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애매한 '망 중립성' 기준은?/현형식 정보미디어부장
지구상에서 가장 재미 있는 볼거리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싸움과 시합, 불 구경이라고 말할 것이다. 왜 사람들은 여기에 흥미를 가질까. 그건 아마도 같은 문제를 놓고 공정한 규칙 아래 죽기살기로 싸워 승부를 내기 때문이다. 또 여기에는 승패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고 자신이 마음속으로 응원하는 자가 승리라도 하면 본인이 이긴 것처럼 대리만족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간 중간 엎치락뒤치락하는 시소게임도 구경꾼들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스릴이 있어 이만한 쏠쏠한 재미를 주는 것은 없다. 구경꾼들의 카타르시스를 솟구치게 하는 것도 흥행에 한몫한다. 그래서 소소한 내기 내지는 많은 돈을 걸어놓고 벌이는 도박, 승부 조작도 나오게 된다. 게다가 선수가 거물급이라면 싸움이나 경기는 더 흥미진진해진다.
최근 우리 사회에 문제가 돼 검찰의 수사대상에 오른 승부 조작, 법정 실화극인 '부러진 화살' 영화가 세간의 관심을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불편하지만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현실의 벽을 또 마주친다는 생각, 아니 어쩌면 이미 존재하고 있는 장벽이지만 애써 외면하고 싶거나 인지하지 못한 것을 다시 확인하는 것 같다는데서 사람들은 더 흥미를 가질지도 모른다.
그런 싸움이 최근 정보통신기술(ICT)시장에서 일어나 연일 인터넷 공간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관중은 관중대로, 이를 중계하는 언론은 언론대로, 이의 싸움의 대리인들은 아주 신이 나 있다. 최근 세계 정보기술(IT)업계의 1위 기업인 삼성전자와 국내 통신시장의 최강자인 KT가 맞붙은 싸움은 백미 중의 백미다. 월등한 맷집과 건장한 체격과 빼어난 기술을 갖춘 선수들간의 빅 게임이었기 때문이다.
마치 1970년대 전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권투 영웅 무하마드 알리와 전설적인 복서 조 프레이저의 빅매치에 견줘도 손색이 없다. 싸움의 발단은 KT가 지난 10일 자사 인터넷 망에 무단 접속한 삼성전자 스마트 TV의 '삼성 앱스' 서비스를 차단한데서 비롯된 것. 이에 삼성전자는 KT를 상대로 인터넷 서버 제한 행위 중지 가처분신청을 법원에 제출하며 맞받았다.
결국 이 싸움은 KT의 망 중립성 반칙이냐, 삼성전자의 무임 승차냐를 놓고 논란이 벌어진 것이다. 지난 14일 양측 모두가 부담을 느낀 나머지 '스마트TV 인터넷 차단'사태에 대해 합의안을 도출했다.
양측은 국내 ICT 산업의 발전과 건전한 생태계 조성 적극 협력, 사업자 간 자율협의체에 스마트TV 세부 분과를 즉시 구성, 운영하며 스마트TV산업.정보통신망 투자.가치제고를 위한 상호협력 방안을 논의한다는 내용으로 매듭을 지었다.
승자도, 패자도 없는 싸움 같았다. 내용을 들여다 보니 양측 모두 패자였던 것이다. 승자는 다름 아닌 구글과 애플, 페이스북 등 다국적 기업이었던 셈이다. 여기에다 3000만명의 고객을 보유한 카카오톡이나 미투데이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도 졸인 가슴을 활짝 펴게 됐다.
이번 애매하고 불편한 진실은 돈을 내지 않고 인터넷 망을 맘대로 써도 좋다는 구실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즉 자존심을 넘어 법정공방까지 벌였던 KT와 삼성전자의 싸움에 구경나온 구경꾼(다국적 기업)이 그 재미 있다던 강 건너 불 구경까지 하면서 생각지도 않은 실속을 챙긴 것이다. 가뜩이나 망 중립성으로 인한 망 사용 대가 산정이 얼마나 될지, 또 어떤 기준이 적용될지에 초미의 관심을 보이던 이들 기업들에는 노력이나 아무런 대가 없이 뜻하지 않은 최고의 수확을 얻은 것이다. 수십억원 내지는 수천억원의 이용 대가를 지불할 뻔했다가 공짜로 망을 이용할 수 있게 된 것.
그도 그럴 것이 구글TV나 애플TV, 삼성전자, LG전자가 글로벌 스마트 TV시장 진출을 계획하고 있는데다 올해를 기점으로 안방과 거실을 점령할 스마트TV 생태계 구축이 발 빠르게 전개되면 망 중립성이 다시 도마에 오르게 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전 세계 각국이 망 중립성과 트래픽 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제 우리는 세계 표준이 되는 망 중립성 기준 설정을 더 늦춰서도, 방치해서도 안 된다는 메시지를 고민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