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들이 회사채 미매각 물량을 처리하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땡처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격을 낮춰 유통시장에 싸게 물량을 내놓는 것.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향후 회사채를 인수할 여력을 키우고 혹시 벌어질지 모를 금리 상승에 따른 평가손실을 막겠다는 의도다.
8일 금융감독원과 금융투자협회, 동부증권에 따르면 지난 4일 기준 증권사들의 미매각 회사채 물량은 2조9000억원 규모로 추산된다. 이는 웅진그룹의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사태가 불거졌던 지난해 9월 이후 11월 말 누적 미매각 회사채 물량 4조4000억원보다 1조5000억원 감소한 것이다.
미매각 회사채 처분은 신용위험이 높아진 종목 위주로 이뤄졌다.
그러나 건설, 화학, 철강, 운송 부문에서는 미매각 물량이 2000억~6000억원가량 남아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문홍철 동부증권 연구원은 "신용위험이 높은 업종을 중심으로 급한 미매각 물량은 처리된 것으로 보인다"면서 "채권금리 상승세가 주춤하면서 급매물이 나올 가능성은 줄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난해 12월 이들 회사채를 매수했던 주요 기관도 보험 및 기금, 기타법인 등 비교적 장기투자 기관들로 추가 매물화 가능성은 낮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미매각 회사채 물량이 시장에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다면 채권값이 떨어지고(금리 상승) 우량채권마저 도매금으로 싸구려 취급을 받아 회사채 시장이 더욱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우려된다.
김완중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시장수요 부진으로 증권사들이 인수했던 미매각 채권이 단기간 내 시장에 집중돼 출회될 경우 회사채 금리 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증권사들이 미매각 물량을 내다 팔고 있는 것은 새로 발행되는 회사채를 인수하기 위한 '실탄'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KDB대우증권은 올해 회사채 발행 물량을 45조원 규모로 추산했다.
또 재무구조가 취약해진 기업들의 신용등급이 하락하기라도 하면 금리 상승에 따른 평가손실이 불가피하다. 실제 두산캐피탈을 비롯해 웅진그룹 계열의 웅진씽크빅과 웅진에너지의 신용등급이 하향 조정됐다. 한라건설, 계룡건설산업, 한신공영 등 주택사업 비중이 높은 중견 건설업체의 회사채 신용등급 또는 등급전망이 무더기로 하향 조정됐다.
임정민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회사채 미매각 물량이 줄고 있지만 투자자들이 리스크관리에 중점을 두면서 회사채 시장의 투자심리 위축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라며 "특히 연기금과 은행의 회사채 투자 규모 감소가 두드러진다"고 말했다.
kmh@fnnews.com 김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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