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에 진출했던 외국계 금융기업들의 '한국 엑소더스(exodus.탈출)'가 시작됐다. 지난 1998년 한국에 첫발을 내디딘 ING생명이 조만간 KB금융그룹에 인수될 것으로 전망되고, 골그만삭스자산운용은 철수를 결정했다. 우리아비바생명도 우리금융지주와 청산 절차에 들어갔으며, 홍콩상하이은행(HSBC)은 소매영업 철수를 검토하고 있다. 은행, 보험, 자산운용 등 전 금융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탈한국' 현상이 왜 일어나는지, 대응책은 무엇인지 기획기사를 준비했다. 이번 기획기사를 통해 정부가 제시한 '동북아 금융허브'가 물거품이 될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기회를 위한 '성장통'인지 알아보고자 한다.
유럽 재정위기 악화와 가계부채 급증 등 대내외 악재가 겹치면서 은행, 보험 등 전 금융권에서 외국계 금융사들의 국내시장 탈출(엑소더스)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대해 금융권에서는 외국계 금융사의 철수가 고배당 등 철저한 자사 이익 중심의 경영으로 현지화에 실패한 데다 시장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수익성까지 악화된 데 따른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설땅 잃은 외국계 금융사들
2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 들어 외국계 금융사의 수익성 저하가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외국계 금융사들이 국내 시장에서 상당한 수익을 거뒀다는 점을 고려하면 본사 내 입지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스탠다드차타드(SC)은행의 올해 3·4분기 당기순이익은 408억원으로 전년 동기(1133억원)보다 63.9% 급감했다. 3·4분기까지 누적으로는 1663억원으로 전년 동기(3625억원)에 비해 54.1% 줄었다.
씨티은행도 3·4분기 371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하면서 지난해 1392억원보다 73.4% 수익이 줄었다.
일본과 태국에 이어 국내 소매영업점 철수를 검토 중인 홍콩상하이(HSBC)은행은 서울지점에서 지난해 2000억원 이상 당기순익을 기록했지만 올 3·4분기에는 1523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거둔 데 그쳤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14억원(6.9%) 줄어든 규모다.
영국 생명보험그룹인 아비바그룹은 유럽 재정위기 이후 지난 2010년 72조4448억원이던 영업실적이 작년에는 69조8044억원으로 감소했다. RAC(레커, 렌터카 등) 판매실적을 제외한 올해 9월까지 매출은 49조8278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2조3874억원 줄어들었다.
지난 9월 스리랑카에서 철수한 데 이어 미국시장에서도 사업을 정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이유다. 우리나라에서도 24개 생명보험회사 중 20위권에 머물면서 시장 철수를 위한 실사작업이 마무리된 상태다.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자산운용 역시 실적부진을 겪고 있다. 2007년 국내 시장에 진출한 이후 매년 50억원 이상 순손실을 본 가운데 지난해에는 72억원의 당기순손실로 외국계 운용사 중 적자폭이 가장 컸다. 상반기에만 18억3000만원의 적자를 내면서 5년 만에 한국시장에서 철수하기로 결정했다.
올해 상반기까지 도이치자산운용이 38억8000만원, 에셋플러스는 29억7000만원, 프랭클린템플린도 22억4000만원이나 손해를 봤다.
■사회공헌 대신 '고배당' 여론 악화
금융권에서는 외국계 금융사들이 잇따라 철수하는 것을 두고 결국 현지화에 실패한 것 아니냐고 지적한다. 특히 수익성만 좇는 영업, 고배당을 하면서도 정작 사회공헌에는 인색하는 등 부정적 이미지가 쌓인 것을 결정적인 이유로 꼽는다.
한국은행이 지난 10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최재성 민주통합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39개 외국계 은행 지점의 중소기업대출 증가액은 올해 6월 말 현재 2129억원이었다. 이는 2007년 1조6611억원의 8분의 1가량에 불과하다. 이들의 중소기업대출은 2008년 1조320억원에서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2425억원으로 급감한 뒤 2010년 1765억원, 2011년 2274억원으로 제자리걸음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중소기업대출을 의무적으로 늘리기는 힘들지만 중소기업대출 비중이 계속 줄어들면 외국계 은행은 현지에서 누구를 위해 영업하는 은행인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특히 지난해 은행권의 수수료 인하 대열에 외국계 은행들은 요지부동이었다.
하지만 본사에 보내는 배당금은 계속 늘렸다. SC은행은 2009년 이후 3년간 금융지주사에 7500억원을 배당했다. 순이익 대비 배당률도 2009년 57.8%에서 2010년 62.0%, 2011년 83.3%로 해마다 높아지고 있어 국정감사 때 '국부유출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왔다. 씨티은행도 지난해 12월 3.4분기 1299억원을 중간배당해 논란을 빚었다. 씨티은행이 중간배당을 결의한 것도 처음이지만 배당 규모도 역대 최대였다. maru13@fnnews.com 김현희 연지안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