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인도 ‘허가경제’ 못견뎌..韓기업 줄철수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2.09.24 17:37

수정 2012.09.24 17:37

인도 ‘허가경제’ 못견뎌..韓기업 줄철수

【 뭄바이(인도)=김병용 기자】 지난 21일 인도의 경제·상업 중심지 뭄바이. 시내 한 식당에 한국 기업 주재원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고국으로 돌아가는 이들을 환송하기 위한 자리다. 20명가량 모인 이날 모임에서는 자연스럽게 인도 비즈니스 환경에 대한 얘기가 오갔다.

12억 인구의 인도시장은 결코 포기할 수 없다는 공감대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인 어려움에 대한 하소연이 이어졌다.

'인도의 뉴욕'으로 불리는 뭄바이에서 짧게는 1년, 길게는 10년 가까운 시간을 보내면서 현지 사정에 누구보다 정통한 이들은 "넥스트 차이나(Next China)는 없다"며 인도시장에 대한 지나친 낙관론을 경계했다.


중국과 같은 고속성장은 없다는 얘기다. 인도 특유의 정치사회, 문화를 이해해야 하고 투자는 장기적 안목이 필요하다는 게 이들의 조언이다.

■인도에서 줄줄이 철수 사태

실제 인도의 보이지 않는 장벽에 부닥쳐 현지법인 철수를 결정하는 한국 기업이 적지 않다.

롯데마트는 지난해 인도 정부의 유통시장 개방에 대비해 뭄바이 사무소를 열었다. 하지만 법 개정작업이 늦어지자 올 초 뭄바이 사무소를 폐쇄키로 결정했다. 해당 법률은 이달 초에야 통과됐다. 하지만 최근 인도 전역에서 반대 시위가 벌어지면서 시행 전망이 불투명한 상태다.

뭄바이 주재 한국 기업 A사 법인장은 "롯데마트 직원들이 '뭄바이 사무소를 열었다'면서 명함을 돌린 후 얼마 되지 않아 한국으로 돌아갔다"며 "초기투자비용 200만달러만 날렸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SKC도 올 들어 뭄바이 사무소 폐쇄를 결정하고 인도 정부에 허가를 신청했다. 하지만 인도 정부는 수개월째 답변을 내놓지 않아 SKC 측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헛돈만 쓰고 있다.

락앤락은 뭄바이 주재 직원 일부를 인도네시아로 이동시키는 등 사실상 법인 폐쇄 절차를 밟고 있다.

■난제 산적, 장기적으로 봐야

현지 주재원들은 인도에 진출한 기업 중 몇몇 대기업을 제외하곤 대부분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이들은 애로사항으로 △인도 정부·정치권의 후진성 △투자비용 산출의 어려움 △인도 정부의 이중성 등을 꼽았다.

장석구 뭄바이 총영사는 "인도 경제는 한마디로 '허가경제'로 요약할 수 있다"며 "인도 경제는 정치권의 입김에 쉽게 흔들린다"고 설명했다. 세계은행이 매년 발표하는 '국가별 기업하기 좋은 환경' 발표 순위에서도 인도는 최하위인 132위를 기록했다.

특히 인도 사회 전반의 관료주의와 부패는 난제로 꼽힌다.

뭄바이에 진출한 국내 대형 선사인 B사 관계자는 "뭄바이는 인도 물동량의 55%가량을 차지한다. 이 때문에 항만 개발이 시급하다"며 "하지만 제4차 항만개발 프로젝트가 정부의 과다한 인센티브 요구로 외국 기업이 참여를 꺼리면서 수년째 표류하고 있다"고 전했다. 세금항목 및 절차의 복잡성 등으로 투자비용 산출이 어려운 점도 인도 진출의 보이지 않은 장벽이다. 대부분의 국가는 중앙정부가 조세항목의 세율을 정해 국가적으로 일관되게 적용한다. 그러나 인도는 지방정부가 조례를 통해 적용 세율에 차등을 둘 수 있다.

이와 관련, 뭄바이에 법인이 있는 공구업체 C사 관계자는 "인도 세금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귀걸이"라며 "불투명한 세무환경은 인도 투자에 큰 리스크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이 밖에 인도 정부의 이중성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인도는 2010년 1월 한국과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CEPA)을 맺고 주요 교역상품에 대한 관세 철폐 및 인하를 통해 한국의 투자를 적극 유도하고 있다. 그런데도 인도 세무당국은 최근 델리에 진출한 한국 기업을 상대로 수개월째 세무조사를 진행하는 등 세금폭탄을 날리고 있다.

인도에서 현지 바이어와 한국 기업의 매칭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파크ITC 박성훈 대표는 "인도는 젊은 인구가 많은 만큼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시장인 건 분명하다"며 "그러나 인도에서 성공 여부는 적응력과 인내심에 달려 있다"고 길게 볼 것을 조언했다.

ironman17@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