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주정꾼 작품 같다." "베토벤이 술집에서 이 곡을 쓴 게 틀림없다."
1813년 베토벤 교향곡 7번이 초연됐을 때 당대 비평가들 중엔 이런 쓴소리를 뱉은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애호가들과 청중은 이 폭발하는 에너지의 7번에 곧바로 매료당했다. 7번은 운명을 걷어차고 나가는 초인의 발걸음이 새겨진 곡이다.
베토벤 교향곡 7번이 올봄 공연장, 영화관 여기저기서 터지고 있다. 시작은 최근 내한한 런던심포니 오케스트라였다. 36년 만의 내한으로 이목을 끌었던 지휘계 거장 베르나르트 하이팅크가 이번 공연에서 가장 먼저 골랐던 교향곡이 7번이었다.
지난달 갑작스러운 허리 통증으로 시작 100분 전 공연을 취소했던 지휘자 정명훈이 다음주 다시 무대에 오르면서 들려줄 곡도 베토벤 교향곡 7번이다. 정명훈과 서울시립교향악단은 14일과 15일(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이틀동안 이 곡을 연주한다. 당초 15일 하루 공연이었지만, 이날 티켓이 전석 매진되자 시향은 급히 전날 공연을 추가한 것이다. 7번 연주에 앞서 정명훈과 시향 악장인 바이올리니스트 스베틀린 루세브, 객원 수석 첼리스트 송영훈은 베토벤 삼중협주곡도 선보인다.
다음달엔 지휘자 로린 마젤이 이끄는 뮌헨필하모닉의 베토벤 교향곡 7번을 들을 수 있다. 오는 4월 21일과 22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6년 만에 내한공연을 펼치는 뮌헨필은 첫날 베토벤 교향곡 4번, 7번을 연달아 연주한다.
최근 개봉한 홍상수 영화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에도 이 음악이 나온다. 올해 베를린 국제영화제 출품작으로, 예술영화로는 드물게 개봉 4일 만에 1만명이나 본 흥행작이다. 해원(정은채)과 불륜 관계인 영화감독 성준(이선균)은 남한산성에서 해원과 크게 싸운 뒤 혼자 벤치에 앉아 낡은 카세트로 이 음악을 튼다. 7번 2악장의 격한 음악은 어깨를 들썩이며 처절히 우는 성준과 묘한 조응을 이룬다. 하염없이 펄럭이는 산성 깃발이 음악과 보조를 맞춰준다.
jins@fnnews.com 최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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