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표 은행들이 텔러(영업점 창구 직원)들의 신분상승 기회인 '직군 전환시험'의 문을 갈수록 좁히고 있다.
은행들이 전환시험 자체를 아예 없애거나 합격자 수를 줄이면서 텔러 직원들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기회가 박탈되고 있는 것. 텔러 직원들은 임금이나 승진 등에서 일반직에 비해 불리하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은행은 올해부터 직군 전환 시험을 아예 없앴다. 지난해까지는 입사 2년이 지난 텔러 직원들을 대상으로 전환시험을 실시해 매년 50~70명가량이 일반직군으로 전환될 수 있도록 했지만 올해부터는 시험을 실시하지 않기로 했다. 이 때문에 현재 1000여명에 달하는 텔러 직원들이 일반직으로 전환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신한은행은 전환시험을 없애는 대신 기존 무기계약직 텔러 직원들을 '리테일 서비스(RS) 직군'이란 새로운 카테고리에 묶어 별도의 연봉과 승진체계를 적용했다. 이들은 전담텔러로 시작해 2년이 지난 후부터 주임텔러, 선임텔러, 칩텔러 등으로 승진하고 한 단계 승진하면 그때부터는 일반직 4급이 될 수 있다. 칩텔러까지 승진하는 데는 10년 가까이 걸리기 때문에 일반직 전환 기회도 그만큼 적을 수밖에 없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전환시험 통과자의 숫자를 점진적으로 줄이면서 최종적으로는 폐지하기로 노사가 합의한 사안이었다"며 "전환시험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직원들도 있고, 우회 입행의 수단으로 삼는 경우도 있어 이렇게 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은행은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941명의 텔러 직원들이 시험을 통해 일반직으로 전환됐다. 그러나 2009년 180명이었던 전환사원은 2010년 150명, 2011년 150명으로 감소 추세다. 텔러 직원이 대부분인 국민은행의 무기계약직은 4000명이 넘는다. 은행권 중 가장 많다.
하나은행은 텔러 직원들이 일반직으로 도약할 수 있는 전환시험 자체가 아예 없고, 텔러직군들은 신한은행처럼 '가계금융직열'로 묶어놨다. 직열간 전환도 원천 차단돼 있다. 우리은행은 4대 은행 중 유일하게 2009년 50명, 2010년 60명, 2011년 100명으로 전환사원 채용계획을 늘렸다.
은행의 직군은 크게 일반직군과 텔러직군으로 나뉜다. 일반직군에 속한 직원들은 대학 졸업 후 은행에 입사하는 직원들이다. 텔러직군은 고졸이나 대졸로 입사해 은행의 창구업무만 담당한다. 과거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뉘었지만 지난 2007년 금융권이 대대적으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시키면서 텔러 직원들도 모두 고용이 보장되는 '무기계약직' 형태로 바뀌었다.
그러나 고용만 보장될 뿐 일반직원과 텔러 직원들은 급여와 승진 등에서 뚜렷이 차별되는 체계를 적용받는다. 여.수신을 비롯한 주요 업무들을 모두 해야 하는 일반직에 비해 창구업무를 담당하는 텔러직은 업무영역과 강도가 다르다는 것이다. 이 같은 차이를 극복하는 탈출구가 바로 전환시험이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과거에는 고졸 계약직과 대졸 정규직의 차이가 컸지만 최근에는 대부분 고용이 보장되기 때문에 차이가 크지는 않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직 전환을 원하는 직원이 많기 때문에 전환시험에는 사람들이 몰리게 마련"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은행 입장에서 이미 무기계약직 제도로 막대한 인적비용을 부담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다시 매년 일반직으로 전환되는 직원이 늘어나는 것이 달갑지만은 않다"고 지적했다.
ahnman@fnnews.com 안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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