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알선증재’ 처벌 조항 없어 로비스트 양산 우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3.04.07 17:16

수정 2013.04.07 17:16

20년간 군인으로 근무하다 2010년 대형건설업체인 D사의 군 관련 발주공사 영업부서에 입사한 남모씨. 그는 같은 해 국방부가 주관한 육군 관사 건설사업에 회사가 단독 입찰한 것과 관련, 군인 시절 함께 근무한 적이 있는 중령 노모씨를 통해 '해당사업 평가위원인 소령 김모씨에게 좋은 판단(결과)이 나오게 해달라'며 상품권 등 500여만원의 금품과 법인카드를 제공했다.

노씨는 남씨에게서 받은 상품권 가운데 100만원 상당을 김씨에게 전달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군 검찰은 노씨를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상 알선수재(직무와 관련한 일을 잘 처리해 주도록 알선해 주고 그 대가로 금품을 받는 죄)로, 김씨를 뇌물수수 혐의로 보통군사법원에 각각 기소했다. 노씨와 김씨는 고등군사법원으로부터 각각 집행유예와 선고유예 유죄 판결을 확정받았다. 그러나 이번 사건의 원인 제공자인 남씨는 지난 2011년 서울중앙지검으로부터 뇌물공여 혐의로 내사를 받았지만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뇌물 간접공여 무죄?

7일 법조계에 따르면 법원의 판단도 검찰과 다르지 않았다. 이 일로 D사는 '사회기반시설에대한민간투자법시행령'에 따라 3개월간 민간투자사업 참가자격 제한 처분을 받았고 이에 불복해 소송을 냈다. 시행령은 '민간투자사업 사업시행자 지정 등과 관련해 관계 공무원 등에게 금품 등 뇌물을 준 자'는 참가자격을 제한토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사건을 담당한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이승한 부장판사)는 "남씨는 친분관계상 노씨에게 상품권을 건넨 것이지 평가위원인 김씨에게 '뇌물'을 준 것이 아니다"라며 건설사 측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노씨가 남씨에게서 활동비 명목으로 받은 금품 중 일부를 김씨에게 제공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남씨가 노씨를 통해 김씨에게 뇌물을 줬다는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남씨가 노씨에게 건넨 돈이 노씨의 직무와 관련이 있어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본 것이다.

■알선증재 처벌 법적 근거 없어

현행 형법 및 시행령 어디에도 알선수재의 공여자, 즉 청탁을 위해 금품을 건넨 '알선증재(알선수재의 반대개념)'를 처벌하거나 이를 근거로 기업이 정부의 민간투자사업에 참여시켜서는 안 된다는 조항은 없다.

결국 알선수재를 제공한 남씨는 관련법상 처벌근거 부재로 형사처벌을 면했고 남씨를 고용한 D사도 판결이 확정되면 아무 제재를 받지 않고 정부가 발주한 민간투자사업을 계속 할 수 있게 된다.

대법원 관계자는 "알선수재를 실질적으로 제공한 자에 대한 처벌규정이 없다는 것은 입법의 불비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법의 허점은 '로비스트' 양산으로 이어져 공정거래질서를 해칠 수 있는 만큼 법 개정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가령 기업 '로비스트'가 사업과 연관이 있는 특정 공무원을 지칭해 직접 금품을 제공하지 않고 특정 공무원과 친분이 있는 다른 공무원을 통해 '일이 잘 성사되도록 청탁해달라'며 포괄적(간접적)으로 금품을 건넸다면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mountjo@fnnews.com 조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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