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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칼럼] 어느 좀생이의 살림 걱정/김성호 주필

김성호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2.03.13 16:40

수정 2012.03.13 16:40

[김성호칼럼] 어느 좀생이의 살림 걱정/김성호 주필

서울 강남 유흥가의 불경기를 설명하는 기사가 얼마 전 신문에 났다. 단란주점을 한다는 한 업소 주인의 말을 빌리면 1인당 술값을 50만원에서 30만원으로 푹 내렸는데도 손님이 거의 없다고 한다. 불경기 한탄은 그렇다치고 1인당 술값을 50만원에서 30만원으로 내렸다는 설명은 예사로 들리지 않는다. 단란주점이라면 서민들이 드나드는 곳으로 알고 있는데 그곳 술값이 이렇게 비싸다니.

50만원, 100만원이 향락산업 앞에서는 별것 아니겠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큰 돈이다. 88만원 비정규직 아르바이트생의 입장에선 한달 생활비와 맞먹는다. 현재 0~2세 아동을 어린이집에 보내는 가정에서 한 달에 받는 보육료가 28만6000원 내지 39만4000원이다.
단란주점에서의 하룻밤 술값은 귀여운 자식의 한달치 보육료를 웃돈다. 어느 지방 대학 교수님들은 작년 6월 한달치 급여로 13만6000원을 받아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대학 재정 부실에 재단 비리까지 겹쳐 어쩔 수 없이 일어난 해프닝이라지만 술집에 쓰는 50만원이라는 돈의 무게를 재는 데는 손색이 없다.

고용노동부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중소기업의 상용직 근로자의 월평균 임금은 263만8000원이었다. 만약 어떤 근로자가 단란주점에서 친구와 둘이 술을 먹고 100만원을 지불했다면 월급의 3분의 1이 넘는 돈을 하룻밤에 쓴 것이다.

남자들이 향락산업에 돈을 쓰는 동안 여자들은 명품 소비에 정신을 못차리는 게 요즘의 풍속도다. 어느 여자는 자꾸 어깨가 한 쪽으로 기울어 병원에 가봤더니 800만원짜리 명품 백의 무게가 무거워 그렇게 됐단다. 그런데도 몇 달을 기다려 명품 백을 메겠다는 사람이 줄을 설 정도라니 머지않아 거리에는 자세가 비뚤어진 여인들로 흘러넘칠것 같다. 너무 썰렁한 농담이라고?

한국인들이 겁도 없이 마구 쓰는 습관이 어디서 생겼나 했더니 다 이유가 있었다. 먼저 세금 안 내는 소득이 많다. 국세청이 고소득 자영업자에 대해 세무조사를 실시한 결과 2011년 상반기 소득탈루율이 36.6%나 됐다. 2005년에는 이 수치가 59.6%까지 올라갔었다. 소득탈루율은 국세청에 신고하지 않은 소득의 비율이다. 번 것의 절반 가까이를 세금을 내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처럼 거저 생기다시피 한 돈이니 단란주점에서 50만원이 아니라 100만원을 쓴들 아깝다고 생각되겠는가.

술 집에서 쓸 돈이 생기는 구멍은 또 있다. 바로 빚이다. 2011년 말 가계부채는 드디어 913조원에 이르렀다. 빚을 지는 속도와 대출금 상환액이 늘어나는 속도는 서로 경쟁적이다. 2011년 정부가 실시한 가계금융 조사 결과 가구당 소득은 평균 6.3% 늘었지만 원리금 상환액은 22.7%로 늘었다. 버는 것보다 빚 상환금이 더 많이 늘고 있다. 이렇다면 장차 버는 것을 모두 빚 갚는데 써도 모자랄 판 아닌가.

지금까지 50만원, 100만원이 아깝다고 사설을 늘어놨으니 어지간히 좀생이가 된 기분이다. 헤프게 쓰지 말자고한 게 좀생이 취급을 받으면 좀 억울하다. 물귀신 작전의 일환으로라도 어느 '왕 좀생이' 1명을 소개해야 직성이 풀릴 것 같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디에이고에 사는 데이브 브루노는 평범한 대학 강사다. 그는 어느 날 자기 소유 물건을 줄이고 줄여 100가지만 가지고 살 결심을 한다. 그런 결심을 하게 된 동기는, 자신은 과도한 소비주의가 우리 삶을 망치고 있다고 글을 쓰지만 정작 자기 집은 잡동사니로 넘쳐나고 있음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의 경험담은 곧 '100개만으로 살아보기(The 100 Thing Challenge)'라는 책으로 엮어져 출판됐다.


그는 책 말미에 정말로 실생활에서 필요한 물건은 100개가 아니라 신발·셔츠·휴대폰·지갑 등 14개면 충분하다고 덧붙인다. 그는 자신이 '소유물의 노예'에서 해방됐음을 선언한다.
우리가 보건대 그는 왕 좀생이다. 그런데도 그는 승리자요 주인공인 걸 어떡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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