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나루] 행정 신속성 위주로 공무원 개혁해야/최종찬 전 건설교통부 장관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3.03.25 16:51

수정 2013.03.25 16:50

[여의나루] 행정 신속성 위주로 공무원 개혁해야/최종찬 전 건설교통부 장관

정부는 민간 기업에 비해 일처리 속도가 매우 느리다. 여건 변화에 대응하는 제도 개선도 느리고 인·허가 처리 속도도 느리다. 사실 공무원은 행정처리 속도에 대해 문제의식이 별로 없다. 기업처럼 누구와 경쟁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공무원은 일을 부당하게 처리하거나 예산을 낭비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하나 행정 처리를 늦게 하는 것에 대해서는 크게 책임 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늑장 행정의 예는 많다. 어느 기업이 골프장 건설 허가를 신청한 후 3년6개월 만에 착공 허가를 받았다. 그 지역이 법적으로 골프장을 건설하는 데 문제가 없는데도 관계기관의 늑장 행정으로 그렇게 늦어졌다. 실제 골프장 건설에는 2년도 안 걸렸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2002년 가을 태풍 피해가 커 하루빨리 피해 복구를 지원하고자 이례적으로 임시 국무회의를 소집해 재해대책 예비비를 의결했다. 그후 현장에서 예비비 지급이 늦어져 복구가 지연된다는 여론이 있어 조사해 보니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지출 결의서에 형식적인 대통령 서명을 받는 데 며칠이 소요됐다. 임시 국무회의까지 소집하면서 서두르는 대책이 그 정도이니 다른 일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기업이나 국민 입장에서는 시간이 돈이다. 토지를 매입한 후 인·허가가 늦어져 공장이나 아파트 건설이 늦어지면 이자 부담 등 기회비용이 그만큼 증가한다. 기업은 돈 안 받으면서 늑장 부리는 공무원보다 뇌물을 받더라도 빨리 해주는 공무원이 고마울 것이다. 정부는 규제개혁 차원에서 민원절차와 서류를 줄인다. 그러나 절차나 서류가 줄어도 일처리 기간이 줄어들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중요한 것은 절차나 서류 수가 아니라 처리 기간인 것이다.

대부분의 민간 투자는 정부의 인·허가와 관련이 있다. 정부의 행정처리가 신속하면 그만큼 경제활동이 활발해질 것이다. 현재보다 행정처리 속도가 2배 빨라지면 그만큼 경제활동도 활발해질 것이다. 행정의 신속성에 중점을 둬 공무원의 일하는 방식을 전면적으로 혁신해야 한다.

첫째, 공직자들이 늑장 행정은 뇌물 받는 것 못지않게 나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감사원도 늑장 행정에 대해 엄격히 조사해야 한다. 둘째, 모든 민원처리 기간을 제로 베이스에서 재검토해 대폭 단축해야 한다. 실제로 실무자가 몇 시간 또는 2~3일 검토하면 될 일을 민원처리 규정에는 1~2주 또는 1~2개월로 돼 있는 경우도 많다고 생각한다. 대부분 업무량 증가에 대비해 민원처리 기간을 여유 있게 하기 때문이다. 셋째, 행정 처리를 신속히 하려면 기존의 일하는 방식을 대폭 혁신해야 한다. 예컨대 각종 회의부터 간소화해야 한다. 고위 공무원들은 많은 시간을 회의로 지낸다. 근본적으로 회의를 줄이고 필요한 회의도 화상이나 전화회의 등으로 시간을 절약해야 한다. 김대중 정부 시절 격주로 화상 국무회의를 했는데 별 문제가 없었다. 행정조직도 담당관제를 강화해 공무원의 전문성을 키우고 결재 단계도 대폭 축소하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각종 행사와 의식도 간소화해야 한다. 중앙 부처의 경우는 국회의 비효율적 운영으로 시간낭비가 심하다. 회의 주제를 세분화해 회의하면 관계기관 공직자만 오면 될 터인데 전 분야로 해 모든 간부와 산하 기관장까지 국회에 출석하는 일이 빈번하다. 이 밖에도 신속한 정책조정 등 개선할 일은 많다.

복지 확대는 경제 활성화 없이는 불가능하다. 최근 경제민주화와 복지증대에 가려 성장능력 배양에는 관심이 소홀한 것 같다.
성장능력 배양을 위해서는 정부의 효율성이 필수적이다. 그동안 행정 혁신은 부패 척결에 중점을 두고 행정의 신속성에 대해서는 관심이 적었다.
경제 활성화를 위해 행정의 신속성에 중점을 둔 정부 혁신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