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로스앤젤레스=전선익 인턴기자】 "코모 에스타스(Como Estas. 스페인 말로 '안녕하세요'라는 뜻)."
로스앤젤레스 시내 남쪽에 위치한 약 2.9㎢ 면적의 LA 패션 디스트릭트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이곳은 북미는 물론, 남미까지 중저가 의류를 공급하는 미 최대 의류 도매시장이다. 한국의 동대문시장이나 남대문시장을 연상케 하는 이 지역은 흔히 '자바 (Jobber) 시장'이라 불린다. 자바란 도매와 제조업을 겸하는 업체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도소매 업체들이 빼곡하게 들어선 이곳엔 2500여개의 점포가 있으며 이 중 2000여개의 점포를 한인들이 운영하고 있다.
이 말이 무색하지 않게 많은 도매상들이 한인 이민 1세들과 그들의 자녀, 가족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여기서 일하는 한인들만 4천여명이나 되고 공장 근로자까지 합친다면 2만명 이상의 한인이 자바시장과 연관돼 일을 하고 있다. 중남미 사람들도 많다. 대부분 한인들이 고용한 사람들이거나 물건을 구매하러 온 상인들이다. 상점마다 값싼 가격표가 붙은 옷들이 손님들을 유혹한다. 화려한 색상과 디자인은 동양인보다 남미인이나 백인의 취향에 맞춘 듯하다.
경기가 좋았던 지난 2000년엔 연 매출이 67억달러(약 7조2000억원)에 이를 정도로 규모가 제법 컸으나 현재는 경기침체의 여파로 예전과는 달리 한산하고 위축된 분위기다.
그렇다고 자바시장이 절망적인 것만은 아니다. 자바시장의 한인들은 글로벌화를 통해 제2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내년부터 LA한인의류협회를 이끌어 갈 이윤세 차기 회장은 "지금까지 이민 1세들이 자바시장의 주축이 돼 왔으나 앞으로는 1.5세, 혹은 2세들이 자바시장을 이끌 것"이라며 "이들은 미국에서 대학이나 대학원을 나온 고학력자들로 자바시장을 글로벌화하는데 앞장설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자바시장에 가면 구슬땀을 흘리며 열심히 일하는 한인 젊은이들을 곳곳에서 목격할 수 있다.
지난 2년간 LA한인의류협회를 이끌어 온 크리스토퍼 김 회장은 "앞으로 남미뿐 아니라 동남아, 한국 등으로 진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지식경제부, KOTRA 등과 협의해 한국 시장 진출을 도모하고 있다"며 "이를 위해 협회차원에서 한국 대학 졸업생들을 선발해 자바시장에서 인턴교육을 실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자바를 기반으로 해 이미 글로벌화에 성공한 기업도 있다. 세계적인 SPA브랜드(Specialty store retailer of Private label Apparel)인 '포에버21 (Forever21)'이 대표적이다. 포에버21이 '패션21'이란 브랜드로 세계 패션업계에 첫발을 내디딘 곳도 바로 여기 자바시장이다.
포에버21은 미국을 비롯, 한국과 홍콩, 영국 등 전 세계에 500여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직원만 4만여명에 이르고 연매출은 약 4조원에 달한다. 요즘 세계 젊은 소비자들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패스트 패션 (Fast Fashion)'의 한 축을 이룬 포에버21은 기획, 생산, 유통 등 전 과정을 통합해 시시각각 변하는 패션 트렌드에 신속히 대처해 나가고 있다. 패스트 패션이란 음식에 있어 패스트 푸드처럼 빠르게 제작되고 유통된다는 뜻에서 유래된 말이다.
패스트 패션을 주도하는 세계적인 기업들로는 미국의 갭과 스페인의 자라, 스웨덴의 H&M, 일본의 유니클로 등이 있으며 포에버21 역시 이런 유형에 속한다.
포에버21이 오늘날과 같은 거대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데엔 한인의류 협력업체들의 숨은 공로가 있었다. 이 회사에 납품하는 한인업체만도 무려 500여개에 이른다. 한인업체 4곳 중 하나가 포에버21에 제품을 공급하고 있는 셈이다.
자바시장은 북미 한인 의류시장의 메카이자 한국인 특유의 근성과 노력이 스며 있는 곳이다.
눈물을 머금고 빈손으로 이민 왔던 숱한 한인 1세들이 이곳을 발판으로 자수성가의 기반을 마련했다. 자바시장은 한인들에겐 그야말로 기회의 땅이었다. 오늘도 자바시장에 있는 많은 한인의류업체들은 연말 대목을 맞아 새벽부터 가게 문을 열고 손님 맞을 채비에 여념이 없다.kikboy77@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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