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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트리트] 그들이 삼별초를 안다면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2.03.14 09:22

수정 2012.03.14 09:22

 세종은 독서광이었다. 식사 때도 좌우에 책을 펼쳐놓았다. 아버지 태종은 셋째 충녕대군을 세자로 선택하면서 "추울 때나 더울 때도 밤새 독서하므로 나는 그가 병이 날까 두려워 야간독서를 금지했다"고 말할 정도다. 한 번은 충녕이 병이 나자 태종이 내시를 시켜 책을 모두 가져왔다. 그런데 내시가 그만 중국 송나라 구양수와 소식의 편지 모음집인 '구소수간(歐蘇手簡)'을 빠뜨렸다. 충녕은 이 책을 1000번 이상 읽은 것으로 전해진다.


 세종은 역사서를 즐겨 읽었다. '춘추좌씨전'이 대표적이다. 줄여서 '좌전(左傳)'이라고 부르는 이 책은 공자가 쓴 역사서 '춘추'의 주석서이다. 또 다른 책 '자치통감'은 북송의 사마광이 주(周)나라부터 후주(後周)까지 16개국의 역사를 294권으로 편찬한 방대한 역사책이다. 재위 23년(1441년)엔 "정치를 하려면 반드시 앞선 자취를 살펴야 한다"며 정인지 등에게 역사서 '치평요람'의 편찬을 명했다. '치평요람(治平要覽)'이란 책 이름은 세종이 직접 지었다. 세종은 중국 주나라부터 원나라 역사까지 기록한 이 책에 우리 역사도 함께 넣도록 했다.

 경연(經筵)을 놓고는 신하들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경연은 왕과 신하들이 함께 책을 잃고 토론하는 제도다. 이때 세종은 역사서를 선호했다. 반면 사대부 신하들은 경서(經書) 즉 유학서를 선호했다. 세종이 현실을 중시했다면 신하들은 당위를 중시한 셈이다. 절충안으로 나온 책이 '통감강목(通鑑綱目)'이다. '통감강목'은 '자치통감'을 주자학의 시각에서 재편집한 요약본이다.

 역사는 오늘을 비추는 거울이다. 고려 때 삼별초는 제주도를 최후의 거점으로 삼아 끈질긴 항몽투쟁을 벌였다. 강정 해군기지는 영해 수호를 맡은 삼별초의 후예들이 활동할 공간이지 해적기지가 아니다. 임진왜란 때 왜적을 궤멸시킨 이순신 장군은 지금 후배 수군(水軍)들이 겪는 수모에 저승에서 가슴을 치고 있을지 모른다.

 정치 지도자라면 긴 안목으로 세상을 봐야 한다. 낭만적 평화주의는 종교인·시민단체의 몫이다.
정치인은 땅에서 발을 떼선 안 된다. 현실주의자 세종은 우리 땅을 두만강 유역까지 넓히고 6진(鎭)을 쌓았다.
누가 되든 다음 대통령은 세종처럼 역사책을 즐겨 읽는 인물이면 좋겠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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