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한번쯤은 자신만의 집을 짓는 꿈을 꾼다. 하지만 '아파트 공화국'인 대한민국에서 그 꿈을 실현하는 것은 그리 만만치 않은 게 현실이다. 토지 매입부터 인테리어 공사와 하자 보수 등 신경 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시아나항공의 최재승 기장(52·사진) 역시 비슷한 고민에 빠졌지만 2년 전 그 꿈을 이뤘다. 최 기장이 '내 집 짓기' 목표를 세우게 된 것은 지난 2000년 경기도 파주에 임야를 구입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됐다. 당초 토지 구입은 언젠가 나만의 사업을 하려면 땅이 필요하다는 막연한 이유에서 비롯됐다. 그러다가 그는 지난 2004년 가족이 살 집을 짓기로 결심했다. 전문가에게 맡기면 모든 게 간단했지만 비용 절감과 창작 욕구에 따라 직접 집 짓기에 나섰다.
최 기장은 "건축은 일반인에게 아주 생소한 분야여서 건축업자들이 과도하게 견적을 부풀리거나 비싼 자재를 쓰도록 하는 등 어처구니없이 많은 비용을 요구하는 것을 보고 자세하게는 아니더라도 맥 정도는 짚어갈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1997년 아시아나항공 파일럿으로 입사하기 전 13년간 공군 전투기 조종사로 생활하면서 취미로 생활가구 제작과 페인트칠 등 수준급의 인테리어 감각을 익힌 그였지만 집을 짓는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우선 입맛에 맞는 건축 지식이나 정보가 정리돼 있는 자료를 접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직접 몸으로 부딪쳐 보기로 결심하고 곧바로 실천에 옮겼다.
최 기장은 쉬는 날마다 정보의 '보고'라 할 수 있는 건축박람회를 돌아보고 인터넷 서핑을 하며 건축전문가들과 만나 관련정보를 수집했다. 외국으로 비행을 갈 때는 호텔의 가구 배치나 동선, 특이한 건축물을 눈여겨봤고 국내에 체류 중일 때는 시간이 날 때마다 자전거로 방방곡곡을 누비며 관심 있는 건축물이나 건축자재를 모두 카메라와 메모장 속에 고스란히 기록했다.
그러기를 5년, 지난 2010년 마침내 최 기장은 공사에 착수했고 이듬해 22년간의 아파트 생활을 청산하고 아담한 4층 높이의 친환경 상가주택으로 이사했다. 건축 과정에서 그는 전문시공업체와 도급계약을 하는 대신 직접 공사(직영)를 택했다. 발품을 팔아 인테리어 공사업자들과 접촉하고 감리와 건축 인허가, 준공검사 등을 직접 해내면서 건축비를 크게 줄일 수 있었다.
'건축은 꿈과 희망을 사는 일'이라고 믿는 최 기장은 요즘 텃밭을 가꾸고 자연의 냄새를 한껏 마시면서 아파트에서는 누릴 수 없는 자유로움을 느끼고 있다. 아파트에서는 소음이나 애완견 문제, 주차 문제 등으로 충돌을 빚는 경우가 많은데 단독주택에 살면 이 같은 문제가 깨끗이 해결되는 장점이 있다고 그는 말한다.
그는 "아파트의 현관문 안쪽은 가족의 전용공간이지만 단독주택은 현관을 나서면 마당이라는 또 다른 나만의 공간을 만끽할 수 있어 매력적"이라며 "특히 아파트보다는 '완전한 내 집이구나'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최 기장은 이 같은 경험을 바탕으로 의미 있는 일을 계획하고 있다. 그는 그동안 건축을 하며 부딪힌 문제, 여러 업자들과의 조율 등 다양한 경험을 공유하기 위해 최근 '파일럿의 건축학개론'이란 책을 펴냈다. 책은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의 입장에서 건축하기에 좋은 땅을 고르는 방법부터 토목측량 설계, 시공사 선정, 기초 및 외벽공사와 건축 인허가 절차 등 '내 집 짓기'에 대한 실무지식과 노하우를 쉽고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최 기장은 "현재의 위치까지 있게 해준 공군에 작은 보답을 하는 의미로 책의 수익금 대부분은 순직한 조종사 자녀들의 장학사업을 하는 '하늘 사랑 장학재단'에 기부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mountjo@fnnews.com 조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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