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전시·공연

[공연리뷰] 연극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최진숙 기자
파이낸셜뉴스
연극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의 한 장면
연극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의 한 장면

"왜 진작 말하지 않았느냐"고 죽은 아이의 무덤가에 앉아 울부짖는 건 아무 도움이 못된다. 그렇다면 시간을 되돌려 아이가 살아 있다고 치자. "난 지금 왕따를 당하고 있어요, 저 좀 도와주세요." 그렇게 우렁차게 말을 하라고 한들, 그 아이의 입에서 절로 그 소리가 나올 수 있겠는가. 그저 엘리베이터 안에 웅크리고 앉아 혼자 흐느끼다 지쳐 쓰러지는 게 그 아이들의 최선이지 않았나. 이 안타깝고 속타는 청소년 왕따 문제를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이 연극은 최소한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값진 걸음이다.

무대는 서울 강남의 한 여학교 상담실. '드르르'. 주황색 명품가방을 팔에 걸친 서영의 엄마가 문을 열고 들어선다. 속속 나머지 어른들도 당도한다. 남편과 연락이 닿질 않는다며 연방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대현 엄마, 전교 1등을 놓친 적 없는 지수의 부모, 엄마의 재혼으로 혼자가 된 예림의 할머니·할아버지, 그리고 학교 운영위원회 회장을 맡고 있는 윤정의 엄마와 아빠. 이들의 공통점은 2학년 3반 손민아 학생과 같은 반 아이들의 학부형이라는 사실이다. 왜 이곳에 불려왔는지 이유를 모르는 이 부모들은 돌아가며 자기 소개로 잠시 웃음꽃을 피운다. 민아는 이날 아침 학교에서 목을 매 자살한 아이다. 죽기 직전 민아가 쓴 세 통의 편지가 차례로 이 상담실로 날아들면서 의문은 하나둘 풀린다.

연극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는 일본 극작가 하타사와 세이고 작품의 국내 초연작이다. 한때 일본에서 교사를 했던 하타사와 세이고는 "2006년 이지메를 견디다 못해 자살한 중학교 2학년 일본 남학생 사건이 작품을 쓰게 된 동기다. 그 아이의 죽음 직후 보였던 가해 학생들과 그 부모들의 뻔뻔한 반응에 충격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일본에선 이 작품이 2008년 초연됐다.

무대엔 가해 학생이 한 명도 나오지 않는다. 그 아이들의 부모, 교사들만 등장한다. 이 문제가 학생들만의 것이 아니라는 걸 웅변한다. 유서를 불에 태우고, 삼켜버리고, 폭행 사진을 지워버린다 한들 그 진실이 어디 숨겨질 수 있는 것인가. "우리 아이가 그럴 일 없다" 소리쳐도 현실은 현실인 것이다. 무대는 관객에게 "당신이라면 어떻겠소" 잔인하게 말을 건넨다. 객석에 앉은 이들은 "나라면 어찌해야 하나" 먹먹하다.

무대 세트는 베이지톤의 상담실 풍경에서 명암만 바뀔 뿐 특별한 변화가 있진 않다. 진실을 추적하는 서스펜스극 형식을 담다 보니 전적으로 배우들의 연기에 기대고 있다. 관록의 배우들은 무대를 몰아친다. 영은 엄마 역 서이숙, 지수 아버지 역 박지일의 연기가 돋보인다. 손숙, 박용수, 길해연, 이대연, 손종학 등 쟁쟁한 배우들이 한꺼번에 나온다는 점도 끌리는 요소다.

극은 희망보다 절망을 택한다. 김광보 연출은 "희망을 찾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쓰라린 현실에 비해 연극은 덜 아프다. 더 강한 분노를 안겼어야 하는 거 아닐까. 역설적으로 이는 이 연극이 왜 필요한가에 대한 답도 될 것이다. 오는 7월 29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4만~6만원. (02)399-1114

[email protected] 최진숙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