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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과학의 미래,이젠 노벨상이다] (4) ② 포스텍

허현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2.01.29 17:36

수정 2012.01.29 17:36

포스텍 김용민 총장
포스텍 김용민 총장

 "지금까지 선진국을 추격하는 데 급급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이 상황을 역전시킬 때입니다. '당당한 실패(honorable failure)'를 두려워하지 않는 문화만이 원천기술을 이끌고 리더와 선구자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포스텍 김용민 총장(사진)은 29일 세계 신진 대학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포스텍의 철학을 이렇게 요약했다. 수월성에 초점을 둔 연구환경과 개방된 산학연 협력 모델은 포스텍이 단시간에 세계적 연구중심 대학으로 인정받는 토양이 됐다. 과학의 산물이 실험실에만 머물지 않고 삶의 영역으로 뻗어나가는 데 앞장서겠다는 포스텍의 비전과 청사진을 김 총장에게 들었다.


 ―비교적 짧은 시간에 세계적 수준에 올라선 대학으로 평가받는다. 성공요인은.

 ▲연구중심 대학이라는 획기적이고 도발적인 구상이 결실을 본 결과다. 포스텍은 지난 25년간 눈부시게 발전했다. 설립 당시 포스텍의 구상이 이렇게 성공하리라고 대부분 예상하지 못했다. 나도 1985년 말 워싱턴대학 교수 시절 포스텍 초빙 제의를 받았지만 26년 후 총장으로 부임할 때 포스텍이 여기까지 발전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시도는 충분히 성공했고 다른 대학의 롤모델이 됐다. 여기서 만족해선 안 된다. 인류에 공헌하는 핵심 가치를 목표로 세계 수준을 향한 제2의 도약을 준비할 때다.

 ―과학이 연구로만 머물지 않게 하려면.

 ▲연구의 질을 꾸준히 향상시키는 것뿐 아니라 연구 환경이나 산학협력 문화를 어떻게 정착시켜 나가느냐가 중요하다.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은 지난 50년간 탁월한 성장세를 보여 근대산업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1980년대까지 선진국의 과학기술을 따라가는 데 급급했다면 1990년대 들어서는 차이가 현격히 줄어들 정도로 추격 속도가 빨랐다. 이제 상황을 역전시켜 세계 과학기술계를 선도하려면 새로운 산학협력 모델이 필요하다.

 ―신(新)산학협력 모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학이 주도하는 연구의 질이다. 미국이 생명공학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할 수 있는 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정부가 끊임없이 기초연구 분야에 막대한 연구비를 지원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20~30년이 지나자 생명공학 회사들과 획기적인 상품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대학이 주도한 기초연구의 결과가 상품화되는 과정에서 새로운 회사가 생기고 생명공학 분야를 이끄는 기업들이 된 것이다. 갑을 관계로 형성된 산학협력 모델로는 경쟁력을 갖추기 어렵다. 대학과 산업이 신뢰를 바탕으로 동등한 파트너십을 구축해야 한다. 정부는 산업체와 대학의 협력을 명령하고 주도하기보다 대학과 산업체가 유기적으로 협력하도록 촉매 역할을 해주는 게 더 바람직하다. 단기간에 성과를 기대하다 보면 원래 원하는 장기적 목표가 토착화하기 어렵다. 선도 연구의 속성상 장기 플랜을 가지고 기다리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 유럽 등 과학강국들은 대학, 연구소, 각종 지원기관이 집적한 과학 생태계가 탄탄하다. 반면 국내 인프라는 취약한 편이다. 지식의 융복합을 일으키는 이런 구조에서 노벨상 수준의 연구가 더 유리하지 않을까.

 ▲산학연 클러스터를 노벨상과 동일선상에 놓고 보긴 무리가 있다. 에디슨은 발명의 아버지라고 불릴 만큼 19세기 최고의 과학기술자였지만 노벨상은 받지 못했다. 상품화와 세계 초일류 기업을 만드는 데는 분명히 성공했지만 기초 연구 분야에서는 과학자들에게 많은 인정을 받지 못했다는 의미다. 반대로 헬리코박터균의 존재를 규명한 배리 마셜 박사는 독창적인 연구로 위궤양 등의 연구와 치료기술을 진일보시키고 노벨상(생리의학상)도 받았지만 획기적인 산업적 가치를 창출했다고 보긴 어렵다. 수십년 동안 수천, 수만명의 과학자들이 연구하고 응용해 만들어낸 트랜지스터만 해도 노벨상의 주인공은 1940년대 후반 기초적인 연구를 한 사람들뿐이다. 기초연구를 통해 획기적인 기술을 창출해내려면 오랜 시간에 걸쳐 많은 과학자가 관련 연구를 발전시켜야 한다. 그런 점에서 지난달 설립된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기초과학연구원과 올해부터 구축될 연구단의 역할이 중요하다. 포스텍도 이 사업의 성공을 위해 협력할 것이다.

 ―과학인재를 배출하는 일선에서 한국 과학계에 기여하고자 하는 바는.

 ▲노벨상은 우리나라 과학기술이 수월성(excellence)을 제고한 노력의 결과이지 과학기술 정책의 방향을 지배하는 직접적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10년, 20년 꾸준히 지켜보고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gh-risk high return) 연구를 지원하는 문화를 정착시키는 게 중요하다. 노벨상을 배출하는 데는 개인의 수월성이 제일 중요하지만 집단의 수월성이 있으면 더욱 빨라지리라 생각한다. 집단 전체의 수준이 올라가면 개인의 수준도 빠르게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포스텍은 수월성 문화를 정착시키고 전체 연구 수준을 높이는 동시에 우수한 교수를 초빙하기 위해 노력한다. 젊은 교수들이 10~20년 뒤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스타급 교수가 될 수 있도록 이끄는 데 역점을 둔다.
학생들을 과학기술계의 리더로 키워 20~30년 뒤 노벨상을 받을 수 있는 학자로 성장시켜야 할 과제도 안고 있다. 대학의 기본으로 돌아가 교육과 연구 모든 면에서 수월성을 확보하도록 노력하겠다.
이런 문화가 정착되고 확산된다면 한국인의 노벨상 수상 시기를 앞당기는 데 기여할 것이다.

pado@fnnews.com 허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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