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전국

제약사 "약가인하 소송 숨겨라"

조상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2.03.12 17:20

수정 2012.03.12 17:20

최근 정부의 약가인하 방안에 반발해 제약사들이 대거 소송을 검토하는 가운데 로펌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소송 사실이 대외적으로 알려질 경우 더 큰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제약사들이 사건을 의뢰한 로펌들에 입단속을 요구하고 나서자 보안에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괘씸죄'우려 소송사실 보안 유지

12일 법조계와 제약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보건복지부가 보험의약품 가격을 평균 14% 낮추도록 하는 내용의 약가인하 방안을 확정, 고시함에 따라 오는 4월부터 전체 보험의약품 1만3814개 중 47.1%에 달하는 6506개 전문의약품 가격이 최대 46% 인하된다. 제약업계는 생존권이 달린 만큼 물러설 수 없다는 입장이어서 줄소송이 예고돼 있다.

소송은 지난 7일 중소제약사인 다림바이오텍과 KMS제약이 "복지부의 약가 일괄 인하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서울행정법원에 소장을 제출하면서 시작됐다. 이어 9일에는 일성신약과 에리슨제약이 소를 제기했다.
이들 회사의 법률대리는 모두 법무법인 태평양이 맡았다. 소송 제기 당시 태평양은 이 사실을 언론 등 대외에는 알리지 않았다. 그동안 법무법인이 소송을 제기할 경우 관심을 가져달라는 취지에서 공식적으로 보도자료나 소장 복사본을 공표했던 점에 비춰보면 이례적인 일이다.

이는 제약사가 약가 결정과 인허가 등 제약사의 업무 전반을 관리하고 있는 이른바 '슈퍼 갑'인 복지부를 상대로 맞서는 상황이 대외적으로 알려질 경우 '괘씸죄'로 낙인 찍혀 더 큰 화를 초래할 수 있을 것으로 우려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제약업계 한 관계자는 "실제 소송에 들어가면 법정에서 복지부와 맞닥뜨릴 수밖에 없지만 소송 전부터 대립각을 세우는 모양새가 알려지면 제약사로서는 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며 "제약사 대부분이 소송 사실을 외부에 유출하지 말 것을 로펌 측에 요청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제약사를 대리해 소송을 준비 중인 대형로펌의 한 관계자는 "당초 7일 소장을 제출하려 했지만 먼저 스타트를 끊어 주목받을 경우 부담스럽다는 제약사 측의 요구로 소 제기 시점을 조율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본안소송보다 집행정지에 무게

이번 약가인하 소송에는 최소 100여곳의 제약사가 참여할 것으로 관측된다. 제약사들을 대리해서는 태평양 이외에도 김앤장, 율촌, 세종, 화우 등 국내 5대 로펌 대부분이 총출동할 예정이다.

그러나 법조계에서는 본안소송인 약가인하 취소소송의 경우 승소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약가 일괄인하가 법률이 위임한 재량권을 복지부가 남용했다는 점을 제약사 측에서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본안소송보다는 효력정지 가처분에 기대를 거는 것이 효율적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통상 당사자가 행정당국의 처분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할 경우 선고 전까지 처분집행을 정지시켜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함께 낸다.
법원이 제약업체들의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일 경우 4월부터 시행예고된 약가인하는 소송기간을 고려할 때 선고 이전까지 상당기간 유예될 전망이다.

보건의료 제도에 정통한 한 변호사는 "약가인하가 공익적인 성격이 큰 만큼 법원이 제약사에 유리한 판결을 내리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면서도 "다만 가처분의 경우 법원이 특정 품목의 시장점유율이나 업체별 상황 등 피해가 심각하다고 인정할 경우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또 다른 대형로펌 변호사는 "본안소송과는 별개로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지기만 해도 제약사 입장에서는 피해를 완충시킬 수 있어 충분한 실익을 얻을 수 있을것"이라며 "제약사는 복지부의 처분이 '회복할 수 없는 손해'라는 것을 객관적으로 입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mountjo@fnnews.com 조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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