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을 꺼내며] KRX 민영화 숙원/김문호 증권부 차장
대한민국에는 다른 나라에서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기업들이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주인 없는' 민간기업이지만 실제로 공공기관인 기업들이다. 금융계가 민영화를 요구하고 있는 한국거래소가 대표적이다. 주주들이 민간기업인 증권사들이지만 이들의 뜻과는 전혀 상관없이 공공기관에 지정되면서 정부의 눈치를 봐야 한다.
독점적인 사업을 하고 있다는 업보 아닌 업보 때문이다. 정부가 칼자루를 휘두르는 대로 끌려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사회를 구성해 경영 자율성을 보장한다고 하지만 지난 4년을 되돌아 보면 공염불이다. 공격적인 인수합병(M&A)으로 덩치를 키워가는 글로벌 거래소와의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투자를 해야 하지만 정부의 눈치를 보다 돈 한 푼 마음 놓고 쓰지 못한다고 거래소 관계자들은 하소연한다. 덕분(?)에 경쟁력은 바닥으로 떨어져 수익은 반토막 났고 속으로 골병이 들어가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가를 보더라도 정부가 지분을 보유한 슬로바키아 BSSE 거래소를 제외하고는 정부의 관여를 받는 국가는 없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위헌적 공권력 행사에 해당한다고 입을 모은다. 위헌 소지가 가장 큰 조항은 '독점적 사업권을 부여받은 기관 중 총수입액 절반 이상이 독점적 사업에서 발생할 시 준정부기관으로 정할 수 있다'는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이다. 사기업을 포함할 경우 헌법상 영업의 자유나 기업의 자유를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산업은행이 민영화를 거치지 않고 공공기관에서 빠지면서 '공운법 4조-6조' 위반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는 것과도 비견된다. 또 공공기관 지정 기준인 정부지원.위탁.독점의 개념을 획일적.포괄적으로 정하고 있어 예측 가능성이 미흡하고 정부의 자의적 운영이 가능해 '명확성 원칙'에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강만수 KDB산은지주 회장은 "거래소는 독점 구조이기 때문에 산은과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해서는 안된다"고 일축한다.
독점을 문제 삼는 것은 글로벌 추세를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업계는 지적한다. 세계는 지금 인수합병으로 거래소 덩치를 키우는 데 혈안이다. 런던국제거래소(ICE)는 미국 금융가의 상징인 뉴욕증권거래소(NYSE) 유로넥스트를 인수키로 했다. 일본 도쿄거래소는 아시아 금융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 지난 4일 오사카거래소를 합병함과 동시에 상장을 마쳤다.
굳이 정부가 거래소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원한다면 '공공기관' 지정이 아닌 복수 거래소 설립, 거래소 기업공개(IPO) 추진을 독려하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다.
주주 감시와 상호 경쟁을 통한 효율성, 투명성 제고가 획일적인 정부의 규제보다 시대 흐름에 적합하다. 과거에 거래소를 민영화했던 배경이 시장과 자율경쟁에 의한 경쟁력 강화였다는 본질에 주목하자.
다시 전환기에 섰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공약으로 경제민주화를 내놨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도 대선 직전 "(해외 거래소와의 제휴 등) 필요하다면 KRX의 공공기관 해제를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대한민국 자본시장의 발전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인수위가 분명한 답을 제시했으면 한다. 군부 독재에서 벗어난 이후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 대통령까지 되돌이표처럼 반복되는 '아전인수'식 권력 휘두르기에 국민들은 지칠 대로 지쳤다. 거래소의 민영화를 통해 차기 정권이 이 같은 지긋지긋한 악습을 끊어내길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