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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휴일에 정년 연장까지..재계 ‘규제 종합세트’에 위기감

조창원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3.04.29 16:51

수정 2013.04.29 16:51

대체휴일에 정년 연장까지..재계 ‘규제 종합세트’에 위기감

재계가 29일 '입법 침해' 논란을 빚을 만큼 국회의 경제민주화 관련 법 심사에 강력 반발하고 나선 것은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이 한꺼번에 봇물 터지듯 통과되려는 데 대한 위기감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사내하도급법을 비롯한 일감몰아주기 금지 법안뿐만 아니라 노동 및 인사 관련 이슈인 대체휴일제와 정년 60세 법안이 한꺼번에 국회에서 논의되면서 재계가 사면초가에 몰렸다는 인식이 팽배해진 것. 오히려 재계는 이날 국회에 '일자리 창출을 위한 산업경쟁력 강화 특위' 구성을 건의하면서 경제민주화 종합선물세트로 재계의 경영활동 의지를 꺾는 대신 경제 활성화에 국회의 역량을 모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압박수위를 높였다. 재계 관계자는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들 가운데 재계에서도 수용할 수 있는 부분이 분명 있다"면서도 "그러나 경영 현실을 도외시한 채 고강도 경제민주화 법안을 통과시키기 전에 차분하게 세부 사항을 논의하고 재계의 입장을 반영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경제민주화 '도미노 브레이크'

재계는 우선 경제민주화 1호 법안인 '하도급법(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부터 제동을 걸었다. 법안은 당초 대기업의 부당단가인하, 발주 취소 등 불공정행위를 근절하자는 취지에서 추진됐다. 그러나 재계는 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중소기업의 피해도 크다는 점을 들어 관련 법의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 같은 지적은 해당 법안 소관 상임위인 정무위원회 법안소위원회 심사 과정에서도 나온 바 있다. 당시 새누리당 김용태 의원은 "하도급법 대상 중 부당 단가인하의 경우 수많은 중소기업에도 적용되기 때문에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며 대상에서 부당 단가인하를 뺄 것을 주장하며 하도급법 논의를 2월에서 4월로 연장시킨 바 있다. 대기업·중소기업 간 구조 외에 중견·중소기업, 중소기업·개인 등에서 단가인하의 부당성을 놓고 무한 분쟁이 벌어질 것을 우려한 것. 하지만 재계가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 사항인 1호 법안부터 제동을 걸고 새누리당이 이를 수용하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면서 앞으로 논의될 다수의 경제민주화 법안 처리도 난항을 빚을 전망이다.

'정년 60세 연장법'과 '대체휴일제'가 한꺼번에 논의된 점에 대해서도 재계가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노동유연성 확보가 제대로 논의되지 못한 채 인건비 부담만 늘어나는 법안들이 연달에 적극 논의된 데 대한 반발로 풀이된다. '정년 60세 연장법'의 경우 대.중소기업을 가리지 않고 산업계 전체가 법안 반대 의사를 강력히 피력하고 있다. 이는 한국이 고령화사회로 급속도로 접어들면서 정년 연장에 대한 법안 취지는 공감하지만 좀 더 산업계가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달라는 의미로 풀이된다. 최근 국회 안정행정위원회 법안소위원회를 통과하자마자 산업계의 반발을 산 '대체휴일제 법안'도 같은 맥락이다.

재계는 또 정년 60세 연장과 맞물리는 임금피크제 도입이 법안에 명시되지 않은 점도 우려사항으로 꼽고 있다. 또 정년 연장에 따라 사업자와 노동조합의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 기존 법 체계를 따르는 것에 대해서도 문제를 삼고 있다. 이와 관련, 재계는 이날 새누리당 원내대표단에 전달한 재계의 입장에서 "임금 조정과의 연계를 위해 별도의 분쟁해결절차 마련 등 입법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화학물 관련법안도 쟁점

재계는 이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다루고 있는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과 '유해화학물질관리법'에 대해서도 기업의 현실을 도외시한 과잉 입법이라며 법안 심사에 강력반발하고 나섰다. 재계가 법사위 관련 법안 외에 환노위에서 다루고 있는 법안까지 이의를 제기함에 따라 앞으로 심사될 재계 관련 법안을 둘러싼 재계와 국회의 충돌은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유해화학물질관리법' 개정안은 화학사고로 인한 피해가 발생한 경우 매출액의 10분의 1 이하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위반행위에 대한 책임을 영업자로서 취급자로 확대하며, 화학사고 환경평가제를 도입키로 하는 등 화학물질에 대한 업체의 법적 책임 강화를 골자로 하고 있다.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은 신규화학물질 또는 연간 1t 이상 기존 화학물질을 제조·수입·사용·판매하는 사업자에 대해 용도 및 용량 등에 대한 보고를 깐깐이 정하고 제조 및 수입 관련 등록도 미리 마치도록 규정하는 내용들을 담고 있다.

특히 구미 불산가스 유출 후속대책 차원에서 지난 23일 여야 만장일치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한 유해화학물질관리법에 대해 전경련 등 경제 5단체는 법안이 통과된 지난 26일 과잉입법이라고 반발하며 법안 철회를 요구한 데다 새누리당이 이의제기를 받아들이면서 처리가 물 건너가는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화학물질 관련법이 도입될 경우 재계는 기업의 시험자료 및 시험비용 부담이 발생하는 데다 전문 시험기관의 역량 부족으로 해외 시험기관에 종속될 우려가 있을 뿐만 아니라 등록을 의무화할 경우 생산비 증가에 따른 막대한 매출 타격이 예상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유해화학물질관리법에 대해서도 재계는 과다한 과징금과 사업주에 대한 과도한 책임을 물어 기업의 재정적 부담이 우려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야당 환노위원들인 홍영표, 김경협, 은수미, 장하나, 한명숙, 한정애, 심상정 의원과 경실련, 민주노총, 경제민주화국민운동본부 등은 29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화학물질 관련법 개정은 더 이상 늦출 수 없다"며 "화학물질 관련법 개정안은 이번 4월 국회에서 반드시 처리해야만 한다"고 촉구했다.


이처럼 각종 재계 관련 법안들에 대한 심사가 재계 반발로 지연되면서 입법 침해 논쟁도 점입가경으로 치달을 전망이다.

은수미 민주당 의원은 "범죄행위를 저지른 사람들이 벌금이 무겁다고 당당히 소리 지르는 세상인가. 경제 5단체의 최근 행동은 국회 입법권을 훼손하는 것"이라며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내모는 일을 그대로 방치하는 경제 5단체는 범죄 5단체로 해체해야 한다"고 질타했다.


야당 환노위 간사인 홍영표 의원은 "법리상 문제점을 심사하는 법사위가 전문성을 갖고 환노위에서 통과시킨 여야 만장일치 법안을 통과시키지 않는 건 월권이고 위법"이라며 "경제 5단체의 로비와 압력에 의해 법안이 법사위를 통과하지 못한다면 국민들이 용서치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jjack3@fnnews.com 조창원 박소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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