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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人]연극 '궁리' 연출 이윤택 "나는 장영실의 아류.."

최진숙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2.03.14 16:03

수정 2012.03.14 16:03

[문화人]연극 '궁리' 연출 이윤택 "나는 장영실의 아류.."

"보세요. 여기선 부드러워야해요. 간단해. 손은 이렇게 돌리고. 내려놓을 때는 숨을 풀어야지. 우리식 호흡으로. 그렇지!"

13일 오후 서울 서계동 국립극단 연습실. 연극 '궁리' 리허설이 한창이다. 이날 아침 경남 밀양에서 KTX 열차를 타고 상경한 이윤택 연출(60·사진)이 배우들을 붙잡고 씨름 중이다. "상상을 해봐요. 내가 별이다 생각하고. 어차피 뻔한 거짓말이잖아. 그럴 때 신념을 가져야지. 연극은 어차피 환상의 리얼리티라니까."

조명스태프가 들고온 노트북 속 스페인 영화 '알라트리스테'를 가르키며 "이거야, 이거"를 외친다. "이 조명이 최고에요. 배우가 움직일 때마다 얼굴 빛이 다 다르잖아. 배우가 조명 속으로 들어가있는 느낌을 주게 빛을 맞춰야 해요." "음악은 무소르스키 '전람회의 그림'으로 갑니다. 악기는 북과 징이에요. 이 다음 음악이 향악이에요. 세종의 경회루 조회 장면에서 제례악이 나옵니다."

연극 '궁리'는 조선 세종시대 천재 과학자 장영실을 다룬 이윤택 극본·연출의 역사극이다.
'문제적 인간, 연산' '조선선비 조남명'을 잇는 세번째 인물사극이자 10년만에 내놓은 그의 신작. 국립극단과 대전문화예술의전당, 안산문화예술의전당, 고양문화재단이 공동으로 제작에 참여했고 서울 무대는 오는 4월 24일부터 5월 13일까지 서계동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펼쳐진다.

이윤택은 지난해 여름 그의 친구(양맹준)가 관장으로 있는 부산국립박물관의 장영실 기획 전시전 '궁리(窮理)'를 본 뒤 즉각 "해 볼만하다" 감을 잡았다. "두가지 느낌이었습니다. 아름답고, 놀랍다. 장영실이 만든 천체도구가 너무 아름다웠고, 그 천재 과학자의 일생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랍고 그랬어요." 그 뒤 펜을 잡아 일사천리로 8일만에 소설 '궁리'를 완성, 실종된 조선의 발명왕 장영실을 다시 살려낸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장영실은 15세기 엄격한 신분제 조선시대 다문화 가정 출생자다. 중국 원나라 귀화인 과학자 아버지, 부산 동래현 관노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다. 노비 신분이었지만 그의 천재성을 높이 산 세종에 의해 종3품 벼슬까지 오른다. 하지만 결국엔 변방으로 내쳐진 뒤 역사의 뒤안길로 종적을 감춘 비운의 천재다.

"장영실이 발명한 물시계 '자격루'가 요즘 쓰는 디지털 시계에요. 그걸 그때 발명했습니다. 조선 민중들도 그 시계로 자신이 몇 날 몇 시에 태어난지 알게 됐어요. 그게 중국도 제대로 완성하지 못한 물건이었는데 명나라 견제가 왜 없었겠습니까. 조선이 과학의 자주독립을 선언할 수 있는 상황이잖아요. 양반 출신 조선 관료들 눈엔 세종의 사랑을 독차지한 장영실이 거슬렸겠죠. 이런 상황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윤택의 삶은 역사 속 장영실의 인생과 겹친다. 고졸 출신 시인으로 등단한 뒤 기자, 극작가, 연출가로 발을 넓혀 부산에 근거지를 둔 연희단거리패를 창단, 1980년대 후반 한국 연극계에 충격을 안겼던 문화게릴라. '시민K' '오구' '햄릿' 등으로 지금까지도 그만의 강고한 성을 쌓고 있지만 그의 문화적 은신처는 여전히 변방이다.

"출신은 장영실과 달라요. 전 경주 양동 마을 3대 독자로 태어났습니다. 이율곡 같은 사람으로 만들려는 어머니, 외할머니 때문에 전 귀족교육을 받았어요.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시를 썼고 학교에선 줄곧 합창부, 문예반을 했어요. 중학교 땐 검도도 했지요. 자만심으로 가득찬 시절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명절에만 집을 들렀던 장사꾼 아버지는 그에게 가난을 물려줬다. 부산중, 경남고를 졸업했지만 서울대 입시에 낙방한 뒤 "사회화되는 과정에서 이탈했다"는 게 그의 표현이다. 지금 그의 주 터전은 경남 밀양연극촌, 부산 가마골 소극장, 김해 창작스튜디오다.

예측불허 예술 감각의 그는 국립극단 예술감독, 동국대 연극학과 교수로도 임용되면서 제도권에 안착할 기회를 얻었지만, 결국 택한 건 '자유인'이었다. "보장된 문화권력을 누리며 사는 것보다 끝까지 깡다구로 살며 저항하는 게 내 길이다 싶었던 겁니다. 작가정신 같은 거죠. 전 엄격히 말하면 경계인이에요. 가끔 제도권에 들어가 판을 흔들고, 다시 나오고. 인생이 장영실만큼 강렬하진 않아요. 그저 장영실의 아류, 후예 정도라고 할까."

문학평론가 김경복은 '한국의 문학적 아나키스트 4인방'으로 신채호, 신동엽, 김산하와 함께 이윤택을 지목했다. '무정부주의자' 이윤택의 철학은 사실 연극 '궁리'에 오롯이 녹아 있다. 극중 장영실은 자신을 버린 세종의 존재를 결국엔 지워버린다. 밤하늘 별을 올려다보며 내뱉는다. "내 주군은 이제 저기에 있소." 이윤택의 이데올로기가 집약된 대사다. "이로써 장영실은 자기만의 세계를 창조해냅니다. 결국 국가의 물적 기반을 만든 이는 천민이 만들어낸 농업이고 전문화된 기술자들이에요. 하지만 이들은 이름없이 사라집니다.
장영실처럼요. 이 연극은 이런 민중들에 대한 새삼스런 확인입니다."

이윤택은 장영실처럼 그만의 별을 품고 있다.
"이제 제 나이 60이에요. 안목은 넓어지고 커졌는데, 에너지나 도전의식은 약해졌어요. 하지만 지금이 정말 보편적인 고전을 만들어낼 수 있는 나이에요. 이전까지는 습작이었습니다. 100년을 남길만한 고전을 만들고 싶어요."
jins@fnnews.com 최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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