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병 찬성의견을 믿고 주주총회까지 연기했는데…. 당혹스러운 입장입니다."
스팩(SPAC·기업인수목적회사)이 계속된 기관의 말 바꾸기로 청산될 위기에 처했다. 시장 침체 속에 어렵사리 피합병기업을 찾는다 해도 한국거래소의 강화된 심사에 번번이 고배를 마시고 있어서다. 특히 기관투자가들의 이해관계로 합병을 눈앞에 두고 줄줄이 상장폐지 절차를 밟고 있다.
■말 바꾼 기관, 깨져 버린 합병
히든챔피언스팩1호는 지난 7월 환경에너지 전문기업 엔바이오컨스와 합병을 선언했다.
히든챔피언지분을 각각 17.02%, 15.51% 보유하고 있는 동부자산운용과 유진자산운용이 합병에 반대의사를 표했기 때문이다.
이후 피합병법인 엔바이오컨스와 히든챔피언스팩은 3대 주주였던 KTB자산운용이 보유한 지분 9.37%(150만9000주)를 취득했다. 자사주 취득을 통해 합병을 위한 조건이 완성된 셈이다.
이로 인해 찬성의사를 표했던 동부자산운용은 주총을 일주일 앞두고 돌연 "내부사정상 합병에 찬성할 수 없다"는 입장을 통보했다. '투자자 보호 차원'에서 내린 결정이라는 입장이지만 동부자산운용의 말만 믿고 합병을 연기하고 지분을 취득한 스팩과 엔바이오컨스는 결국 뒤통수를 맞은 것. 엔바이오컨스 관계자는 "동부자산운용이 반대했다면 애초에 합병주총을 연기하지도 않았을 것"이라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이로 인해 히든챔피언스팩은 내달 7일까지 합병을 공시하지 못하면 거래정지에 처해진다.
■증권사 '망연자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이 같은 합병불발 소식에 히든챔피언스팩1호의 공동대표주관사로 나섰던 메리츠종금증권과 삼성증권 관계자들은 망연자실한 상태다. 해당 증권사 관계자는 "동부자산운용이 기존에 찬성의사를 표하지 않았다면 주총을 연기하는 일은 없었을 것아다. 이들이 기관 대 기관으로서 신뢰를 어기면서 돌연 의사를 바꿔 매우 당황스럽고 곤란스럽다"며 "향후 청산절차가 진행돼봐야 윤곽이 나오겠지만, 앞으로 금전적이든 비금전적이든 타격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토로했다.
메리츠종금증권은 지난 2010년 6월 히든챔피온스팩이 신규 상장할 당시 보통주 83만7499주를 1940원에 취득했으며, 전환가액이 1000원인 전환사채 175만주 등 총 258만7499주를 떠안았다. 삼성증권은 보통주 235만9996주(취득단가 2000원), 전환사채 170만주 등 405만9996주를 떠안았다. 이후 지난달 8일 보통주 235만9996주 전량을 유진자산운용에 2050원에 매각했다.
현재까지 합병에 실패한 스팩은 총 8개로 이 중 부국퓨쳐스타즈스팩, 하이제1호스팩, 키움스팩1호, SBI앤솔로몬스팩은 거래소로부터 합병상장 미승인 판정을 받았다. IBK스팩1호는 지난해 11월 합병승인을 자진 철회했다.
또한 이번 히든챔피언스팩1호를 비롯해 대신증권그로쓰스팩-썬텔, 하나그린스팩-피엔티는 주총에서 기관의 반대로 합병이 무산됐다. 아울러 대우증권스팩, 미래에셋증권스팩, 동양밸류스팩은 결국 마땅한 인수합병(M&A) 대상을 찾지 못해 자진 상장폐지됐다.
■스팩의 적은 스팩펀드(?)
이같이 스팩합병이 더뎌지는 이유는 흥행 실패 때문이다. 실제 앞서 스팩합병에 성공한 6곳 중 하이비젼시스템을 제외한 알톤스포츠, 화신정공, 서진오토모티브, 코리아에프티, 삼기오토모티브 등이 주식매수청구가격보다 낮은 주가를 형성하고 있으며, 거래대금 감소가 지속되는 등 시장의 철저한 외면을 받고 있다.
실제로 증권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 22일 현재 공모형 스팩 펀드 6개의 설정 후 평균 수익률은 마이너스(-) 2.40%, 사모형 펀드는 마이너스 2.83%를 기록 중이다. 현재 공모형 스팩펀드는 동부자산운용이 모두 운용을 맡고 있으며, 사모형으로는 현대, 동부, 유진, KTB자산운용 4곳이 펀드를 출시했다.
증권사 한 관계자는 "스팩은 2009년 첫 설립 당시 원금보장과 이자수익 등의 메리트에 큰 기대감을 불러일으켰지만, 현재 투자매력 상실로 증권사들에 있어 계륵으로 전락한 지 오래됐다"고 전했다.
cynical73@fnnews.com 김병덕 김기덕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