을 효율적으로 하지만 질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에 공공성을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라며 "공적 시스템을 확고히 하려면 '적정 부담, 적정 급여'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끌어내는 게 관건"이라고 말했다.

 ■안정 위한 개혁 국민도 만족

 독일 국민은 사회안전망을 확보하기 위한 정부의 이런 방침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암 투병 중인 아내를 간호하고 있는 한 50대 트럭운전사는 "세금을 많이 내고 있지만 아픈 가족이 있을 때 그만큼 혜택을 되돌려주니 만족한다"며 "아내의 약값과 치료비뿐 아니라 간호하는 가족들을 위한 정신과 상담이나 가사도우미까지 배려해준다"고 말했다.

 공항에서 화물운반 담당자로 일하다 연골파열로 치료를 받고 있는 플루가펜(42)도 "질 높은 건강보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면 조금 비싼 비용도 부담할 수 있다"며 "건강관리를 하고자 하는 가입자의 의지를 북돋워주고 치료비 걱정 없이 치료받을 수 있는 환경이 더욱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런 관점은 다른 유럽 국가들의 철학과도 일맥상통한다.

 프랑스 금융기술연구소(CSSP) 장 드 케르바스두에 교수는 "유럽의 건강보험 시스템을 유지하는 데 돈이 많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공공성을 유지하기 위한 정부의 개혁방향을 국민은 절대적으로 공감하고 지지한다"며 "건강보험 제도는 사적 시스템보다 공적 시스템으로 운영하는 것이 명백히 효과적"이라고 강조했다.

/pado@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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