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사설] 공약 출구전략? 너무 성급하지 않은가

파이낸셜뉴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을 구조조정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출구전략이 필요하다는 얘기도 들린다. 12·19 대선이 끝난 지 겨우 한 달이다. 새 정부는 아직 출범도 하지 않았다. 신임 대통령이 취임식을 갖기도 전에 국민에 대한 약속을 접으라고 요구하는 것은 너무 성급하다.

박 당선인의 공약은 양극화와 중산층 붕괴, 출산율 저하, 노인층 빈곤이라는 한국 사회의 고질병을 치유하는 데 쓸 약재(藥材)다. 이를 위해 박 당선인은 재임 5년간 총 134조원을 투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재원은 예산절감으로 71조원, 비과세·감면 축소와 지하경제 양성화로 48조원, 복지행정 개혁으로 10조원, 공공부문 개혁으로 5조원을 조달하겠다고 말했다.

공약이 완벽할 순 없다. 그런 점에서 박 당선인은 공약의 비현실성을 지적하는 비판에 귀 기울여야 한다. 보건사회연구원은 새 정부가 복지 공약을 이행하는 데 추가로 105조원이 더 들 것으로 내다봤다. 새누리당 정몽준·심재철 의원 등은 공약에 얽매이지 말고 우선순위를 정하라거나 기초노령연금 등 막대한 예산이 들어갈 공약은 출구전략을 마련할 것을 조언했다.

그러나 지금이 본격적인 공약 슬림화에 나설 때인지는 의문이다. 그보다는 먼저 공약 이행을 위해 전심전력을 기울이는 게 유권자에 대한 예의다. 비과세·감면만 해도 한 해 32조원에 달한다. 새 대통령과 정부가 수혜층인 기업·가계를 어떻게 설득하느냐에 따라 상당한 재원을 추출할 수 있다. 지하경제 양성화도 지레 겁먹고 손사래 칠 일이 아니다. 무려 300개가 넘는 현행 복지사업 가운데 유사·중복 사업은 하루속히 솎아내야 한다.

그래도 돈이 모자라면 그때 국민의 이해를 구하고 다른 방안을 강구하는 게 순서다. 최광 한국외국어대 교수(전 복지부 장관)는 세출 낭비를 줄이면서 재원을 조달할 수 있는 최상책으로 예산동결을 제시했다. 이렇게 하면 한 해 10조~15조원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궁극적으론 증세도 검토 대상이다. 한국의 조세부담률은 19.8%(2011년 기준)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25%에 크게 못 미친다. 박 당선인은 '증세 없는 복지'를 약속했다. 이를 어겨가며 부득이 증세 카드를 꺼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박 당선인은 먼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야 한다. 그런 뒤에도 끝내 국민이 증세를 거부하면 그땐 공약을 접을 수밖에 없다.

김용준 인수위원장은 17일 공약 속도조절론에 대해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라며 "대선 공약은 충분한 논의를 거쳐 정성껏 마련한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박 당선인은 신뢰의 정치를 추구한다. 지금 공약을 수정하면 자신의 명예는 물론 정권을 지탱할 신뢰의 기반마저 무너질까 두렵다. 현대그룹 창업주인 정주영씨는 "해 봤어?"라는 도전적인 어록을 남겼다. 지금 박 당선인과 새 정부에 필요한 것은 정주영식 도전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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