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스트리트] 산장의 밤](https://image.fnnews.com/resource/media/image/2013/03/21/201303211700429129_l.jpg)
'산장의 밤'이라면 무엇을 연상할까. 귀신 나오는 얘기나 고독한 여인의 한(恨)이 우선 떠오른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영화광들이 떠올리는 1960년대의 영국 영화 한 편이 더 그럴 듯하다. 프랑스 여배우 시몬 시뇨레(1921~1985)가 주연한 '산장의 밤'은 그녀에게 1960년도 아카데미 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안겼다. 이 영화는 두 남녀의 불륜의 정사를 다룬다. 출세욕에 불타는 연하남과 남편과의 불화로 고민하는 연상 유부녀가 주인공이다.
요즘 한국에서 뜨거운 화제로 떠오른 '산장의 밤'은 픽션이 아니고 논픽션이다. 꾸며낸 얘기가 아니고 사실이다. 그런데 영화보다는 차원이 좀 낮아 보인다. 비극이 주는 카타르시스적 눈물도 없고 무슨 고뇌도 없다. 오직 환락과 음모와 배신이 있을 뿐이다. 구태여 픽션에 비유해보면 필름 누아르적 소재에 가깝다. 언론의 대서특필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강원도 부동산 개발업자 윤 아무개는 5년 전부터 원주 깊은 산속에 산장을 지어놓고 유력자를 초대해 성(性)접대를 했다. 접대를 받은 사람 가운데는 검찰 지검장도 있었다. 그는 새정부에서 법무차관으로 승진했다가 21일 사임했다. 사정당국이 파악한 이른바 '별장 성접대 리스트'에는 이 밖에도 전·현직 고위급 관료 7명과 전직 국회의원도 있다. 병원장과 언론인까지 끼여있어서 모두 10여명에 이른다니 윤 아무개의 사업 영역이 얼마나 넓은지 알 수 있다.
이들은 산장에서 '가면파티'까지 벌였다고 접대에 동원된 여성이 증언한다. '산장의 밤' 이야기가 외부에 알려진 것도 접대 대가를 못받은 여성이 폭로했기 때문이란다. 윤 아무개는 접대 장면을 찍은 사진을 미끼로 고위인사를 협박해 사업 편의를 부탁하거나 심지어 돈까지 뜯어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건은 한국 사회의 도덕적 문란이 어디까지 왔나 보여준다. 부정부패가 예전보다 개선됐다는 판단은 허구라는 점도 보여준다. 그러나 과거의 관례로 보아 의혹이 철저히 조사되고 진상이 규명되기를 기대하기는 힘들 것 같다. 사건의 진상과 기성 체제의 은폐 노력을 교직하면 수준 높은 필름 누아르가 탄생할지 모른다. 성 파티에 대통령의 가면이 등장했다는 증언이 벌써 외화 패러디를 통한 흥행 대박을 예고한다. 픽션과 논픽션을 구분하기 힘든 시절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ksh910@fnnews.com 김성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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