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월드리포트] 뉴욕증시와 폭락방지팀/강일선 로스앤젤레스 특파원

윤재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2.05.03 17:05

수정 2012.05.03 17:05

[월드리포트] 뉴욕증시와 폭락방지팀/강일선 로스앤젤레스 특파원

지난달 뉴욕증시가 급락 조짐을 보이자 월가에선 '폭락방지팀(PPT)'이 시장 개입에 나설 것이란 루머가 유포되기 시작했다.

5개월간 지속돼 온 강력한 지지선인 20일 이동평균선이 붕괴되면 다음 지지선인 11400까지 밀릴 수 있는 절박한 시점이었다. 일부 전문가들이 주장했던 10% 조정설도 이러한 기술적 분석에 근거한 것이었고 만일 그랬다면 증시는 자칫 장기 침체에 빠질 위험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곧 강력한 매수세가 유입되며 시장은 상승 추세로 반전됐다. PPT가 개입했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개입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순 없었다.

PPT의 실체는 무엇일까.

지난 1987년 10월 '블랙 먼데이'가 터진 후 레이건 행정부는 주가 폭락이 국가안보를 위협할 수 있다고 판단, 대통령 직속기구로 금융시장 안정을 위한 '실무그룹'을 두게 됐다.
이는 재무부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증권거래위원회(SEC),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수장들로 구성돼 있었다.

1997년 이들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워싱턴포스트(WP)지는 이들을 '폭락방지팀(Plunge Protection Team)'이라 명명했고 그 후로 간단히 PPT로 불리게 됐다.

WP 등 미 언론들에 따르면 여기엔 주식과 채권, 외환, 선물, 파생상품을 망라한 금융전문가들이 참여하고 있다. 정상적인 때엔 시장의 자율에 맡기지만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이들은 활동을 개시한다.

금융 위기가 절정에 달했던 지난 2008년 이후 FRB와 미 재무부는 공공연하게 시장개입 의사를 밝혔고 PPT가 여러 차례 행동에 나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양적 완화도 PPT 활동 중 하나로 보는 견해도 있다.

최근 PPT의 개입설이 끊임없이 나돌자 CNBC 등 일부 언론들은 이들의 행적들에 관해 보도하기도 했다. 지난 3월엔 PPT가 그리스 국채시장에 개입했다는 설도 제기됐다. 시장조작은 법으로 금지돼 있는 만큼 이들의 활동이나 임무는 베일에 가려 있다. 다만 시장 상황과 정부 입장, 유입된 자금 규모 등 다양한 정보와 데이터들을 종합해 추정만 할 뿐이다. 그러나 상황이 위급하면 실체를 드러내는 경우도 있다.

2009년 3월 다우지수가 연일 폭락하며 6000선 붕괴를 눈앞에 두고 있던 당시 미국 정부는 시장개입에 나설 것임을 분명히 했다. 수일 동안 거대한 매수세의 유입으로 다우는 7000선으로 복귀했다. 풋 옵션과 선물 숏에 나섰던 투자자들은 주가가 강하게 반등하자 손실 만회를 위해 숏커버링으로 현물 주식을 사들이면서 증시는 대세 상승국면으로 반전될 수 있었다.

미국은 아직도 비상시국이다. 각종 경제지표들이 호전됐다고는 하나 여전히 불확실하다. 기업들의 실적은 둔화되고 일반인이 느끼는 체감경기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부동산 시장의 침체는 끝이 보이질 않는다. 정부가 발표하는 고용지표는 개선됐지만 구직을 포기한 사람들과 실업수당을 청구할 수 없는 실업자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라는 비관적 시각도 있다. 대학 졸업자 중 절반이 직장을 구하지 못했다. 캘리포니아주에선 올해 초 2만명의 교사들에게 해고통지를 했다. 중소기업과 개인의 세금보고를 대행해주는 회계사들의 말을 들어보면 한결같이 작년보다 소득이 줄었다는 푸념뿐이다.

이런 악재들에도 불구하고 재정위기에 처한 유럽이 대혼란에 처하거나 천재지변이 발생하지 않는 한 뉴욕증시는 폭락할 것 같지 않다. 올해는 대통령선거가 있는 해다. 기업들의 현금 보유는 사상 최대 규모다. 부동산과 상품, 선물 같은 대체투자가 위축되면서 증시 외엔 투자할 곳이 별로 없다. 게다가 위기가 닥치더라도 PPT가 버티고 있다.

미국 돈엔 '우리는 신을 믿는다 (In God we trust)'는 글이 써 있다.
19세기 중엽 가난했지만 신앙심 깊었던 미국인들은 신의 도움과 힘 없이는 나라가 부강해질 수 없다며 돈에다 이 구절을 새겼다. 오늘날 월가에 위기가 닥칠 때마다 투자자들 사이에서 떠도는 얘기가 있다.
'우리는 PPT를 믿는다(In PPT we trust)'는 말이다. kis@fnnews.com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