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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人]'마그리트'로 솔로 데뷔 발레리나 김주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3.03.20 17:33

수정 2013.03.20 17:33

▲ 사진=김범석기자
▲ 사진=김범석기자


발레리나 강수진(46)과 김주원(35)에겐 공통점이 몇 가지 있다. 두 사람은 발레계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러시아 '브누아 드 라당스' 수상자다. 강수진은 이 상을 탄 동양인 1호, 김주원은 2호다.

'지독한 연습벌레'라는 것도 비슷하다. 천재지변이 없는 한 강수진의 기상시간은 오전 5시다.

오전 3시에 자든, 4시에 자든 일어나는 시간은 만고불변이다. 지난해까지 15년간 국립발레단에 몸담았던 김주원은 발레단 연습실의 불을 켜고 들어가 불을 끄고 나오는 무용수로 유명했다. 포즈 하나 잡기 위해 오전 2∼3시까지 연습실 거울 앞에 서 있기도 다반사였다. 김주원은 개인적인 여행을 2박3일 이상 못 간다. "하루 2∼3시간은 토슈즈를 신고 몸을 풀어야 해요. 하루라도 안 하면 발바닥이 그걸 압니다."

강수진과 김주원은 프랑스 작가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춘희'의 주인공이라는 점까지 닮았다. '춘희'는 파리의 고급 창녀와 그를 사랑한 귀족 청년의 극적인 이야기로, 오페라로는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가 있다. 안무가 존 노이마이어가 이 스토리로 만든 장편 드라마 발레 '까멜리아 레이디'는 강수진의 대표작이다. '춘희'를 소재로 한 발레는 '까멜리아 레이디' 전에 하나 더 있었다. 1963년 초연된 영국 대표 안무가 프레더릭 애슈턴의 35분짜리 단막극 '마그리트와 아르망'. 마고 폰테인과 누레예프에게 헌정된 전설의 작품이다. 김주원은 다음 달 이 발레 국내 초연 무대에서 마그리트를 맡는다.

지난 19일 오전 연습이 한창이던 서울 미아동 서울사이버대학에서 김주원을 만났다. "귀한 작품을 하는 게 가슴 벅차요. 그런데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습니다." '마그리트와 아르망'은 폰테인과 누레예프 사후 무대에서 사라진 뒤 세기의 무용수 실비 길렘에 의해 다시 빛을 보면서 수많은 발레리나의 로망이 됐다. 영국 로열발레단 측은 깐깐한 심사로 소수 정예 발레리나에게만 이 작품을 허용했다. 김주원은 2000년 런던 무대에서 이 공연을 본 뒤 마그리트의 꿈을 키웠고 솔로 독립 후 직접 작업해 공연 허가권을 따냈다.

"장편 '까멜리아 레이디'와 35분짜리 '마그리트와 아르망'은 에너지 응축 정도가 다릅니다. 기승전결의 쉬어가는 호흡이 아니라 순간 발산해야 하는 기운이 엄청나요. 동작들은 공격적이기도 합니다. 극한의 감정들을 끌어내 최대치를 보여줘야 하는 그런 작품이에요."

사진=김범석 기자
사진=김범석 기자

'까멜리아 레이디'가 쇼팽의 서정적인 발라드를 사용하는 것에 반해 '마그리트와 아르망'은 리스트의 혁신적인 피아노 소나타 b단조를 쓴다. 김주원은 "기괴할 정도의 음산한 음을 내기도 하고 서정적인 멜로디에 밝은 느낌도 난다"며 "음표 하나하나에 동작과 이야기가 숨어 있다. 격정의 드라마와 맞다. 애슈턴도 그래서 이 음악을 골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이 음악은 모스크바 유학 시절 그가 기숙사 방에서 틈만 나면 들었던 곡이다. "6년 유학생활 중 가장 많이 들었던 곡이에요. 음산하고 무거운 음악이 갑자기 부드럽게 바뀔 때 그냥 엉엉 울었던 기억도 있습니다."

작품은 마그리트가 병상에 누워 아르망을 그리워하는 장면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으로 흐른다. 4개의 파드되(2인무) 안에 만남, 사랑, 고통, 이별 모두가 들어 있다. 평소 친분이 있었던 유명 피아니스트 조재혁은 공연 소식을 듣고 반주를 자청했다. 김주원의 무대엔 이런 응원군이 제법 된다. 바이올리니스트 권혁주도 합류해 있다. 워싱턴발레단 수석무용수로 자리를 옮긴 김현웅이 상대역 아르망을 맡고 국립발레단 무용수 출신 이원철과 윤전일,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 커플 황혜민·엄재용도 무대에 오른다. 애슈턴의 또 다른 작품 '타이스 파드되'(김주원·윤전일), '랩소디 파드되'(양채은·이원철), '어웨이크닝 파드되'(황혜민·엄재용)에서 이들을 볼 수 있다.

김주원은 신체 콤플렉스를 노력으로 극복한 의지의 발레리나에 속한다. "발레하기 좋은 몸이 절대 아니어서 연습밖에 없었어요. 두번째 발가락은 길어서 무게가 그쪽으로 실립니다. 팔, 목, 어깨 관절은 도드라져서 라인이 깨끗하지 않아요. 목은 길고 얇아 카리스마 있는 춤엔 또 안 맞아요. 그러니 나한테 맞는 움직임을 끝까지 찾아내야 했습니다." 감정선을 잡기 위해 그는 숱한 시간을 보낸다. "사람들이 지나가는 동작에도 왜 그리 신경쓰냐고 해요. 그런데 그걸 못 버립니다. 무슨 동작이든 의미 없이 하는 건 하나도 없어요. 손가락 하나 들 때도 명분과 이유가 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발레를 시작한 김주원은 올해로 발레 인생 25년이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도발적인 선택의 연속이었고 그럼에도 대중적인 지지는 유례없었다.

선화예중 시절 한국에 들른 볼쇼이 발레학교 선생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은 뒤 6개월 동안 부모님을 졸랐다. 1991년 이제 막 개방을 시작한 러시아 유학을 부모님은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선화예중 자퇴라는 극단의 카드까지 내밀며 밀어붙였고 결국 볼쇼이 발레학교 한국인 1세대 문을 스스로 열었다. 뮤지컬, 방송 등 대중장르도 즐기긴 했지만 그의 삶의 근거는 역시 발레다. '마그리트'로 화려한 솔로 무대를 시작한 김주원의 향후 행보는 그래서 더 궁금해진다. 공연은 4월 5∼7일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 4만∼10만원. 1544-1555

jins@fnnews.com 최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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